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익명의부캐_윤휘곤 #벤처캐피탈

님, 안녕하세요. 🙋 
'목요 팩플' view입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드리는 익명의 벤처투자자 '윤휘곤'씨의 네 번째 글입니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이 제법 큰 투자를 많이 받고 있는데요. 지금이야 누구나 '와~' 하고 그 회사들을 바라보지만, 창업초에는 '설마 저게 되겠어?'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겁니다. 
그런 스타트업들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벤처캐피탈은 성장 연료를 더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들은 뭘 보고 투자하는 것일까요? 마침 윤휘곤씨가 투자의 기준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유니콘의 단서는OOO에 있다는데요! 네네~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OOO가 중요하죠. 정답이 궁금하시면, 지금 바로 읽어보세요. 😉 

“그 팀이 우승? 그럴리가.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팬티만 입고 방송하겠다.”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축구팀을 우승권으로 끌어올린 걸출한 스트라이커다. 은퇴 후 축구방송 해설가로 활약하던 그는 2015-16시즌 프리미어리그 시즌초, 레스터시티 FC를 두고 호기롭게 ‘팬티방송’을 공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팀은 직전 시즌까지 강등권을 겨우 면할 정도로 실력이 형편 없었다. 이 팀의 리그 우승 확률을 5000분의 1로 전망한 배팅 사이트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늘 낮은 확률을 뒤집는 데서 탄생한다. 그 해엔 레스터시티가 그랬다. 리네거가 팬티 차림으로 방송을 하도록, 레스터시티가 리그 우승을 차지해버린 것이다.  

이변의 주인공은 레스터시티에 이적한지 얼마 안된 은골로 캉테(N'Golo Kanté), 제이미 바디(Jamie Vardy), 리야드 마레즈(Riyad Mahrez)다. 우승 전까진 이 팀의 팬들조차 누군지 몰랐던, 무명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승의 주역이 됐을까.

레스터시티의 수석 스카우트였던 스티브 월시(Steve Walsh)는 성공적인 스카우팅으로 2015-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팀이 창단후 첫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승 뒤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레스터시티FC의 수석 스카우트(scout) 스티브 월시(Steve Walsh)다. 그는 숨은 진주였던 이들을 싼값에 팀에 데려와 전력을 보강했다. 예를 들면, 은골로 캉테를 단돈 800만 유로(현재 기준 약 108억원)에 스카웃했다. 캉테는 이전 소속팀(프랑스 SM캉)을 1부리그에 잔류시킨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선수다. 자신이 발굴한 무명 선수가 성장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 마치 벤처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나스닥에 상장할 때 울려퍼지는 그 종소리를 듣는 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2012년 페이스북이 나스닥 상장 벨 울리는 장면)

그런 캉테를 스티브 윌시는 우승후 두달 만에 내보내는 결정으로 또 한번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캉테의 몸값을 5배로 올려 받고 명문구단 첼시FC에 이적시킨 것. 벤처투자업계에 비유하자면, 캉테는 스타트업(구단)의 사업 성과(우승)를 훌륭하게 달성하고, 투자자에게 투자성과(이적료 차액)까지 몇 배로 돌려준 ‘유니콘 같은’ 존재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핀테크 기업은 아마 ‘스트라이프’(Stripe)일 것이다. 웹과 모바일 상의 기업용 결제 플랫폼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의 지존 와이컴비네이터(Y-Combinator)의 2010년 첫 출자 이후 최근까지 총 16번의 투자라운드가 진행됐다. 비상장사인데도 기업가치는 이미 100조원(USD 95 Billion)이 넘는다.

스트라이프 주주 명단은 화려하다. 론 콘웨이(Ronald Conway)나 피터 틸(Peter Thiel)과 같은 저명한 엔젤투자가를 비롯하여 세쿼이아캐피탈, 클라이너 퍼킨스처럼 성장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 그리고 후기 투자의 강자로 급부상 중인 타이거 글로벌, 심지어는 비상장기업 투자를 극도로 꺼리는 뮤추얼펀드와 국부펀드도 있다. 물론 전체 주주(71곳) 중 가장 많은 곳은 벤처캐피탈(43곳)이다. 벤처투자업계의 ‘월시’를 꿈꾸는 이들.

여기서 잠깐! 스트라이프에 단계별로 투자한 43개 벤처캐피탈은 뭘 보고 투자했을까? 이들의 투자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같은 기업에 투자를 한 것이니 결정의 기준이 비슷할까? 아니면 비록 같은 기업일지라도 각각 다른 관점과 가설을 가지고 결정을 내린 것일까? 43개 벤처캐피탈이 작성한 투자심의보고서(Investment memo)를 구해 확인해보면 좋겠으나, 이걸 공개하는 벤처캐피탈은 거의 없다.

*특이하게 투자심의보고서를 공개한 벤처캐피탈이 하나 있는데,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다. 이들의 링크드인투자 이유는 여기를 참고.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가장 비싼 스타트업 '스트라이프'(2021년 3월, 기업가치 950억 달러). 아일랜드출신 형제 패트릭ㆍ존 콜리슨(왼쪽부터)가 2010년 창업한 온라인 결제 기술기업이다. 

