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요리 |  최갑수

노래를 하다 보면 행복해진단다 - 제주 꽃멸치젓갈 파스타

결국 몸살이 나고 말았다. 아직 초보 편집자라 책 한 권을 내고 나면 앓곤 한다. 일인 회사라 기획, 제작, 마케팅, 홍보 등을 혼자서 다 챙겨야 하니 새벽부터 저녁까지 바쁘다. 요 며칠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고생도 심했다. 역시 세상일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 한 주였다. 몸이 아픈 이유는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이 서툴고 아직 능력치가 모자란 탓도 있을 것이다.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인생도 파스타 같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누구나 조금만 신경 쓰면 만들 수 있고, 맛없기는 웬만해서는 힘들고……. 인생도 파스타를 만들듯, 조금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고 어지간해서는 실패하지 않고,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놈의 인생은 파스타와는 정반대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살기가 힘들고, 성공이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고……. 그러니까 파스타나 만들어 먹자. 뭔가 잘한다는 기분, 행복하다는 충족감을 느끼고 싶으니까 말이다.


오후 2시 도저히 일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서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타이레놀을 먹고 보일러 온도를 한껏 높이고 침대로 들어갔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창밖은 어두웠다. 저녁 여덟 시였다. 다행히 몸은 한결 나아졌다. 땀을 제법 흘린 것 같았다. 티셔츠가 축축했다. 배가 고팠다. 먹은 거라곤 아침에 먹은 초콜릿 몇 조각과 단백질 바 뿐이다.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후배 시인이 며칠 전 보내준 멸치젓갈이 있었다. 제주 비양도 근처에서 잡히는 꽃멸치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투명한 젓갈통에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멸치들이 미라처럼 담겨 있었다. 후배 시인은 징그러워서 못 먹겠다고 했지만 내게는 맛있게만 보였다. 


아무튼, 오늘의 주인공은 너다. 안초비 파스타도 있는데 꽃멸치젓갈 파스타가 없으란 법은 없잖아.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해 보자. 요리와 인생에는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낙관과 긍정이 시도하게 한다. 이게 없으면 출발할 수 없다. 눈을 감고 과정을 천천히 시뮬레이션 해 본 다음 눈을 뜨고 힘껏 심호흡을 한 후, 그 시뮬레이션을 직접 실행에 옮겨 보는 거지. 게다가 이건 파스타다. 내 맘대로 만들어 먹어도 되는 음식인 것이다. 된장찌개처럼 말이다. 된장을 풀고 이것저것 넣고 끓이기만 하면 그럴싸한 된장찌개가 되듯, 냉장고에서 찾은 재료를 프라이팬에 넣고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린 후 들들들 볶아대기만 하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요리가 완성된다.


냄비에 물을 넉넉히 담고 소금 약간을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파스타를 잘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큰 냄비다. 면도 아니고 소스도 아니고 큰 냄비다. 작은 냄비로는 절대로 면을 제대로 삶을 수 없다. 물 500ml에 소금 반 스푼. 가장 맛있게 면을 삶을 수 있는 물과 소금의 비율이다. 나는 물 1리터에 소금 한 스푼을 넣는다. 물과 소금과 면의 비율은 1(L):10(g):100(g)이라고 보면 된다.


물이 끓는 동안 재료 준비를 한다. 파스타 면과 올리브 오일, 마늘, 꽃멸치젓갈. 이게 전부다. 파스타 면은 각자의 양에 맞게. 파스타 면을 쥐었을 때 1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이 내겐 적당한 양이다. 마늘은 10알. 마늘을 많이 넣는 편이다. 한국인이니까. 유튜브에서 어느 이탈리아 요리사가 알리오 올리오를 만드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늘을 듬뿍 넣어주세요. 3~4알 정도요.”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는 피식 웃은 적이 있다. 쩨쩨하게 서너 알이 뭐냐. 적어도 열 알은 넣어줘야지. 여긴 한국이라고 이 녀석아. 꽃멸치젓갈은 다섯 마리. 도마 위에 일렬종대로 늘어놓고 썰어준다. 약간 다진다는 느낌으로.

