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0. 노가리클럽 한로 에디션 : 찰나의 한로가 지나가기 전에!

한로 寒露

24절기 중 열 일곱번째 절기로,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기온이 내려가 공기가 차가워지는 절기입니다.

세상을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이는 따사로운 햇살이나, 가슴이 시원해지는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 등 가을만이 지닌 매력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치만 아무래도 가을의 가장 큰 매력은, 찰나 같기 때문인 듯합니다. 계절 중 체감 시기가 가장 짧기 때문에 그만큼 부지런히 만끽해야 하죠.

그래서 이번 노가리클럽에서는 가을 같은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분량은 짧지만 그 안에 충만한 재미와 감동, 울림을 만끽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죠. 윻은 길이는 짧아도 여운은 절대 짧지 않은 디즈니의 단편 영화들을, 희는 단편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오묘한 매력을 지닌 <KBS 드라마 스페셜>을, 슬은 30분도 안 되는 러닝 타임에 평생의 기다림을 담아낸 영화 <민우씨 오는 날>을 소개합니다. 짧지만 만끽해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긴 26분

영화 <민우씨 오는 날> by. 슬


스물 여섯번째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4일 개막해 13일까지 치러집니다. 영화제의 묘미는 여러 가지가 있죠. 프랜차이즈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을 법한 예술성 충만한 영화를 볼 수 있고, 영화를 만든 창작자의 이야기를 가장 빠르게 들을 수 있어요. 아직 개봉하지 않은 기대작들을 미리 찍먹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여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습니다. 짧고도 강렬한 스토리로 여운을 주는 단편 영화를 마음껏 만날 수 있다는 점!

 

<민우씨 오는 날>은 오래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단편 영화입니다. 익숙하고 아름다운 얼굴들에 홀려 선택했다가, 26분이 지난 후 마음이 온통 먹먹해지고 말았어요. 영화의 스토리는 어찌 보면 단순합니다. 연희가 일하러 떠난 남편 민우씨를 기다리는 이야기예요. 연희는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집 비밀번호도 잊고, 어제의 기억도 잊지만 단 한 명의 이름만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있죠. 연희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들이 그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장을 봐 민우씨가 좋아하는 숭엇국을 끓이고, 정갈한 반찬과 꽃 한 다발을 식탁에 준비한 채 그를 기다립니다. 집 안에 있어도 연희의 마음은 늘 대문 밖을 서성이고 있어요. 민우씨가 언제 돌아올까, 오매불망 길 어귀를 굽어보는 일은 오랜 습관이 되었죠.

 

보는 사람의 마음에도 어느새 연희가 깃들어 한 가지만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민우씨가 어서 돌아오기를. 러닝 타임은 30분도 안 되는데, 연희의 긴 기다림은 온전한 무게와 깊이로 전해집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정만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지는 경험. 이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귀중한 순간이겠죠. 연희는 민우씨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무 것도 찾아보지 않은 채로 <민우씨 오는 날>을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를 서비스하는 OTT는 없지만, 유튜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어요.

길이는 짧게, 여운은 길게 

디즈니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by. 윻


<라바>, <페이퍼맨>, <파란우산> 이 이름들이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그럼 이 영화들은 어떠신가요? <인사이드 아웃>, <주먹왕 랄프>, <몬스터 대학교>. 이제 눈치채셨나요? 네, 맞습니다. 앞의 세 영화들은 각각 뒤에 나열한 영화들의 본편 상영 전 짧게 보여준 단편 애니메이션들입니다. 

대략 10분 이내로 구성된 이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본편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관객들에게 뒤이어 이어질 본편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죠. 거기에 더해 마치 앞으로 1시간 30여 분 동안 우리가 떠날 새로운 세계로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는 느낌입니다. 현실은 잠시 잊고, 사랑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세계 말입니다. 

