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지난해 3월 책팀으로 와 출판 담당 기자를 하다 이번 인사로 책지성팀장을 맡게 된 양선아입니다. 반갑습니다.
한겨레 북(Book) 섹션은 일간지 가운데 책 관련 기사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책 기사 지면을 2개 면으로 줄였습니다. 책 읽는 문화가 위축되면서 지면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죠. 그러나 한겨레 북 섹션은 커버스토리, 교양, 문학, 학술, 출판, 어린이·청소년 책까지 분야별로 소개합니다. 기자들이 신간을 검토한 뒤 매주 월요일 팀 회의를 통해 책을 엄선하고, 책이 선정되면 집중적으로 읽어 목요일까지 기사 마감을 합니다. 면마다 내로라하는 필자를 섭외해 좋은 칼럼을 싣고, ‘우리 책방은요’ ‘나의 첫 책’ ‘번역가를 찾아서’ 꼭지를 통해 다양한 책과 사람을 다룹니다.
책지성팀에서 일하면서 저는 책에 진심이고 책과 책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료들에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동료들과 그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요즘에는 자신의 글을 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읽는 사람이 줄어 걱정이라고요. 잘 쓰고 잘 말하려면 더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필자, 편집자,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을 저희가 일차로 잘 읽어내고, 독자들이 더 관심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고요.
에스엔에스(SNS)에 이러한 요지의 글을 썼더니 한 독자가 “매주 올라오는 추천 책들이 어떻게 선정되는지 궁금했는데 독자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 선정 방식에 관해 궁금한 독자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책거리’ 첫 글로 소개합니다. 북 섹션에 대한 의견 있다면 언제든 메일 주세요.
귀 기울이고 소통하겠습니다.
양선아 책지성팀장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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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는 지났지만 진정한 광복은 아직 오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기관의 성격을 의심하게 만드는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거기에다가 ‘중일마’니 ‘사과의 피로감’이니 하는 괴이쩍은 언설을 보고 듣고 있자니 조선총독부가 이 땅에서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실제로 작고한 작가 최인훈은 벌써 반세기도 더 전에 조선총독부의 지하 방송이라는 설정을 담아 연작 단편 ‘총독의 소리’를 쓴 바 있습니다.
역사학자인 이계형 국민대 교수가 <한국독립운동,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을 쓴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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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가시지 않은 일제 잔재, 갈수록 노골화하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 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권력 등 김구와 안중근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통탄할 만한 사태들이 열거됩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점에 1949년 6월6일 친일 경찰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습격과 그 20일 뒤에 벌어진 안두희의 김구 선생 암살이 있습니다. 악독한 일제 경찰 등 친일파들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은 이승만의 반역적 행위가 광복의 취지를 근본에서부터 어그러뜨린 것입니다. 이계형 교수가 “민족 양심과 사회정의, 나아가서는 민족정기의 패배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반민특위 습격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고 지적하는 게 그 때문입니다.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와 각료들이 참배하는 데 대해 패전국 일본의 “멈출 수 없는 관습”이라 두둔하는 대통령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와 기업,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숨기고 군함도와 사도광산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일본과 그에 대해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한국 정부,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울현충원 묘역 등, 지은이가 독립운동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까닭을 책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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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치인은 ‘김대중 정신’을 얘기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은 지난 18일, 여야 정치인들은 대거 추도식에 참석해 저마다의 ‘김대중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다들 구호처럼, 하나의 레토릭처럼 ‘김대중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치 지도자이자 세계적 지도자였던 김대중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 정신을 삶 속에서 구현해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최근 출간된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김대중 정신’이 무엇인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그 정신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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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당장은 정의가 망하고 역사가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정의가 승리하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원칙과 철학은 없고 권력만 추구하는 정치인이 많은 현실에서, 또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어른이자 한반도 평화를 이끈 ‘인간 김대중’의 매력에 푹 빠져들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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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21일 작가 김애란(44)의 새 책 출간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첫 장편 이후 13년 만입니다. 기다리는 독자들 많았을 법합니다. 막상 작품에 들인 시간은 3년반 정도 되었답니다. 1년 동안은 제주로 아예 혼자 건너가 집필에 몰두했고요. 창작을 위해 특별히 ‘이격’을 필요로했던 작가는 아닌데, 고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가족의 배려와 권유로 제주에서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이번 작품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서 ‘가족’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겁니다. 17살 시한부 인생을 통해 ‘가족’의 온기를 명랑히 전했던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부터 작가가 꽤 삐뚜름히 ‘가족’과 ‘성장’의 의미를 따져 물은 결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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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성장이란 “시점 바꾸기”로 “다른 사람의 자리,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와 그 자리가 더 커지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때 가족도 자란다, 가족다워진다, 고 할까요.
고2 겨울방학을 맞은 안지우, 오채운, 김소리가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저마다 시련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상처가 있습니다. 모두 가족의 죽음과 관련합니다. 각기 방식으로, 가족으로부터 달아나려 하지요. 청소년기 “성공, 성취를 이루려기 보다 반대로 무언가 하지 않으려는, 무언가 그만둔 아이들”의 “재능이 구원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작가는 그렇게 직조합니다. 해서 이번, 명랑한 김애란은 없습니다. 대신 아려옵니다. 채운 엄마 박태선이 남긴 편지가 꼭 작가의 말 같습니다.
