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개들은 어떤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저희 집 견공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집에는 세 마리의 견공 가족이 있습니다. 마루(풍산개)와 지노(시바견), 그리고 새미(스피츠와 포메라니안의 믹스견 추정)입니다. 대형견인 마루와 지노는 마당에서 살고, 소형견인 새미는 밤에는 저희 부부와 집안에서 지내고 낮에는 마당에서 놉니다. 개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희 집 마당에는 나무와 돌, 수도, 테이블과 조명등 등 장애물투성이입니다. 자칫하면 목줄이 걸려 견공들을 꼼짝도 못하게 하는 장애물들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저희 부부 중 한 사람이 견공의 목줄을 풀어줍니다. 문제는 집안에 있는 저희 부부가 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때 자기를 구해달라고 짖기만 하면 저희 부부가 달려 나갈 텐데, 견공들은 자기를 위해 짖는 법이 없습니다. 한겨울 영하 14-5도의 한파 속에서도 저희 부부가 나오기를 마냥 기다릴 뿐입니다. 그 와중에도 어디선가 인기척이 나기만 하면, 마당이 떠나갈 듯 짖는 견공의 소명에는 조금도 소홀함이 없습니다. 소명을 위해 짖을 뿐 자기를 위해서는 짖지 않는 견공들은, 늘 자기만 위해 울부짖는 인간보다 확실히 한 수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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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
예수의 산상수훈으로 비추는 십계명의 본뜻 ‘선, 정의, 법, 사랑’을 집대성하다
저자는 그동안 ‘선, 정의, 법, 사랑’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성경에 기초한 연구를 지속해 왔으며, 이 책은 그 사유를 십계명 위에 결실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십계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산상수훈, 그중에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발견한다. 팔복에서 시작해 율법의 완성으로, 다시 동해보복의 금지와 원수 사랑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선, 정의, 법, 사랑’의 핵심이 응축되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틀 안에서 그는 ‘선’을 여러 층위로 나누어 바라본다. 최고선과 구원선, 사회적 가치로서의 선, 질서로서의 선, 그리고 새 계명으로서의 선. 각각의 결을 따라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내며, 독자가 그 의미를 차근히 따라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더 나아가 그는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의 계명들이 산상수훈을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관점 속에서 새롭게 읽혀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계명이 폐기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 더욱 온전하게 완성되고 깊어졌다는 고백에 가깝다.
이 책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십계명의 성격과 산상수훈과의 관계를 정리하며 전체 논의의 틀을 세우고, 2부에서는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계의 준칙’이라는 시선으로 풀어내며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3부에서는 십계명의 제정 목적과 해석 원칙을 짚은 뒤 각 계명을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4부에서는 십계명을 관통하는 두 축인 ‘정의와 사랑’을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다시 비춘다. 특히 ‘은혜적 정의’와 ‘원수 사랑’은 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적인 통찰이다. 마지막 5부에서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계명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직시하며, 그 대안으로서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지니는 의미를 제시한다.
