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설, 추석같은 명절을 옛날부터 크게 지내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느지막히 일어나, 아빠 쪽, 엄마 쪽의 친척집을 하루만에 모두 돌고는 남은 연휴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보곤 했습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외가에서 작은 삼촌의 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 양가 친척 중 가장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곤욕스러웠던 것은, 매번 친척 어른들이 저에게 노래나 춤 등 재롱을 피울 것을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험악한 말투나 몸짓의 강요는 아니었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한 이후로도 계속 용돈을 빌미로, 다른 무언가를 빌미로 끈질기게 요구하는 상황에서, 저는 제 거부의사가 전혀 그들에게 중요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친척들을 원망한다기 보다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전혀 감정적 교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일상을 함께하고 있지 않은 이들과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큽니다.
활동을 하게 되면서 바빠지게 되자, 저는 가족들/친척들과의 교류를 더욱 덜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도 간간히 메신저를 통한 안부를 묻고, 업무에 필요한 공적인 상황에 가끔 만나곤 합니다. 명절에도 친척집을 방문하지 않게 되어서, 사실 이제는 나와 어떤 촌수의 누구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등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결혼, 출산 등으로 새로 친척이 된 사람은 전혀 모르기도 합니다.
별로 교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관계의 사람들과 이 정도의 거리감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참 다행인 일입니다. 만약 가족은 명절에 반드시 모두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의 가정에 있었다면, 때문에 억지로 만나야 했다면, 아마도 저는 친척들과 큰 갈등을 일으켰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서는 명절에 친척과 만나지 않는, 혼자 보내는 것에 대해 쓸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수식어를 붙여 묘사하곤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친척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을 두고 큰 불화가 있었다거나, 혹은 단순히 철이 없어서 친척들을 챙기지 않는다는 식으로 보기도 하지요.
물론 친척들과 자주 만나고 교류하며 명절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사람들도 대다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상'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사회의 묘사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는데도 친척들과 모여 유쾌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에는 연휴가 참 아까운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모쪼록 자신이 원하는 대로 휴가를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