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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3매 |  최갑수

양평과 몽골의 색소폰 소리

어제 양평 단월면에 있는 한 펜션에 취재 때문에 왔다. 소리산 골짜기에 자리한, 편백나무로 지어진 펜션이다. 앞에는 울창한 잣나무숲이 펼쳐진다. 펜션에 하루 묵고 그 감상을 글로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사진도 찍을 겸 좀 일찍 도착했는데,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골프 연습을 하던 펜션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펜션이 쉬는 날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편히 쉬시다 가세요. 작가님은 취재 때문에 특별히 묵게 해드린 거라서요.”

“아, 네. 고맙습니다.”


펜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사진을 사진을 찍었다. 사장님이 커피를 가져와서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계시면 심심하지 않으세요?”

“아뇨. 얼마나 좋은데요,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근데, 저 말씀 드릴 게 좀 있는데…….” 하며 사장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슬쩍 내 앞으로 밀었다. 네네. 말씀하세요. 펜션이나 호텔에 취재를 오면 찍은 사진을 좀 받을 수 있느냐고 부탁하시는 분들이 많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 드린다. 그게 뭐라고.

“제가 요즘 면사무소에서 색소폰을 배우고 있어요. 오늘이 레슨을 들으러 가는 날인데, 아직 연습을 다 못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색소폰을 좀 불어도 될까요? 그렇게 시끄럽진 않을 거예요.”

“아, 네. 전 괜찮습니다. 연습하셔야죠.”

조용히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제발, 괜찮은 실력이길 바랄 수밖에. 하지만 나는 색소폰을 멋지게 부는 아마추어 중년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은 그렇게 색소폰을 불러 제끼는 것일까.


사진을 찍고 숙소로 와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니, 양평이 원래 이렇게 먼 곳이었어? 파주에서 오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숙소 근처 마트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고 낮잠이나 한숨 자볼까 하는데,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사알던~ 고향은~.’ 왜, 색소폰을 부는 중년들은 죄다 ‘고향의 봄’을 불러 제끼는 것일까? 시계를 보았다. 오후 네 시였다.


몇 해 전 몽골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다른 작가 두 명과 함께 몽골 울란바토르와 고비 쪽을 여행 중이었다.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그날이 생일이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게르 안에서 조촐한 생일 파티를 열기로 했다. 저녁을 먹는데 게르 밖 어딘가에서 피리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가만히 들어 보니 그건 분명 ‘나의~ 사알던~ 고향은~’이었다. 아니 이역만리 몽골의 산골짜기 아래서 어떤 이가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는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노래의 출처를 알게 됐다. 대구에서 오카리나 동호회 분들이 몽골로 단체 여행을 온 것이다. 어차피 식사를 하는 장소는 한 곳이었으니 그분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남녀 열 명 정도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그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고, 식당에서 케이크로 간단하게 생일 세리머니를 하는 우리에게 오카리나 팀 중 한 분이 나중에 우리 텐트로 놀러 오겠다고 했다.


저녁을 다 먹고 우리는 우리 숙소 텐트로 자리를 옮겨 파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세상에 미러볼 기능이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다니! 일행 중 누군가가 가져온 이 신기한 물건 덕분에 우리 게르는 순식간에 몽골식 나이트클럽으로 변했다. 나와 일행, 드라이버와 가이드는 징기즈칸 보드카를 흡입했고 양 육포를 뜯어대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사이 어렴풋하게나마 희미한 오카리나 멜로디를 들은 것도 같다. 나의~ 살던~ 고향은~.


그렇게 한창 놀고 있는데, 갑자기 게르 문이 열리며 등산복을 입은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합니다.” 그러고는 입구에 서서 다짜고짜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했다. 해피 버어스데이 투우유~. 우리는 징기스칸 보드카가 가득 담긴 잔을 들고 DJ DOC를 들으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던 우리는 갑자기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이드가 후다닥 스피커를 껐고, 우리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 박수를 치며 오카리나 반주에 맞춰 생일 축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주머니는 오카리나로 두 곡을 더 연주하고 돌아갔다. '고향의 봄'과 '아리랑'.