벌써 요리의 반이 끝났다. 물이 끓기 시작한다. 면 투하와 함께 타이머 작동. 나는 딱 6분 30초를 삶는다. 원래 7분을 삶아야 하는데 30초를 덜 삶는다. 파스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파스타 삶은 시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7분, 8분, 6분…… 여러 가지로 실험해 보았는데 내겐 6분 30초가 제일 좋았다. 6분 30초의 파스타 면이 내 취향인 것이다. 삶에서도 요리에서도 확실한 취향을 가진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 이 취향이 확고해지면 나중에 뭔가를 더 잘할 수 있게 되거든.


잘 달궈진 팬에 올리브오일을 촤촤촤 뿌린 후 얇게 썬 마늘 투하. 마늘 향이 잘 배이도록 정성껏 볶아준다. 타지 않게 약불에 살살살. 마늘 색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올리브오일과 어우러진 마늘 향이 콧속으로 스미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 상태다. 아픈 몸은 나았고 팬 위에서는 올리브오일을 잔뜩 머금은 마늘이 잘 익어가고 있으니까. 역시 맛있는 음식은 우리를 긍정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인간은 말이야, 행복해서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구. 노래를 하다 보면 행복해지는 것이지.


타이머가 울린다. 6분 30초가 지났다. 면을 건져 내어 마늘이 기다리고 있는 팬에 넣어 함께 볶아 준다. 중간중간 면수를 넣어 준다. 앞에서 면수 500그램에 소금 반 스푼이라고 한 게 이 때문이다. 가장 맛있는 면수를 만들 수 있는 비율이다.


자 이제, 면을 괴롭힐 차례다. 만테까레라고도 한다. 면수와 올리브오일은 물과 기름이다. 이 둘은 사이가 좋지 않다. 파스타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을 사이좋게 잘 섞이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면을 괴롭히는 수밖에 없다. 불을 약불로 놓고 프라이팬을 흔들며 면을 뒤집어주다 보면 면에 있는 전분이 빠져나오고 공기층이 생겨 면수와 올리브오일이 잘 어우러져 농도가 붙게 된다. 전분이 중재자인 셈이다. 가끔 알리오 올리오를 먹을 때 접시 바닥에 기름이 고이는 것은 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다. 아참, 앞에서 나는 면을 6분 30초 동안 삶는다고 했는데, 이는 조금 덜 삶은 것이다. 프라이팬에서 다시 익혀줘야 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 면은 완전히 익힌 상태에서 건지면 망한다. 


마지막으로 멸치젓갈을 넣고는 부서지지 않고 잘 섞이도록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저어준다. 여기에 액젓 약간을 넣고 마무리. 액젓이 파스타의 풍미를 더해 줄 것 같아서다. 접시에 담아 놓고 보니 제법 그럴싸하다. 맛있어 보인다. 제주꽃멸치젓갈파스타 이름도 나쁘지 않다. 다행히 냉장고에 화이트 와인 반병이 있다. 몸살도 나았으니까 와인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연두색 접시에 담긴 파스타가 예쁘다. 포크로 면을 집어 올린다. 짭조름하고 감칠맛 가득한 향이 올라온다. 와, 이건 분명 맛있을 거야. 역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해 봐야 한다니까. 우리가 요리를 하는 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행복한 기분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른이 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이라는 감각을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데 요리는 그 감각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파스타를 만들고 접시에 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를 조금이나마 회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맛을 보진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당신이 절망스러운 일을 겪고 있다면, 마음의 상태가 엉망이라면 주방 앞으로 가보시길. 달궈진 팬에 올리브오일을 잔뜩 두르고 마늘 몇 조각을 넣어보시길. 팬에서 올라오는 향긋한 마늘 향이 ‘잊을 건 잊자고. 다시 힘내보자고’ 하고 응원해줄 테니까. 주방은 가장 가까이 있는 응원의 장소, 우리가 콧노래를 맘껏 부를 수 있는 장소랍니다. ✉️