다만, 43개 벤처캐피탈 가운데 같은 시기에 투자한 곳들은 대체로 유사한 판단 기준을 따랐을 것이다. 초기-성장기-후기 에 따라 대체로 유사한 투자 기준이 있다는 얘기다. 

투자할 스타트업을 인큐베이션(육성)했거나 엔젤(극초기투자)이라면, 투자할 때 5개년 재무계획 따위는 묻지도 않는다. 어차피 새로운 시장일테고, 따라서 재무적 추정은 허황된 가설로 가득할 터이니. 따라서 그냥 사람만 본다. 창업자가 뭘 하려는지 이해하고, 그 뜻한 바를 실행할 기본 자질이 있는지를 본다.

다음, 성장기 투자를 주로 하는 벤처캐피탈은? 그들도 우선은 창업가를 비롯한 경영진의 자질부터 면밀히 본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막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기에, 그 완성도와 시장 진입 용이성 등을 검토할 것이다. 얼마만큼의 자금이 투입돼야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될 수 있는지도 계산해 볼 것이다. 고객 인터뷰도 하고 잠재적인 리스크와 기대하는 투자수익도 당연히 계산한다. 

후기 투자자들은 어떨까. 스타트업이 크게 성장하면 유니콘(US$1B)이 되기도, 데카콘 (US$10B)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아직 이렇다할 명칭도 없는 US$100B 기업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커버린 기업은 뭘 보고 투자하나. 

그들 역시 창업자와 경영진의 자질을 먼저 본다. 수조원 짜리 기업을 수십조원 규모로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배짱과 역량을 지녔는지 볼 것이다. 또 후기 투자자들은 상당히 심도있게 재무계획과 달성 가능성도 본다. 투자 리스크도 면밀히 검토한다. 글로벌 시장 단위의 리스크나 거시경제 측면의 리스크도 판단 기준에 넣는다. 

이렇듯 투자 시기나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투자자들의 판단 기준엔 ‘사람’이 있다. 스타트업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과 시기마다 집중적으로 발휘되는 사람의 역량에 다소 차이는 있다. 그럼에도, 창업자 혹은 경영진의 역량이나 자질이 가장 중요한 투자 기준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투자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독특하게 하는 벤처캐피탈이 있다. 스트라이프 투자사이자,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탈로 꼽히는 세쿼이아다. 그들은 어떤 창업가와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지 홈페이지에 명확하게 밝혀놨다. 

“The creative spirits. The underdogs. The resolute. The determined. The outsiders. The defiant. The independent thinkers. The fighters and the true believers.” 

창의적이고, 유별나고, 단호하고, 도전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하며, 호전적이며, 신념에 투철한 사람. 한마디로 ‘별난 인간’을 찾는다는 얘기다. 학력도 경력도 인맥도 출신국가도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눈앞의 창업자가 그런 사람인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스카우트인 월시에게 무슨 기준으로 캉테, 바디, 마레즈를 선별했는지 물어보면 그는 뭐라고 답할까? 데이터, 피지컬, 정신력, 협동정신, 투쟁정신… 다 본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의 순간 판단 기준을 다시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듯 하다. “딱 보면 압니다”라고. 벤처투자도 그렇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마윈(잭 마) 알리바바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이들의 창업초기 모습. 

1993년 세쿼이아의 첫 투자를 받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1998년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받은 알리바바의 잭 마, 2005년 악셀파트너의 시리즈A 투자를 받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가진 공통점은? 별난 사람들이었다. 왜냐. 당시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산업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이들은 창의적이고 유별나며 독립적인 별종들이 맞다. 그런데 그들은 별종에 그치지 않았다. 자기 생각을 말이나 글로 잘 풀어내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창업가의 자질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다. 

스타트업이란 결국 누군가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야 성장할 수 있기에 그렇다. 사업을 전개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므로 ‘투자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서 이익을 창출하려면 ‘고객’의 공감과 성원을 얻어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산업, 상상조차 못해 본 제품, 불가능해 보이는 서비스를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한 실행력, 그리고 이 사업에 뛰어든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결국은 행복해 질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자신감도 필수다.

내 경우에도, 그런 창업자들에 투자했을 때 대체로 성공했다. 그들과 처음 만나던 순간은 아직도 머릿 속에 생생하다. 허름한 반바지 차림으로 사무실에 나타나 미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얘기하던 K, 지금은 산전수전 다 겪은 기업인으로 우뚝 성장한 T의 대학생 시절 꿈 등등. 그런 이들은 단 30분 얘기해보면, 딱 보면 안다. 얘기가 길어진다면 아직 자신들의 꿈이 제대로 정돈이 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반대도 있다. 당차고 똑똑했지만, 원대한 꿈에 비해 구체성은 부족한 Y의 계획엔 투자하지 않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하겠다보다 투자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때론 더 어렵다. 

물론, 투자자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 팬티방송을 장담한 게리 리네커가 아니라, 숨은 보석을 찾아 밀어주는 스티브 월시같은 역량 말이다. 창업자들의 꿈의 크기를 알아볼 안목은 물론, 그 각양각색 창업자들을 믿어줄 수 있는 극강의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남들이 뭐라든 그 창업자와 함께 미쳐 날뛸 수 있어야 한다. 유니콘은 그렇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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