다음 날, 우리는 사막으로 낙타를 타러 갔다. 나는 낙타 행렬 사진을 찍어야 했기에 일행과 있지 않고, 혼자 떨어져 사구 위에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막의 능선을 따라 일렬로 걸어가는 멋진 낙타의 행렬을 찍어야지.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오카리나의 멜로디. 아, 이건 분명 환청이겠지? 하며 고개를 흔드는데 그 소리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의 사알던 고향은~. 나는 오카리나 멜로디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초록색,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등산복을 입고 챙이 넓은 등산 모자를 쓰고, 하얀 장갑을 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카리나를 불고 사구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 뒤로 모래바람이 일었다. 아,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일행이 내 앞에 멈춰 서고 어젯밤 우리 게르에 우리를 찾아왔던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제, 생일 파티 즐거우셨어요? 저도 오카리나로 해피 벌스 데이는 처음 불러봤어요. 제가 좀 많이 서툴렀죠? 호호호.” 아, 네. 하하하. 덕분에 디제이 디오씨는 집으로 갔답니다.


“근데, 저, 부탁이…… 있습니다만…….” 말을 건넨 분은 딱 봐도 오카리나 일행의 리더, 그러니까 오카리나 동호회 회장님이었다. 아, 네……? “저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보아하니 카메라 전문가 같은데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 사진을 좀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그, 그러죠. 사진 찍는 거야 뭐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아직 낙타를 탄 일행이 오려면 시간도 좀 남았다. 회장님은 내게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오카리나 동호회는 사구 위에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것 같지는 않았다. 일제히 몸의 각도를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돌리고 오카리나를 입술에 갖다 댔다. 나는 그들의 포즈를 본 순간, 갑자기 사진가로서의 의욕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네! 좋아요. 세 번째 분 몸을 살짝 더 돌려보세요. 네, 네, 좋습니다! 자, 이제 힘껏! 오카리나를 불어봅시다! 나의~ 사아알던~ 고향은~. 오카리나의 떼창이 사막 위로 흩어졌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고향이 봄’이 사막 위에서 울려 퍼지고, 나는 전에 없던 열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멋진 연주였어!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어! 내 생애 최고의 연주야! 나는 회장님께 휴대폰을 건네주었고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서로의 손을 힘껏 쥐었다. 정말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정말 멋진 연주였어요. 아,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 순간, 어떤 초록색 바람막이를 입은 남자 한 분이 내게 다가왔다. “저, 작가님, 제 일생일대의 소원이 있습니다.” 아, 네…. 또, 뭔가요? 남자는 검은색 가방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세상에, 그건 색소폰이었다. “사막에서 색소폰을 연주해 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오늘이 그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작가님을 만나네요. 혹시 제가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을 좀 담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초록색 바람막이 아저씨는 내게 휴대폰을 건넸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네……, 열심히 찍어 보겠습니다.


스승의~ 으은혜에는~ 하늘 같아서~. 사막에는 스승의 날 노래가 색소폰 선율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초록색 바람막이 아저씨의 색소폰은 몽골의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온몸으로 스승의 노래를 연주했고 이마 위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의 뒤로 특수효과처럼 일어나는 모래바람을 보며, 나는 짐벌이라고 챙겨올 걸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아 도대체, 왜 그랬을까.


멀리 일행이 낙타를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행렬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아마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라서 그랬겠지. 신기루를 봤다고 생각했겠지.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 몽골의 사막 한 가운데, 등산복을 입고 일렬로 선 채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사람들, 등산복을 입고 ‘스승의 은혜’를 색소폰으로 부는 사람, 그걸 휴대폰으로 열심히 찍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펜션 주인이 사는 집에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나아실 제 괴에로움 다 잊으시고……. 어버이날 노래다. 왜 남자들은 중년이 되면 색소폰으로 고향의 봄과 스승의 은혜와 어버이날 노래를 불러 제끼는 것일까. 고향이 그립고, 선생님과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 것일까. ✉️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자 편집자다. 요즘 피아노를 배워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혼자라는 즐거움 |  류진

