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

이의철의 직업환경의학과 일터건강관리 3편

생활습관의학, 무엇이 다른가?

생활습관의학? 뭔가 좋을 것 같은데?


2019년 3월, 한국에서 아시아 생활습관의학회 국제 학술대회(ASLM 3rd Annual Conference)가 개최되고 난 후, 국내에서도 생활습관의학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행사에는 3번이나 심장수술을 받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식단을 순식물성으로 바꾸도록 설득해 체중을 14kg 감량하게 만들고, 이후 10년 이상 심혈관질환이 재발하지 않게 만들었던 딘 오니쉬(Dean Ornish)의 발표도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국내의 많은 심장내과 선생님들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하버드 의대 생활습관의학 연구소에서 요리의학(Culinary Medicine)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라니 폭락(Rani Polak)과 함께 발표를 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는데, 해당 세션의 내용 중 일부는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생활습관의학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사실 환자의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바꿔서 질병에 걸리지 않게 만들거나, 기존의 질병을 호전시킨다는 주장은 너무나 이상적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과서와 진료지침엔 약이나 시술을 선택하기 전이나 그 이후에도 환자의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바꾸도록 하라는 내용이 약방의 감초처럼 항상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생활습관의학에 관심을 보이며 환호하지만, 또 그런 이유로 이미 생활습관의학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생활습관의학이 기존의학과 다른 점


기존의학(Conventional Medicine)과 생활습관의학(Lifestyle Medicine)은 대립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약물 치료가 “최종” 치료인가, 생활습관 변화의 "보수단"인가에 있습니다. 적지 않은 경우 고지혈증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혈당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당뇨병은 고지혈증약의 부작용으로 명시되어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할 일은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고지혈증 약을 처방하는 것이 “최종” 치료라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당뇨병 진단하고, 약을 추가 처방할 준비를 하는 것 뿐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이나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약물을 고지혈증을 유발하는 근본 생활습관을 교정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바라본다면, 환자를 대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높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동물성 식품과 식용유, 설탕이 대량으로 사용된 음식들, 그리고 신체활동 부족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 원인이 교정되지 않으면 당뇨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설명하게 됩니다. 지금은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너무 높아 혈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약을 사용하지만, 앞으로 혈당이 어떻게 변하는지 함께 잘 지켜보면서 당뇨병까지 받아들일지 고지혈증과 당뇨병 모두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자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니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먹는 음식과 운동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라는 말을 건네는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게 됩니다.


[참고논문] 만성질환관리를 위한 구조화된 접근방식인 '생활습관의학'의 등장



표로 정리한 기존의학과 생활습관의학의 차이

개별 위험인자를 치료

환자는 수동적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

환자에게 큰 변화를 요구하지 않음

치료는 종종 단기적

책임성은 대부분 의사에게 있음


약물 치료가 “최종” 치료


진단과 처방에 중점


목표는 질병관리

환경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음

약물의 부작용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


다른 전문의에게 의뢰

의사는 일반적으로 환자와 1:1로 독립적 관계 속에서 진료

생활습관적 원인을 치료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의 파트너

환자에게 큰 변화를 요구함

치료는 항상 장기간

책임성은 대부분 환자에게 있음


약물 치료는 필요하나, 생활습관 변화에 보조적으로 사용

동기부여와 순응도에 중점


목표는 1차, 2차 및 3차 질병 예방

환경에 대한 고려

약물의 부작용을 결과의 한 부분으로 바라봄


협력을 맺은 건강 전문가에게도 의뢰

의사는 건강 전문가 팀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함

현실적 어려움의 굴레


물론 모든 환자들과 이상적인, 교과서적인 파트너십 관계를 맺기는 어렵습니다. 환자가 생활습관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당장 수치만 정상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진료시간도 짧다보니 환자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약을 처방할 수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약 처방이 필요한 수준이면,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열거하면서 앞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약을 처방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의사들은 점점 건강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고, 피상적인 지식만 갖게 되며, 검사결과 확인과 투약만 반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의사 자신도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병과 같은 문제를 갖게 되고, 평생 약을 복용하게 됩니다. 최고의 의료 전문가, 건강 전문가인 의사들도 만성질환의 발병을 피하지 못하고, 약으로 증상을 조절하는 데, 일반 환자들은 어떨까요? 당연히 약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게다가 기본 진료수가도 매우 저렴하다보니, 진료시간을 짧게 하고, 진료 환자 수를 늘리는 것이 병원 경영에도 도움이 되는 상황입니다. 여러모로 실제 임상진료 현장에서 생활습관의학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생활습관의학의 적용 노하우


