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아름다운 물길로 수놓여진 도시들로 유명한 중국 저장성에는 고대에 월나라가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복수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이곳에 당도합니다. 아버지와 형이 억울하게 죽은 뒤 오나라에 기탁한 초나라 사람 오자서는 오나라 군대를 끌고 초나라를 침공합니다. 이미 죽은 초나라 왕의 시체에 300여 차례의 매질을 가한 그는 "날은 지는데 길은 멀어, 순리를 거슬렀다"(日暮途遠, 倒行逆施)는 말을 남깁니다. 오나라 왕 부차와 월나라 왕 구천이 "섶 위에서 자고 쓸개를 맛보며"(臥薪嘗膽) 서로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저장성 샤오싱, 그러니까 옛날로 치면 월나라 수도 회계 출신인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1881~1936)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복수 이야기 하나를 ‘주검’(鑄劍·검을 벼리다)이란 단편으로 새롭게 쓴 바 있습니다. 대장장이는 왕의 명령으로 명검을 만들어 바치나, 더 좋은 검을 만들까 겁낸 왕은 대장장이를 죽여버립니다. 16살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또 다른 검을 들고 왕에게 복수하고자 하나, 그의 성정은 쥐 한 마리 잡지 못할 정도로 유약할 따름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대신 원수를 갚아주겠다”는 남자가 나타납니다. 아들이 스스로 넘긴 아들의 머리와 검을 들고 왕을 찾아간 남자는 끓고 있는 커다란 솥에 아들의 머리를 넣어 왕을 유인합니다. 그리고 왕의 머리를 잘라서 솥에 넣고, 이어 자신의 머리까지 잘라서 솥에 넣습니다. 어떤 게 누구의 머리인지 구분할 수 없어, 사람들은 세 머리를 모두 왕으로서 장례 치르게 됩니다….
복수에는 아무런 영광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파멸시키겠다는 마음은 나의 영혼을 갉아먹고, 끝내 나 자신도 파멸시킬 것입니다. 설령 복수에 성공한다 해도, 그것은 나를 향한 또 다른 복수를 낳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혈해심구(血海深仇)를 묻어둘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우리 ‘대신 원수를 갚아줄’, “원수 갚는 데 명인(名人)”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머리 하나쯤 흔쾌히 내놓는 희생만큼은 각오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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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와 '민주'가 떨어지면 큰일이 난다고 법석을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정확히 말해 '자유주의적 민주정'(liberal-democracy)이란 관념은 20세기 중반에야 나타났을 뿐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liberalism)의 결합은 애시당초 그리 필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을 연구한 미국 정치학자 조사이아 오버의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는 도덕적 신념 체계인 자유주의와 정치적인 사회질서인 민주정은 서로 떼어놓고 다뤄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럴 때 민주정 고유의 원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가져다주는 좋음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민주정은 폭정(tyranny)-그 주체가 소수이건 다수이건-을 거부하고 모두의 안전과 풍요를 도모하기 위한 근원적인 토대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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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란 말은 공화주의를 새롭게 풀이한 영국의 지성사가 퀜틴 스키너의 책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1998)에서 따왔습니다. 자유주의의 한계에 대해 조사이아 오버가 '아테네식' 민주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면, 스키너는 '로마식' 공화주의로 극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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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엔 수많은 '덕후'가 있으니, 우리 머리 위 저 아름다운 구름을 '덕질'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습니다. 영국의 작가 개빈 프레터피니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추종하는 사람들에 맞서 구름을 사랑하는 '구름감상협회'를 만들어 전세계 120개국에 5만3000명 이상의 회원을 모았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사람으로 꼽힙니다.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그가 쓴 첫 책으로, 구름의 종류에 따라 그 특징과 원리, 관찰하는 방법 등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대기의 기온과 습도의 변화를 반영하며 한 유형에서 다른 유형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에 구름의 본질은 바로 변화와 다양성에 있고, 이것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킵니다. 협회 회원들이 찍은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구름 사진들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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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빈 프레터피니는 동영상 강연 플랫폼 테드(TED)에도 출연해 '구름 사랑'을 설파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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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버즈(鴨脖子), 오리의 목을 다양하게 양념한 중국 요리입니다. 이걸 먹으려면 "씹히는 건 딱딱한 뼈인데 혀를 현란하게 움직여 뼈만 밖으로 뱉어 내고 고기를 훑어 내야 하는"데, 어쩌면 그건 우리의 삶을 닮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요리의 이름을 쓴 소설집 <야버즈>는 30대 중국동포 작가 전춘화의 첫 소설집입니다. "조선족 MZ세대 작가의 출현"이라 할까요.