혼자라는 쓰라림

일요일의 루틴을 좋아한다. 교회에 갔다가 20년 지기 친구들과 브런치를 혹은 런치를 즐긴 후 진짜 맛 좋은 커피를 내는 로스터리 카페에 가서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두런두런 나누는 일과. 이 일상을 별다른 노력이나 딱히 들이는 수고 없이 수년간 누릴 땐 내가 그 루틴을 좋아한다는 것도 몰랐다. 숨 쉬는 것처럼 너무 당연해서. 이제는 그런 날이 아주 간혹 온다. 솔직히 이런 나날은 ’멤버 중 한 명이 결혼해서‘라고 말해야 할 때 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라 한 친구가 주말에도 영업해야 하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해서 도통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다. 사는 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 친구가 다시 일요일을 일요일답게 누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웬일로 친구에게서 시간을 내서 나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뭘 먹으러 갈까? 연말에 함께 가기로 한 여행 계획을 짜야지. 커피는 오랜만에 거기서 마셔야겠다.’ 같은 기대감은 너무 사소해서 ‘기대감’씩이나 되는 단어를 붙일 일도 아니지만 이제는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크고 강렬한 쾌락보다 더 달갑다. 나이가 들면서 쫓게 되는 건 도파민이 폭발하는 활동보다 이런 작은 즐거움이, 아니 즐거움이라는 단어조차 잘 안 쓰는 일상이 별일 없이 이어지는 일. 우리가 너무 당연해서 ‘좋다’는 감정조차 딱히 느끼지 않는 매일의 삶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알게 된 후 내겐 그런 게 더 중요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약속은 취소됐다. “아파서 못 일어나겠다.”는 연락에 슬금 삐져나오려는 아쉬움을 꾹 누르고 친구에게 몸조리 잘하라는 위로를 건넸다. 대개 나는 약속이 취소가 되면 혼자 집에 있게 됐으며, 귀찮게 외출 준비를 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시끄러운 데 나가서 에너지를 뺏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큰 기쁨에 젖는 편이다. 그날은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입고 나가려고 손질해 둔 옷을 옷장에 도로 집어넣으며 맥이 풀려서 흐느적대고 있는데 그날 저녁 함께 운동하기로 한 다른 친구에게서 “아파서 못 나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아…

 

기대하는 마음은 약자처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구나. 연달아 취소된 두 개의 약속 사이에서 표출하지 못한 마음이 갈 곳을 잃고 내 집안을 표류하다가 조금 삐뚤어진 생각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혼자 해도 충분한 일, 혼자 나서도 될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의욕이 꺾여서 두문불출했다. 밀린 일, 밀린 집안일도 한쪽에 치워 놓고 침대를 부표 삼아 TV와 휴대폰 액정만 들여다보는 휴일. 어떤 땐 그걸 ‘천국’으로 묘사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영 내키지 않는다.

 

그런 날엔 왜 유독 다른 이들의 도란도란한 삶이 눈에 들어오는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들이 눈 부시게 좋아 보이는지. 나 자신에게 왜 그걸 선택하지 않았냐고 묻게 되는지. 이런 상념들이 앞다퉈 꼬리를 물면 몸과 마음이 푹 꺼진다. 메모장 앱을 열어 ‘선택하지 않은 것엔 대가가 따른다’는 문장 따위를 끄적이며 치미는 우울감에 한껏 젖은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해도 내 신상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상념의 질주를 막을 수 있었던 건(그래서 지금 멀쩡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건) 내 감정이, 기분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서다. 지난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걸 할 때도 우울하고 짜증이 나서 미간을 찌푸리는 나 자신을 알아차린 후 나는 ‘감정’이라는 요물을 지나치게 믿지 않기로 했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마는 먹구름 같은 거니까.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는 후회의 소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소하고 일시적인 상태라는 걸 알게 돼서. 물론 해탈한 수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에 줏대 없이 휘둘리지만… 적어도 내 귀에 내 목소리로 ‘정신 차리자. 이 감정은 구라야’라는 말을 꽂으면 나아진다는 걸 경험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느낀 외로움은 어디에 치우지도, 숨기지도 못하고 얄미운 모기처럼 죽지 않고 남아있다. 이런 마음을 인정하면 지는 거 같아서 좀처럼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데, 그날 정말 외로웠다. 앞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을 때 그러지 못하고 혼자 있어야 하는 나날이 더 많아질 텐데. 그럴 땐 어쩌지?

 

카톡 창을 열고 “어. 그래. 언제 한번 보자”는 공언을 날린 후 사라져 버린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의 이름을 검색했다. 외로움을 느꼈으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면 되지. 뭘 어쩌긴 어째. 하면서.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 도란도란한 세계가 열린다. ✉️

류진은 패션 잡지와 여행 잡지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다가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쓰고 싶어서 프리 워커가 됐다. 그게 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삶을 잘 꾸리기 위해 더 많이 보고, 읽고, 겪고, 쓰고, 부딪히며 산다.  @nomad_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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