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워크맨이나 데크 같은 음향기기 수리는 젬병이던 제가 본격적으로 오디오 수리를 취미로 삼게 된 것은 더닝-크루거 효과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일지 모릅니다. 몇 개 고쳐서 오디오가 돌아가는 걸 보고 ‘아, 이거 별거 아니잖아!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라고 자신감을 얻었기에 시작이 가능했던 새로운 취미니까요. 그렇게 초기에 선무당이 사람잡는 ‘자신감의 도약’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고장난 오디오를 방치해 뒀거나 고쳐볼 의지가 있다 해도 그저 누군가에게 수리를 의뢰하는 것에 그쳤을 겁니다.
더닝-크루거 효과가 오랜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아직 인간에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게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득이 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려면 자신감이라는 도약대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러니 자신감이 지나쳐 리스크를 크게 발생시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또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면, ‘나 잘났다’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선무당 마인드를 오히려 귀엽게 봐주고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그에게 다가가 ‘너는 정말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구나’라고 힐난하는 ‘일침쟁이’가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는 별 거 아니구나’라고 반성할 텐데, 한창 재미를 느끼는 시기에 찬물을 끼얹는 꼰대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선무당이 사람잡게 그냥 두세요. 자녀들에게나 직원들에게나.
지금 저는 선무당 시기를 지나 자신감 저하라는 골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자신감에 불타서 무작정 정크품 수리에 돌입했다가 소위 ‘해먹은’ 경험들이 쌓이니 초기의 자신감은 옛일이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몰라, 못하겠어’라고 나가떨어지는 게 진짜 선무당이고 ‘바보’겠죠. 제가 그런 진짜 선무당에 그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고치다가 망가뜨린 워크맨이 테이블 위에 사체처럼 누워 있는 걸 보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