이 단편들은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습니다. 비밀을 숨기기에도, 갈등을 심화시키기에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납작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잔가지를 쳐내고, 핵심에 집중한 이야기가 몸 쪽으로 꽉 찬 직구를 날리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페이퍼맨>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은 새로운 감독과 작품들을 만나는 티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데요. 2009년 <업>과 함께 선보였던 단편 <구름 조금>의 감독은 2023년 개봉한 <엘리멘탈>피터 손 감독이 감독을 맡은 작품이고, 2011년 <메리다와 마법의 숲>과 함께 선보인 단편 <라 루나>는 <굿 다이노>의 각본가이자 2021년 개봉한 <루카>의 감독인 엔리코 카사로사가 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책이나 영화처럼 긴 호흡의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혹,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계시다면 7분 남짓의 디즈니 단편들과 함께 차츰 차츰 호흡을 늘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디즈니 단편 애니메이션은 모두 디즈니+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걸어서 단막극의 매력 속으로

드라마 <KBS 드라마 스페셜> by. 또


<KBS 드라마 스페셜>은 매년 진행되고 있는 단막극 시리즈 프로그램입니다. 한 시리즈당 10개 내외의 단편 드라마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죠. 각 단막극은 드라마와 단편영화의 경계에서 예술을 만들어내요. 한 마디로, 공중파 드라마라고 하기엔 실험적이고, 단편영화라고 하기엔 대중적인 스토리를 풀어나가죠.

 

수능출제위원으로 입소한 합숙소에서 전남친들을 만나게 되는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나, 같은 수영장에 다니는 남자를 짝사랑하다 혐관이던 수영강사와 사랑에 빠지는 <참치와 돌고래>는 16부작 로코 드라마를 1화로 훅 압축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반면, 연극 연출가가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유품을 정리하며 공연준비를 이어가는 극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아득히 먼 춤>이나, 루틴 없이는 공조차 던지지 못해 프로 입단을 하지 못 할까봐 두려워하는 고교야구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SLOW>는 독립영화의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죠.

 

몰아서 보다 보면, 어느 영화제의 단편영화 섹션 상영관에 앉아있는 것 같기도, 집 거실에서 엄마의 무릎을 베고 낄낄대는 것 같기도 한 복합적인 기분을 하나의 시리즈 안에서 느낄 수 있죠. 젊은 작가들이 입봉을 거치는 관문이기도 하고, 독립영화씬의 배우들이 살벌하게 열연을 펼치는 무대이기도 해서 좋아합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초호화 라인업이 따로 없는데요. <아득히 먼 춤>의 구교환 배우, <SLOW>의 곽동연 배우, <집우집주>의 이주영 배우, <일의 기쁨과 슬픔>의 강말금 배우, <도피자들>의 이학주, 김새벽 배우 등 지금은 메인 스트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들의 낯선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귀한 시리즈죠.

 

10년 넘게 계속되어오고 있어 편수만해도 어마어마한데요, 그 중에서도 딱 네 작품 엄선해보았습니다. 맛보기 스푼으로 드셔 보시고, 취향에 맞으면 한편씩 천천히 꺼내 먹어보세요. 마침, 오는 10월 14일부터 <KBS 드라마 스페셜 2023>이 시작된다고 하니, 부디 영업이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 <드라마 스페셜> 시리즈는 KBS VOD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위대한 계춘빈 (2010)
  미술치료센터를 운영하는 남자와
유치원 교사인 여자를 둘러싼 로맨틱 코미디
정경호와 정유미의 괴짜 연기 대격돌!
연우의 여름 (2013)
의도치않게 친구의 행세를 하며,
맞지 않는 옷을 입듯 '척'을 하다
끝내 자신의 이름을 찾는 이야기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 (2011)
10대, 30대, 50대 각 세대 레즈비언들의
삶과 사랑, 고난과 이해를 다룬 작품
레즈비언을 다룬 최초의 공중파 드라마!
집우집주 (2011)
초라한 집에 콤플렉스를 가진 주인공이
우연히 친구의 빈집에 들어가
자신의 집인 척 살게 되는 이야기
[절기 레터] 올해의 열아홉 번째 마디

실제론 짧지만 영원히 함께 한다고 믿는 것들엔 뭐가 있을까요? 저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뜨고 첫 울음을 터뜨린 순간부터 지금의 나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 1분 1초를 곁에서 함께한 사람들이니까요. 당연히 죽을 때까지도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아요. 가장 잘 대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같은 이유로 가장 모질게 대하게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사실은 영원히 내 곁에 있지 않은데 말이에요. 갑자기 왜 이러냐고요? 가족 여행 가서 싸워놓고 지나치게 깊이 후회하는 INFJ입니다. 그냥 지나가세요...

                                                         From.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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