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나 뉴스레터 vol.10] 글쓰기의 목적


아이가 매일 일기를 쓰는데, 글쓰기가 안 느는 것 같다고요?


안녕하세요, 쿨한나입니다.

오늘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예요.

정확하게는, “왜 우리 아이는 매일 쓰는데 안 늘까?“에 대한 이야기요.


이 질문, 한 번쯤 해보셨죠?

저도 그랬어요.

혜린이가 어릴 때, 저도 당연히 일기를 쓰게 했어요.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학교에서도 숙제로 내주고, 주변에서도 “일기 쓰면 글쓰기 실력이 는다”고 하니까요.


근데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일기는 거의 다 비슷해요.

오늘 학교 갔다. 급식 먹었다. 맛있었다. 집에 왔다. 재밌었다.

혹시 우리 아이 일기장, 이렇게 생기지 않았나요?


저는 이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매일 쓰는데, 왜 늘지 않을까. 분명히 성실하게 쓰고 있는데, 왜 글이 깊어지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깨달은 게 있어요.

일기는 기록이지, 글쓰기가 아니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글쓰기의 본질은 “생각하기”예요.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고, 정리하고, 연결하고, 표현하는 과정이요.

이 과정에서 아이의 사고력이 자라요.


그런데 일기는요, 이미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거예요.

생각할 게 없어요.

기억을 떠올리고 옮기는 거니까요. 오늘 뭐 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잖아요.

거기에 “생각”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어요.


물론 일기도 잘 쓰면 깊어질 수 있어요.

“오늘 친구랑 싸웠는데,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보면…“이라고 쓸 수 있죠.

그런데 솔직히, 초등학생한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렵잖아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실 나열에서 멈춰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일기가 나쁜 게 아니라, 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가 “생각하는 글”을 쓰려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생각하는 글을 쓸까요?

저는 혜린이한테 일기 대신 “이야기”를 쓰게 했어요.


1학년 여름방학이었어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한 건 아니에요.

사실 처음엔 글로 쓰지도 못했어요. 말로 했어요.

제가 옆에 앉아서 물어보고, 혜린이가 대답하고, 제가 컴퓨터로 받아 적었어요.


“주인공 이름 뭘로 할까?”

“여자야 남자야?”

“몇 살이야?”

“어디 살아?”

“뭘 좋아해?”


이렇게요.

이게 왜 다를까요?


일기는 “오늘 뭐 했어?“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답이 정해져 있어요. 기억을 꺼내면 돼요.

그런데 이야기는 “이 아이는 누구야?“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답이 없어요. 만들어야 해요.


이 차이가 엄청나게 커요.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아이는 비로소 생각을 시작해요.


주인공이 뭘 좋아하는지 정하려면, 세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떠올려야 해요.

주인공이 어디 사는지 정하려면, 자기가 아는 장소들을 꺼내봐야 해요.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할지 정하려면, 원인과 결과를 연결해야 해요.


이게 전부 “생각”이에요.

그리고 이 생각들이 글이 되는 거예요.


사실 저는 이렇게 믿어요.

모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각하기”예요.


수학을 왜 배울까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고요.

과학을 왜 배울까요? 현상을 관찰하고 왜 그런지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고요.

국어를 왜 배울까요? 읽고,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힘을 기르려고요.


전부 “생각”으로 연결돼요.

그런데 우리가 아이한테 시키는 것들을 가만히 보면,

생각하게 만드는 것보다 기록하게 만드는 것,

외우게 만드는 것,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많아요.


일기도 그중 하나였던 거예요.

매일 쓰니까 뭔가 하고 있는 것 같고, 성실해 보이고,

습관이 되는 것 같지만, 정작 아이 머릿속에서는 별로 일어나는 게 없었던 거예요.


저는 그게 아까웠어요.

아이가 쓰는 그 시간, 그 노력, 그 성실함이요.

같은 시간을 쓰는 건데, 방향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거든요.


혜린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처음에는 정말 짧았어요. 주인공 이름 정하고, 성격 정하고,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말로 했다고 했잖아요. 그 정도였어요.


근데 저는 그게 괜찮았어요.

왜냐하면, 그 짧은 과정 안에서도 혜린이는 분명히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말로 하던 게 글로 바뀌고, 한두 줄이 한 페이지가 되고, 한 페이지가 여러 페이지가 되고요. 캐릭터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건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해결이 생기고요.


아이가 쓰는 이야기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옳은 것과 그른 것,

용기와 두려움, 우정과 배신.

이런 것들을 아이가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탐색하고 있었어요.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요.


그게 글쓰기의 힘이에요.

생각하게 만드는 글쓰기의 힘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게요.

“우리 애는 왜 매일 쓰는데 글쓰기가 안 늘지?”

이 질문의 답은, 쓰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 생각이 부족한 거였어요.

그리고 아이를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아이에게 “네가 만든 세상”을 갖게 해주는 거예요.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신이 돼요.

세상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사건을 만들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표현해요.

그게 진짜 글쓰기입니다.


일기가 나쁜 게 아니에요.

다만, 일기만으로는 아이의 생각이 자랄 공간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오늘 저녁, 아이한테 이렇게 물어봐주세요.

“오늘 이야기 하나 만들어볼까? 주인공 이름 뭘로 할까?”

아이 눈이 반짝이는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반짝임이,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