이 책은 법을 설명하면서도 결국 삶을 묻고, 계명을 해석하면서도 끝내 사랑에 이른다. 그 길 위에서 독자는 정의가 어떻게 은혜로 건너가는지, 그리고 법이 어떻게 생명이 되는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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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넣어둔 편지]
편집부, 박혜란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 개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일이다.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스라엘의 시간, 이 설교가 실제로 선포되던 시간, 그리고 오늘의 시간이다. 1995년에 전해진 설교의 수요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그것은 오늘도 인간의 동일한 죄성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찾아 ‘연애하듯’ 떠돌던 이스라엘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부정할 수 없는 거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오직 하나님이 공급하신 것만을 의지하며 살았다. ‘만나’는 날마다 거두어야 했고,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다. 구름이 머무르면 멈추고, 구름이 움직이면 함께 움직였다. 광야의 삶에서 그들이 신경 쓸 일은 많지 않았다. 옷은 해어지지 않았고 신발도 닳지 않았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모세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으로 그들을 깨우치시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하셨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넘치는 풍요는 오랜 훈련을 잊게 만들었다. 광야에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며 힘들게 살았지만, 손에 쥔 ‘내 것’은 없었다. 반면 가나안 사람들은 까다로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풍요를 누리는 듯 보였다. 이스라엘은 그들처럼 더 잘살고 싶어졌고,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졌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가나안의 이방 풍습과 우상에게 마음을 내어주었고,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호세아와 고멜의 비극적인 결혼은 바로 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하나님의 계시였다. 고멜은 호세아보다 더 많은 것을 줄 것처럼 보이는 다른 남자를 따라나섰지만, 결국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남편은 아내가 미웠지만, 그럼에도 불쌍한 마음으로 그녀를 찾아 헤맨다.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 쇠약해진 아내를 발견한 그는,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주인에게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그 순간부터 아내는 더 이상 옛 주인의 소유가 아니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너무나도 비싼 값으로 해방된 존재들이다. 그 값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이 구원이 취소되려면, 다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지만, 세상의 어떤 것을 모아도 그 값을 채울 수는 없다. 오늘 우리가 읽는 호세아의 설교는, 세상과 같아지려는 마음의 요동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수많은 성도들에게 일깨운다. 이스라엘은 죄악의 길에서 뜨거운 고통을 맛보았지만, 그 고통의 밑바닥에서 실은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한 것이다. 설교문에 등장하는 ‘하나님께 참으로 돌아온 사람’의 고백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와서 바른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많지만 하나님을 알았기에 저는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더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안 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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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또 멀리]
“이 책을 한번 읽어 보겠나?” 사람들은 김청송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책인가?” “이 책은 말일세, 성경이라는 책일세.” 사람들은 성경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별 필요 없네. 이 책은 위험한 책이 아닌가? 그리고 한문으로 쓰여 있어 어차피 난 읽을 수가 없네.” 그러나 김청송은 책을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이 성경은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적혀 있는 책일세. 자네 정도면 이해하고도 남을 걸세.” “한글로 된 성경이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김청송이 보여주는 한글 성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책이라는 인식 때문에 보기를 꺼려했습니다. 김청송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조선의 국경을 넘어 이곳 중국까지 도망쳐 온 이유가 뭔가? 살기 위해서 아닌가?” “그렇지. 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지.” “이 책은 말일세. 살기 위해 필요한 진리가 들어 있다네. 이 책대로만 살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네. 그리고 이 첩첩산중에서 이 한글 성경을 읽는다 한들, 누가 여기까지 와서 자네를 위협하겠나?”
김청송의 설득에 사람들은 한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의 조선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한 소작농이었지만, 관리들의 횡포로 인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양반 출신이 아니었기에 한문은 알지 못했지만 한글은 아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김청송이 건네준 한글 성경은 읽기 쉬운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안의 조선 사람들은 김청송이 직접 들고 와 나누어 준 한글 성경을 조용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책 파는 조선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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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나옵니다
𝓃𝑒𝓌 두제의 크레파스(가제)
독일에서 유학하던 저자는 어느 날, 예기치 못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게 된다. 익숙한 삶의 궤도를 내려놓고 그가 향한 곳은 척박한 아프리카의 땅이었다. 절박한 생계의 무게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사역의 터전을 일구어야 했고, 그 거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 발견해 간다. 화가였던 그는 어느새 선교사의 길 위에 서 있었고, 그렇게 이정표를 따라 도착한 곳이 기니비사우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그 땅에서 그들의 손에 사랑하는 딸을 잃게 되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맞는다.
시간이 흐른 뒤, 딸의 유품인 크레파스를 다시 손에 쥐게 되었을 때, 그는 멈춰 있던 시간을 조금씩 다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프리카 사람들의 굴곡진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 나가며, 마음 깊은 곳에서 비로소 용서와 회복이라는 이름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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