최갑수는 시인이자 작가다. 요리를 잘하지는 건 아니지만, 즐겁게 한다. 시집 『단 한 번의 사랑』과 에세이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등을 펴냈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Words | 나부터 행복하기

나는 불행하지만 네가 행복하면 괜찮아.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결국 행복의 총량은 '0'이 되잖아요. 각자가 행복한 상태에서 만나는 건 어떨까요? 그럼 행복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요? 오늘부터 자기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 alone&around

🏃‍♀️ 중년, 그들의 위기극복법 |  구완회

권력투쟁? 국가창업! - 한반도 고대국가의 어머니, 소서노의 선택

처음엔 황당했을 거다. 웬 듣보잡 청년이 남편의 아들이라며 찾아왔을 때. 그러고는 당황했을 거다. 남편이 그 청년을 아들이라 인정했을 때.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 같은 시츄에이션이람?


그녀의 이름은 소서노(召西奴). 졸본 지역 세력가인 연타발의 딸로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북부여 왕 해부루의 손자인 우태와 혼인했으나,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고주몽(高朱蒙). 8살이나 연하의 청년이었다.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기백은 있으나, 세력이라고는 겨우 그를 따르는 친구 몇 명뿐. 하지만 소서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 남자, 보통 인물이 아니야. 그리고는 결심하지 않았을까? 이 남자를 통해 새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그녀는 그를 선택했고, 그는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야망은 컸으나, 가진 것이라곤 두 쪽(?)뿐이었던 고주몽에게 소서노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을 것이다. 둘은 부부가 되었고, 새로운 나라의 창업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되었다. 마침내 고구려를 세우고 남편은 왕이, 자신은 왕비가 되었다. 그 동안 장성한 아들 둘은 왕위 계승 1, 2순위를 차지했고. 그렇게 모든 것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될 무렵, 남편의 또 다른 아들인 유리(類利)가 나타난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 47세. 자타공인 ‘성공한 중년’은 하루 아침에 ‘위기의 중년’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남편이 유리를 태자로 삼았을 때, 황당과 당황을 넘어 절체절명의 위기감이 엄습해 왔을 것이다. 유리가 남편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면 비류와 온조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자고로 권력이란 부모자식 사이도 원수로 만드는 법. 하물며 배다른 동생들쯤이야. 왕이 못 되어 아쉬운 게 아니라 목숨을 걱정해야 한다. 아직 유리가 자리를 잡기 전에 먼저 손을 쓸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고주몽이 아니라 소서노를 따르는 세력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권력투쟁을 넘어 내전에 이를 수도 있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고구려가 무사할 수 있을까? 두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도 참을 수 없지만, 남편을 통해 이룬 꿈이 산산조각 나는 것 또한 견딜 수 없다. 진퇴양란. 고민 끝에 소서노는 제3의 길을 선택한다. 새로운 국가의 창업.


소서노는 두 아들과 함께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새로운 나라는 좀 더 따뜻한 땅에 세우고 싶었다. 수많은 신하와 백성들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풋내기 형제가 아니라 이미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준 그 어머니를 믿고 따른 것이리라. 그렇게 졸본 땅을 떠나 도도히 흐르는 한강 유역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이곳에 나라를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장남인 비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새 나라를 바닷가에 세우고 싶어 했다. 그래?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 보거라. 신하와 백성 일부를 떼어서 비류에게 주고, 자신은 온조와 함께 백제를 건국했다. 바닷가를 찾아 나선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정착하지만 짠 물과 바닷바람 탓에 고전을 거듭하다 결국 나라를 세우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두 번의 건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소서노는 마침내 편안히 눈을 감았다. 향년 60세. 그리고 이천 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후, 한반도의 한 역사가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소서노는 조선 역사상 유일한 창업 여대왕일뿐더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사람이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중에서)  

구왼회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잡지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지금은 역사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물조물 내 손안의 우리 역사』 『재미있다 한국사』 등이 있다.이번 칼럼을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이 어떻게 ‘중년의 위기’를 이겨내고 일가를 이루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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