필자는 부속의원에서 만성질환 환자를 처음 진료할 때 대략 20~30분 정도 상담을 합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당뇨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런 만성질환을 예방하거나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환자들의 생활습관을 파악합니다. 흡연, 음주, 운동, 수면 상태에 대해 물어보고, 식습관에 대해서도 상세히 물어봅니다. 생활습관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해야 건강상태의 생활습관적 원인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고지혈증과 당뇨병 전 단계, 1기 고혈압이 있는 중년의 남성이 아침으로 시리얼과 우유를 먹고, 점심과 저녁엔 일반적인 회사급식과 한식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음료는 주로 카페라떼를 하루에 1~2차례 마시고, 매일 오후에 간식으로 쿠키나 초코파이를 1~2개씩 먹고 있다면, 설탕이 많이 들어간 시리얼과 고지혈증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우유를 끊고, 카페라떼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점심 식사할 때 현미밥과 샐러드를 챙겨먹으면서 고기반찬은 절반정도만 먹고, 간식을 끊도록 제안합니다. 이렇게 식습관을 바꾸고 4주 정도 지나 검사를 하면 콜레스테롤이 40정도, LDL콜레스테롤이 30정도 떨어지고, 혈당은 정상, 혈압은 고혈압 전단계 수준으로 호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와 상담한 모든 환자들이 다 이런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습관을 바꾼 환자들은 이런 정도의 변화를 어렵지 않게 경험합니다. 그만큼 생활습관 개선은 효과가 아주 분명합니다. 이런 생활습관 변화의 효과는 메트포르민이나 스타틴과 같은 치료제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참고논문] '고지혈증 치료제와 비슷한 효과가 있는 식물성위주 식단'에 관한 논문

Jenkins DJA, et al. Effects of a Dietary Portfolio of Cholesterol-Lowering Foods vs Lovastatin on Serum Lipids and C-Reactive Protein. JAMA. 2003;290(4):502-510.


[참고논문] '메트포르민과 비슷한 당뇨병 예방효과가 있는 식물성위주 식단과 신체활동 증가 기반의 생활습관 중재'에 관한 논문

Knowler WC, et al. Reduction in the incidence of type 2 diabetes with lifestyle intervention or metformin. N Engl J Med. 2002;346(6):393-403.



나에게 적용하여 살아있는 지식을 만들기


이렇게 단 몇 주 만에 의식적인 몇 가지 사소한 생활습관 변화만으로도 건강상태가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건강상태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효능감도 얻게 됩니다. 수치가 개선된 것보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게 된 것이 더 기쁘다고 말을 하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물론 상담만 길게 한다고 모두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의사 자신이 만성질환 자체의 특징과 생활습관과의 관련성에 대한 충분히 지식이 있어야 의미 있는 진료가 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생활습관의학에 관심있는 의료인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정보들을 습득하고, 역량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정보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을 해봐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통제된 생활습관 변화 실험을 해보면 그만큼 풍부하게 환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설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생활습관의학 진료를 위한 핵심역량


2010년 미국생활습관의학회와 미국예방의학회는 공동으로 생활습관의학 처방을 위한 의사들의 핵심역량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크게 리더십, 지식, 평가기술, 관리기술, 사무실 및 지역사회 지원 이용 등 5개 영역에 걸친 15개의 역량이 정리되어 있는데,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역량은 리더십과 관련된 “건강한 행동을 실천하고, 건강한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학교, 직장 및 가정 환경을 조성하라”였습니다.


[참고논문] 생활습관의학 처방 핵심역량 관련 논문 원문

Liana Lianov 1, Mark Johnson. Physician competencies for prescribing lifestyle medicine. JAMA. 2010 Jul 14;304(2):202-3.

미국생활습관의학회(ACLM)의 핵심역량 안내 페이지


말로만 장려해서는 리더십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생활습관의학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의사 자신이 건강한 생활습관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활습관 변화는 약이나 시술만큼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부작용도 없습니다. 정말 생활습관 변화가 그만큼 효과가 있는지 호기심을 갖고 정보를 찾다보면 어느새 자신과 환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식을 얻게 되어, 그 걸림돌을 넘어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문턱을 넘는 의사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작가소개

이의철 선생님은 LG 에너지솔루션의 기술연구원 부속의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국제 생활습관의학 전문의(DipIBLM/KCLM)를 취득하셨고, 대한생활습관의학회 총무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차의과대학 통합의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생활습관의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기후미식>이 있습니다.




이의철 작가님의 이전기사 읽기


1편 - 직업환경의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일터 생활습관의학

2편 - 생활습관의학은 직업환경의학과 상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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