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느슨해진 한국어에 긴장감을 주는 것, MEME
수습위원 유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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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다양한 밈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밈은 역동적으로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가장 잘 나타내는 언어이며 거의 모든 삶의 요소에서 밈이 생겨나고 공유된다. 사회에 혼재해 있는 밈 중 하나를 골라 덧붙이는 말 없이도 자신의 마음 상태를 쉽게 나타낼 수 있고, 또 다른 이들은 그 신호를 단번에 알아차리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밈은 이렇게 맥락을 아는 이들끼리의 간단한 소통을 이루어냈다. 모든 밈의 원인이 뭡니까? 인터넷을 메워야. 그 영향력이 파괴적이든, 창의적이든 밈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느새 우리의 언어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밈. 이 밈은 도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왜 밈을 사용할까? 한국인 특) 유행하는 건 못 참기 때문일까? 과연 밈은 오히려 좋은 것일까? 밈을 누구보다 즐기고 사랑하는, 밈 없이 대화하지 못하는 필자의 궁금증에서 시작한 기사, 그럼 가보자고.
-볼드체로 표시한 부분은 차례대로 ‘한강을 메워야’, ‘00특’, ‘00는 못 참지’,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밈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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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이 도대체 뭔데?
밈(meme)은 모방(mimesis)과 유전자(gene)를 합친 말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해서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듯이, 밈은 언어, 사상, 태도, 유행과 같이 모방을 통해 뇌에서 뇌로 생각과 믿음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밈은 한 세대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공유되며 대중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행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고유한 문화적 유전자이다. 현대에 와서 밈은 인터넷에서 파생된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화를 일컫는 개념으로 넓게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수많은 밈이 양산되었고, 개중 일부는 이미 현실 언어생활의 영역까지 넘어왔다. 이전에도 밈과 비슷한 개념은 ‘드립’이나 ‘짤’, ‘유행어’라는 단어로 존재했다. 다만 이것들은 단순히 재밌는 말이나 이미지 등에 국한되었다면 밈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방을 통해 전파되는 생각, 믿음, 스타일, 행동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그렇다면 밈과 유행어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유행어와 밈의 범위와 구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대다수의 밈은 유행어보다 복잡다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얼죽아’ 같은 유행어는 뜻을 알기 쉽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원형을 알고 나면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만, 밈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펀쿨섹좌’ 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부 장관이 2019년의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할 때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더불어 평소 고이즈미 장관의 중언부언하는 말투를 비꼬는 측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MBTI 외향형과 내향형, 사고형과 감정형 등 대립 쌍을 이루는 성격유형에 따라 똑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재밋거리로 소비하는 것 역시 밈이다. MBTI 밈은 총 16가지 성격유형을 구성하는 각 특징을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소 난해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마케팅이 쏟아져 나올 만큼 성공한 밈 중 하나이다. 즉, 유행어에 비해 밈은 배경 스토리까지 이해해야 즐길 수 있는 고맥락적 언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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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은 만화 ‘메디툰’의 한 장면으로, 환자에게 도박 중독임을 알리는 의사와 이를 비웃으며 의사의 말을 부정하는 환자가 있다. 이 장면의 대사 중에서 ‘도박’을 치환하여 각자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중독된 수준의 애정을 표현하는 밈으로 인터넷상에서 퍼져나갔다. 이렇게 인터넷 밈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인터넷의 특성상 문화의 아이디어, 행동, 스타일이 이용자들의 창의성에 의해 변형되어 이미지와 영상의 형태로 확산된다. 즉 인터넷 밈은 단순히 웃긴 이미지, 영상, 유행어를 넘어서서 누구나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향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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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밈으로 대화할까?
일상에서 우리는 서로 어떤 유튜브 채널의 특이한 행동이나 말투, 또는 독특한 취향을 공유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공감대가 형성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밈은 유머를 함께하는 ‘우리’라는 정체성을 강화하여 그들끼리의 결속을 극대화한다. 유튜버 침착맨이 만들어낸 밈 중 ‘오히려 좋아’, ‘모어쌍’을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부연 설명 없이도, 그 밈을 공유하며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밈에는 ‘나 이거 아는데, 너도 이거 아는구나’라는 정서가 묻어있는 듯하다.