소설집에 실린 5개의 단편들은 모두 "하다못해 마라탕과 양꼬치도 한국에서 정착을 했는데 우린 이게 뭐"냐 말하는, 한국 땅에서 어떻게든 '야버즈의 삶'을 살아내려는 중국동포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라는 굴레로 '압도될 수 없는 작은 개별적 삶'의 형색을"(임인택 책기자) 천연색으로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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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 예술, 문학, 심리, 기술 이성, 권리, 의무…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이 개념어들은 어디에서 들어와 어떻게 정착됐을까요. 에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유신 시대에 활동한 일본의 계몽사상가 니시 아마네(1829~1898)는 <백학연환>이라는 저술을 통해 이런 개념어들을 선구적으로 번역한 바 있습니다.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는 일본의 독립연구자 야마모토 다카미쓰가 이 <백학연환>을 읽어나가며 그 안에서 근대 개념어가 창출되는 과정을 살핀 책입니다. 엔사이클로피디아(Encyclopedia)를 '백학연환'으로 옮긴 제목에서부터, 니시의 작업이 서양 학술의 전체 지도를 그려내고 그로부터 일본 근대지(近代知)의 체계를 구상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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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디지털 산업을 '비물질'적이라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SNS에서 '좋아요'를 누를 때, 정보는 스마트폰, 공유기, 케이블, 데이터센터 등 여러 물질을 거쳐 움직입니다. 스마트폰에서 해저 케이블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것 또한 거대한 물질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물질의 세계는 역시나 지구에게 부담을 엄청난 부담을 줍니다.
프랑스의 언론인 기욤 피트롱은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에서 디지털 인프라를 둘러싸고 국가와 기업이 환경문제와 어떤 역학 관계에 있는지 추적합니다. "디지털은 우리를 본떠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하며, 그런 이유로 이 기술은 딱 우리가 하는 만큼만 친환경적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혜 작가)이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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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프리즘을 통과해 여러 색채를 보여주듯
번역가 김선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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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만약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 실비아 플라스, 수전 손택 같은 작가들을 좋아신다면, 그 작가들을 통해 이미 김선형 번역가와 만나셨을 겁니다. 아니, 김선형 번역가를 통해 그 작가들을 만나셨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김선형 번역가는 자신의 번역이 "체험 지향적"이라고 말합니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어머니들 아버지들 또 다른 사람들>, 제인 오스틴 전집 등 그가 번역하고 있는 작품들뿐 아니라, '작가' 김선형의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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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카렐 차페크의 <도룡뇽과의 전쟁>(열린책들), 시리 허스트베트의 <내가 사랑했던 것>(뮤진트리),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황금가지), 지넷 윈터슨의 <예술과 거짓말>(뮤진트리) 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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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들이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믿기지 않겠지만 동네책방에서는 자주 있는 일.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는 자주 운다. 처음 본 사람들끼리.
(…)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김애란 작가의 소설 <바깥은 여름>과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이다. 장일호 기자의 추천 책이다. 물론 원래도 읽고 싶어 관심을 가졌던 책이지만, 이제 ‘아는’ 사람이 된 그의 추천을 받아 읽고 있다. 이 사람의 겹과 두께, 결을 다시 느끼면서. 이제 보름 후면 또 다른 작가를 초청한다. 자립준비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때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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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수
컵 세 개를
4배속 연속으로 돌리고 돌리면서
꿈 꼭 찾으라 말하는
적수를
신이 있는지 없는지
당겨 보면 안다는 연줄을
백 번도 내다 버렸다 말하는 속마음을
오락가락하는 골목을
누웠다 하면 가난이 흐르는 방향을
세 번 말하면 다 거짓말이 되는 참을
📖석민재 시집 <그래, 라일락>(시인의일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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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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