“이제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마. 채운아, 그게 설사 너와 같은 지옥에 있던 상대라 해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어려 아장아장 걷던 채운이 골목으로 들어갈 때마다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다던 태선은 이어 씁니다.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무슨 사연일까요. 후반부인데, 거기 닿았을 때 앞서 김애란을 ‘아주 조금’ 의심한 마음을 거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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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economics)은 근대에 태어난 학문으로 여겨집니다.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가 근대경제학의 아버지로 거명되고,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1776)이 근대경제학의 출범을 알린 저작으로 꼽히죠.
그러나 경제학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국부론’ 탄생보다 2000년 앞선 고대 그리스에까지 이릅니다. 그 고대 그리스 시대 경제학의 모습을 알려주는 저작 가운데 하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으로 내려온 `오이코노미케’(oikonomike)입니다. 이 책이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의 역주를 거쳐 ‘<아리스토텔레스 가정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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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을 빌려 통용돼온 일종의 위서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이 책을 쓴 것일까요? 문헌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사후(기원전 322년) 50년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사람들이 이 텍스트의 원본을 썼으며, 이 원본에 후대의 가필이 더해져 지금의 모습이 된 것으로 봅니다. 눈여겨볼 것은 이 텍스트의 배후에 두 종의 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중 하나가 플라톤의 동시대인 크세노폰이 쓴 <가정경영론>(오이코노미코스)이고, 다른 하나가 ‘가정경영’(오이코노미아)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제1권입니다. 이 두 사람의 주요 논의가 이 책의 이론적 바탕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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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마리 고양이는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새해 무렵 태어났기 때문에 메리, 크리스, 마스, 앤, 뉴, 이어라고 불렸습니다. 고양이들이 사는 집 일곱살 아이의 재치였는데 해피가 빠진 건 강아지 이름 같아서였습니다. 마지막에 태어난 이어는 유난히 요령이 없어서 엄마의 젖을 먹으려 고양이들이 달려들면 못 끼어들고 배를 곯기 마련이었습니다. 엄마 고양이 보나는 고양이들이 잠이 들면 이어를 물고 구석으로 가 젖을 먹였습니다.
여섯 마리 중 마지막 두 마리 뉴와 이어는 기자의 집으로 와 9년째 살고 있습니다. 저녁 8시쯤 되면 뉴는 목소리를 내서 조릅니다. 동결건조 닭을 먹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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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에 담아주며 이어까지 부르지만, 이어는 엉덩이를 실룩이며 돌아다닐 뿐. 뉴는 자기 그릇에 담긴 닭을 다 먹고 이어 밥그릇을 향해 입맛을 다시고는 떠납니다. 이어는 나중에야 와 ‘온전한’ 간식을 먹습니다. 참고로 이어는 뉴보다도 1㎏이 더 나갑니다. 뉴·이어를 모성애와 공정성에 대한 감각의 사례로 들 수 있을까요.
자신이 기르는 개 제스로를 대상으로 한 실험과 관찰을 비롯하여 이런 사례를 수천 가지 수집해온 동물학자 마크 베코프가 <동물의 감정은 왜 중요한가>에서 동물들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유머 감각, 과시 행동, 모성애, 애도와 슬픔, 창피함 그리고 도덕성과 공정성까지… 그 목록은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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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개의 우주를 보았어요"
장혜경 번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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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공부를 마치고 강단에 섰지만, 강의보다는 번역이 더 적성에 맞고 재미있어서 전문 번역가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장혜경 번역가는 1997년 첫 번역작 루이제 린저의 <아벨라르의 사랑>을 펴낸 이후 지금까지 230여권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독일인의 사랑> <변신>과 같은 고전 소설부터 자기계발, 역사, 철학, 심리까지 독일어 번역의 전방위적 분야에서 역자 이름을 남겼습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우주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그 우주를 200개 넘게 본 셈이죠. 번역가는 책을 해부해가며 뜯어가며 읽는 사람인데, 그렇게 농밀하게 200여개의 우주를 봤으니, 미약하게나마 우주의 파편 정도는 제가 취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정말 복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우스개로 수능 다음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저는 과거로 돌아가도 번역을 하며 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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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페터베르의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갈매나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갈매나무), 로베르트 호프리히터의 <세상의 모든 균류>(생각의집), 토르비에른 에켈룬의 <숲에서 1년>(심플라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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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일대로15길 6 3층
🔗instagram.com/booksalon.otium
"남편은 음악에 진심이었어요. 저는 책에 그랬죠. 다른 이들 못지않게 바쁘게 살아온 삶의 한장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의기투합했습니다.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고,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그는 직전 문화방송(MBC) 사장이었고, 저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입니다. 정부가 방송 장악을 예고한 가운데 험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풍파를 견딜 수 있도록 쉼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치더라도 음악과 책을 통해 다시 기운 낼 ‘문화 충전소’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중략) 우리 부부는 살롱에 꽂혔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음악과 책으로 사람을 엮어내는 공간에서 누군가 기운을 충전하고, 누군가 영감을 얻고, 누군가 뭐든 작당하고 모색하면 좋잖아요. 물론 커피와 술도 곁들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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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여름의 천사
서로를 보면
열이 오른다 자취방 창가로 불어오는 여름
높이 들어 잔이 넘치도록 마시는 여름
거리에 쏟아지는 여름이
마음을 와락 적신다
어느 날은 햇살 아래 빛나는 너의 웃음이
여름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러한 여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의 여러모로 비슷한 일상이
뜨거운 시절이라는 사실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기억하자
이 여름이 우리의 첫사랑이니까
이제 시작이니까
너와 함께 있으면 내 삶이 다 망쳐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그래서
네가 좋아
📖창작동인 뿔(최지인·양안다·최백규)의 시집
<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걷는사람 시인선 115)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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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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