잘 알려진 밈을 언급하는 것을 통해, 일상 대화 속에서 미묘하고 말하기 복잡한 상황을 ‘잘 알려진 상황’으로 바꿔서 전달할 수 있다. 일화가 잘 알려진 경우라면 전체 이야기를 다 전달할 필요 없이 약칭을 이용하면 된다. 밈은 복잡하지 않다. 비록 아는 사람만 알더라도 까다로운 상황들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밈을 수사적으로 사용할 때는 상황과 밈을 비약으로 연결하는 순발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지루하게 설명하는 사이에 절묘함이 휘발되어 버린다. 한 번 상상해보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의외의 인물이나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한 놀라움의 감정을 구태여 설명하기보다는 ‘ㄴㅇㄱ’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짧은 분량 안에 간결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영상을 보고 유익한 내용을 빠르게 알게 되었다는 식의 감상보다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많은 공감과 웃음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다가, “우리는 그걸 주사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어요”라고 내뱉은 적이 있었다. 한 친구는 나의 말이 유튜버 선바가 만들어낸 밈임을 알아차리고 크게 웃었고, 다른 친구는 이 밈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을 신기하게 하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특정 밈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르는 기능을 한다. 그 순간 밈은 이렇게나 장벽이 높은 소통 방식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인터넷 밈은 주로 커뮤니티에서 생산되고 유통되기에 인터넷과 거리가 먼 사람은 인터넷 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폐쇄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식의 대화방식은 어떤 측면에서는 소통을 거절하는 내적인 대화이거나 독백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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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
언어는 대상을 인식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수많은 언중의 경험과 의식이 녹아들어 그 대상을 규정하는 사회적 합의의 토대이다. 어떠한 존재를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방법이 도구가 되기에, 수많은 타인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언어가 갖추어야 할 형태는 더욱 중요해졌다. 각자의 머릿속에 추상화되어있는 대상에 대한 혐오 의식이 밈으로 표현되어 나타났을 때, 이는 대상을 정의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기능한다. 밈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그 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까지도 비판 없이 믿게 되고, 그렇게 혐오는 확산되어 나간다. 그렇기에 혐오가 유머를 앞세우고 언어의 권력을 빌려 밈으로 둔갑하여 퍼져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
지난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탈락하는 편파 판정 논란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반중 정서가 온 인터넷 커뮤니티를 지배했고, 뉴스 기사나 유튜브, SNS 댓글에서 ‘착짱죽짱(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뿐)’이라는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분노는 “착짱죽짱이라더니 진짜였네”, “착짱죽짱은 과학이다”라며 개인을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으며, 편파 판정에 대한 개최국의 반응이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중국인들에 대한 일반화로 이어졌다. 지나친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에도 반사적으로 ‘착짱죽짱’ 댓글이 달리며 입막음한다. 이렇게 사라진 맥락 속에서 윤리적 문제는 따질 수조차 없다.
때때로 밈은 폭력을 부른다. 또한 가끔 밈은 약자와 소수자를 조롱하는 밈이 낄낄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 자체로 폭력이 되기도 한다. 밈이 가진 기본 속성은 웃음이기에, 혐오를 담고 있는 밈도 유머로 소비되고 끝난다. 그 과정에서 혐오나 편견은 가볍고 당연하게 여겨지며 차별적 인식은 더욱 공고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차별과 혐오의 공장이라면, 밈은 그것의 유통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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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쌓인 이 세계에서 우린,
줄임말이 대세로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말하는 시간조차 아끼고 싶어 무엇이든지 단 두 음절 혹은 세 음절 안에 축약했다. 소확행, 내로남불, 갑분싸 등의 단어가 우리 사회를 스쳐 갔고, 이제는 현상 자체가 한 단어 혹은 한 문장 안에 모조리 압축된다. 그리고 언어의 축약이 현실의 축약으로 이어진다. 과연 현실은 밈처럼 그렇게나 쉽고 단순하며 한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인가? 어떤 논쟁에 있어 ‘이 상황에 대해서는 이런 입장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하면 무슨 말이 돌아오는가. ‘무지성 쉴드’ 한 마디에 모든 논쟁이 유치한 편들기로 격하되고 모든 논리는 너절한 방패로 여겨진다. ‘중립 기어’라는 말은 얼핏 보면 사안이 명확하게 규명되기 전까지 신중한 자세를 표하는 것 같지만, 사실 어떤 입장 표명도,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논쟁가와 지식인이 될 순 없어도 인터넷 밈 안에 사고를 가둘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사고는 정확한 언어들이 흐름을 타고 이어질 때 비로소 정제될 수 있다.
친구들과 시험과 과제에 대해 한탄하며 우리의 입에서 ‘응 재수강하면 그만이야~’, ‘따봉종강아 고마워’, ‘포브스 선정 가장 과제가 많은 학과 1위’ 등의 문장이 자주 오갔다. 밈을 우리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면서 생기는 공감과 상황의 객관화에 저항 없이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생각이나 의견을 길게 풀어내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말을 반복하는 것에만 그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방대하고 유쾌한 밈이 재빠르게 앞서나가 생각의 확장을 막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올바르고 아름다운 말만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언어로 켜켜이 쌓인 이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거나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언어를 보다 확장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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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주소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120 제1 학생회관 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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