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8호 톺아보기(지역노동과 ‘괜찮은 일자리’)에서는 지역 청년 여성이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괜찮은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적고(수도권의 비중이 훨씬 높음), 일자리 다양성 또한 취약(특정 직종에 한정)하기 때문으로 언급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유와 상관없는, 아니면 이러한 요인을 극복(IT기업이 몰린 수도권으로의 이동) 했을지 모르는 ‘여성 IT개발자’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이번 노동연구 톺아보기에서는 권현지 교수(서울대 사회학과)가 석·박사과정 학생들과 협력해 작업한 “IT개발자의 비대면 근무 경험: 젠더 규범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를 살펴보고자 한다.**


* 노세리·노용진·권현지·김란우·박재혁(2023),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지속가능성-비대면 근무방식, 생산성 그리고 불평등-」 중 제6장, 한국노동연구원

** 연구보고서와 저자와의 서면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됨

이 연구는 코로나19 시기 활성화되었던 비대면 근무가 사업장 내 젠더 평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관심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관심을 공유하던 2023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비대면 노동 관련 프로젝트와 연결된 결과물이다. 연구진은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개발자 문화’로 대표되는 능력주의 규범이 강하게 뿌리내린 IT 서비스 관련 기업 조직에서 비대면 근무가 시행되었을 때 조직 내의 젠더 관계에 어떤 동학을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하고자 하였고 연구 과정에서 여성 개발자들이 IT기업 조직 내에서의 성차별적인 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면서도 “성차별은 없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여러차례 마주하게 되면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연구는 팬데믹 시기부터 2023년 중반기까지 IT 기업(전통대기업, 중견기업, 빅테크) 비대면 근무를 경험한 적이 있는 개발자들과 PM 총 16명(2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의 여성 11명_기혼자 7명, 이들 중 자녀 양육자 3명, 남성 5명)에 대한 면접을 바탕으로 했다.

  

개발자 직군 내의 능력주의 규범과 남초문화

 

연구는 먼저 IT개발자의 기존 작업조직의 논리를 들여다본다. 개발자 직군 내의 능력주의 규범은 조직에서의 연차 또는 조직의 위세(네임 밸류) 보다는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능력, 실력이 더 중시되는 문화의 형태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기술 측면에서 변화가 빠른 IT 업종의 특성, 이직이 쉬운 노동시장 영향으로 신기술 학습 등 자기계발에 적극적인 개발자 성향 등이 능력주의 규범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좋은 개발자’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서도 ‘스스로 계속 학습하는 사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위 동료와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라는 이상적인 개발자상이 존재했다. 조직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적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개발자에 대한 인정과 존경이 있는 이러한 문화는 개발자들에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도 일하는 시간 외에 따로 학습을 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도록 한다(184).

 

“조직에 갈수록 주니어들이 많아지는데 그분들은 다 전공자이거나 혹은 전공자에 버금가는 전문지식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고, 확실히 빠르시더라고요. 신기술을 접하고 터득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저도 살아남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죠.”(여성/전통대기업/개발자/기혼/유자녀)

 

능력주의 못지않은 또 다른 개발자 문화는 남초문화이다. 면접 참여자들이 속한 조직은 남성의 수가 더 많은 남성 집중 조직이다보니 남성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반면 여성 개발자들은 종종 ‘여자라서 열정이 없다’와 같은 고정관념의 대상이 된다. 이런 고정관념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팽배한 조직에서 여성들은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배려’라는 이름하에 주변부로 소외되는 경험을 하기 쉽다(186).

 

“애 낳으면 여자는 운영을 해야 편하지, 그러니까 창조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계속 유지보수 해. 왜냐하면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밤도 새야 되는데 남편 눈치 보이잖아. 애는 엄마가 봐야지. 약간 그런 것들 그래서 여자는 유지보수 일하면 돼. 저는 유지보수 일하기 싫거든요. 그런 거에서 좀 충격을 받았고.”(여성/중견기업/개발자/기혼)

남초문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남성처럼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개발자로서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압력을 느끼도록 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화제로 삼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서도 담배 피우러 나가는 무리에 끼고, 바쁠 때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식으로 남초문화에 순응하는 전략을 취한다(187-188).

 

성차별 있는데 “없습니다”

 

이 연구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면접 참여자들이 능력주의 규범과 남초문화가 교차하는 환경에서 여성이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경험을 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업무 배분을 원하면) 저희는 그냥 먼저 말하면 되는데, 이 부분에서 성별 영향은 딱히 없긴 해요. (해도 성과가 별로 안 나는 일들, 서로 안 맞고 싶어하는 일들은 결국 누가 맡게 되나요?) 그런 것도 지원을 받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주로 여성분들이 지원을 하네요. 남자들은 그냥 조용히 있고 여성들이 그냥 내가 하고 빨리 끝낼게요. 약간 이랬던 것 같아요.”(여성/중견기업/개발자/기혼)

 

이러한 원인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능력주의 규범과 젠더 차별적 작업 관행 및 관계가 결합되어 있는 조직에서 여성 개발자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을 능력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직종의 지배적 규범과 자신을 동기화하려는 태도 속에서 자신이 경험한 차별을 자신의 능력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대다수의 여성 개발자들은 젠더화된 조직 내에서 주변화되지 않고 인정을 획득하기 위해 능력주의 규범을 적극 수용하고 이를 실천하는 양상을 보이게도 된다. 이 과정에서 조직적 이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능력주의 규범은 오히려 조직 내 젠더 편향을 재생산하거나 강화하게 된다. 또한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가 탈젠더화된 규범에 의해 정당화되는 기업 조직에서 조직 내 젠더 편향을 인식하고 이를 발화하면 발화자는 젠더화된 존재로 낙인찍히고, 이는 무능력의 지표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조직 내 메커니즘이 성차별을 경험하면서도 성차별을 부인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여성 개발자들의 태도로 연결되고 있다.”

소프트 스킬과 비공식적 관계

 

또한 연구는 AI기술 고도화로 사회적 상호작용, 공감능력, 소통, 윤리적 판단, 협업 역량 등 대체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능력이 강조되면서 개발자 조직 내 ‘소프트 스킬’이 부상하는 면을 언급한다. 이는 한편으로 기술중심의 노동시장에서 젠더 평등이 제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즉 전통적 성역할 기반 직무 분업이 완화되거나, 이런 소프트 스킬을 이미 많이 습득한 여성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조직 내 이러한 ‘소프트 스킬’을 ‘여성적 특성’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시도 역시 보인다고 한다. 나아가 연구는 조직 내 리더(팀장 등)와의 친밀함이 업무 배분 및 성과 평가에 영향을 주는 ‘비공식 관계’가 작동한다는 점도 드러낸다. 이러한 비공식 관계는 남초문화를 더 공고히 하고 젠더 및 자녀 양육자에 대한 배제를 야기한다(196).

비대면 근무 경험: 양면적 작동

 

주4~5일 재택근무 등 ‘전면’ 수준의 비대면 근무 경험은 여성 개발자들에게 이중적으로 작용했다. 연구에 따르면, 비대면 근무는 남성중심적 조직을 재생산하는 대면성에 근거한 친소 관계, 비공식 관계에 의미있는 균열을 가할 수 있다. 비대면 근무는 기록에 더 의존하기 때문에 일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식성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친밀함에 따른 비공식 관계가 더 비대면 상황에서 강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친밀해진 사람들끼리 더 뭉치거나 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비공식 관계에 기대려 하는 조직의 성향이 나타나면 비공식 관계는 더 강해지고, 그에 따라 여성들은 그 안으로 끼어 들어가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비대면 근무의 특성상 ‘소프트 스킬’이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도 있었으며 역시 ‘소프트 스킬’을 탈젠더화하려는 설명들도 같이 제기되었다. 자녀가 있는 여성들은 비대면 근무 제도가 양육을 하면서 커리어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답했지만 이 점을 먼저 설명하지는 않는다거나 너무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자녀 양육의 사정을 드러내면 열등한 개발자로 보일 수 있다는 인식이 여성들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208-210).  

성차별 방지를 위한 대안

 

이러한 조직문화 안에서 성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비대면 근무와 관련해서 저자는 먼저 팀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정확한 프로토콜과 기록체계 구축, 업무결과에 기반한 성과 평가, 돌봄 책임 직원을 위한 유연한 조직운영 등을 제시하고 그 외 개발자 조직 전반에 깔린 편견과 그 편견을 만들어내는 기제에 조직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혼자만의 집중된 업무보다 상호 소통과 협력이 한층 중요해지고 있는 SW개발의 복잡한 업무 과정의 핵심은 조정이다. 조직은 효과적인 조정을 위해, 특히 팀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의 소통과정과 소통결과를 기록하고 관리할 장치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업무의 전 과정에서 구성원 간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 소통과 협업의 결과를 어떻게 기록할지, 그리고 그에 필요한 정보와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할지, 그리고 각자 맡은 업무의 결과를 어떻게 공유하고 평가할지에 대해 팀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정확한 프로토콜과 기록체계를 구축하는 등이다. 프로토콜의 체계적 관리와 소통의 기록은 불필요한 비공식적 관계가 일의 공식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협업과 소통의 수준을 제고하려는 조직적 노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부가적으로 비공식대화는 여전히 조직 및 조직 성과에 중요한 요소이므로 비공식 대화의 편중성을 대체할 수 있는 비대면공간의 네트워킹, 정보채널 구축이 필요하다.”


“기존 인사이더에 더 편향적일 수 있는 정보접근, 업무 배분에 있어서의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과 인식이 편향되는 양상, 즉 물리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비대면 근무자의 성과가 체계적으로 과소평가될 가능성에도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회의 등 업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업무결과에 기반해 성과를 평가하는 조직 내 공식 기제를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돌봄 책임을 지고 있는 직원의 경우 비대면 근무가 유연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지만, 일과 생활영역의 상호 침범을 통해 부정적 성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기존 출퇴근 시간에 맞춘 경직된 조직운영보다, 일부 업무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개별적으로 수행하고 공유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등의 근무시간 조정 권한을 제고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또 비대면 근무 그 자체에 대한 정책보다는 조직 전반에 깔린 편견과 그 편견을 만들어내는 기제에 조직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선, 편견이 작동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수적 편향이다. 다양성에 기반한 인력 확보, 인력 양성 및 인력 유지에 대한 기업의 문제 의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지속가능 혁신과 다양성의 관계를 조직의 리더십이 충분히 인식하는 계기를 다각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통합성을 확보한 조직이 더 나은 조직 성과 및 혁신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례와 데이터 기반의 증거를 통해 SW개발 직종 생태계 내에 조직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