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원고를 받은 출판사의 반응
2024년 1월 셋째 주: 3호
안녕하세요. 정민호입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뛰쳐나가 받게 되는 전화가 있습니다. 제게 큰 가르침을 준 선생님, 한때 아주 좋아하고 따르던 멘토의 연락이 그렇습니다. 최근엔 전화로 어느 교수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듣고는 사무실 밖에서 울고 들어오기도 했죠. 오랫동안 연락도 못 드린 배은망덕한 제자인데도, 연락해주시고 따뜻한 말을 해주셨거든요. (저는 가끔 작은 일에도 여리게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피드백 보내실 때 조심해 주십시오😅)

이번 주엔 오랜만에 멘토 같은 분을 만났습니다. 10년 전 출석하던 교회에서 만난 집사님이었는데요. 신앙과 유머를 겸비한 매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5년 만에 봤는데도 하이 톤의 목소리, 강단 있는 말들, 우울한 감성에 이어지는 자학 개그까지. 제가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일들, 연락이 뜸해진 이유, 이후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에 대해서요. 《교회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지우)에 나오는 청년 이야기처럼, 제가 교회에서 성장통을 겪었다고 했어요. 당시에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고요. 교회로부터 나오면서 집사님과 교인들에게 연락하기가 미안하고 민망했다고도 했어요.

지금 저는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는 그런 성장통이 없습니다. 이제는, 민망하더라도 집사님과 교인들에게 ‘그땐 미안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책도, 사람과의 만남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읽힙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보면 이전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죠. 대신,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책장에는 그런 책이 있나요? (피드백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이나 이야기를 나눠주셔도 좋겠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좋습니다.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출판사 ‘바람이불어오는곳’ 박명준 대표님 글을 보내드립니다. 출판사로 오는 투고 원고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투고 원고를 놓고 출판사는 무슨 고민을 하는지, 출판 진행 여부는 어떻게 결정되는지 출판사 입장에서 설명합니다. 책이 되기 이전의 ‘태초의 서사’ 이야기입니다. 오늘 뉴스레터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추신] 뉴스레터가 늦어졌습니다. 발행 요일을 정하지 않더라도 일주일 안에는 꼭 내기로 했었는데요. 월요일이 되었으니, 한 주를 지나쳐 버렸습니다. 언제 받을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견뎌주셔서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사람들 - 투고에 관하여

박명준
  
놀랍게도 출판사에는 투고 원고가 들어온다. 책 한 권을 낼 만한 분량의 온전한 원고, 머리말에서 목차까지 갖춘 번듯한 원고가 한 달에 몇 편씩 들어오기도 한다. 우리처럼 작은 출판사도 그럴진대, 크고 이름 있는 곳에는 얼마나 많은 투고 원고가 답지하고 있을까.

투고 원고를 받으면 기쁘고 설렌다. 수많은 날 마음을 다해 완성한 원고를 한 출판사를 믿고 보내온 것 아닌가. 책을 내고 싶다며 먼저 문을 두드린 것 아닌가. 한 사람의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는 편지를 받은 양, 원고의 충실함과 출판 가능성을 떠나 더없이 고맙고 기쁘고 마음 설렌다.

이렇게 출판사에 보내온 원고 중에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수필이 있고, 일상생활 속 발견과 깨달음을 적어 내려간 에세이와 시가 있으며, 이따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창작물도 보이고, 목사님들의 설교집도 빠지지 않는다. 하나같이 열의가 있고 진지하다.

투고 원고에는 조심스레 출판 가능성을 묻는 편지가 따라온다. 또 가능성은 충분하니 책으로 내자며 자신 있게 출간 제안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원고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과 더 나아가 할 수 있다면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중첩되어있다. 그 판단을 출판사에 던지는 것이 투고하는 이의 마음 아닐까.

경험상 투고 원고가 책 출간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텐데, 우선 단행본으로 엮을 만큼 분량이나 내용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다.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면, 자신이 공부한 것을 모아놓은 보고서 같다면, 말은 논리적이고 맞는데 어떤 알맹이가 잡히지 않는다면, 혹은 지나친 자기 확신이 오히려 공감의 가능성을 제한한다면, 그런 원고를 깊이 검토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다른 이유는 당사자에겐 그 글이 글쓴이를 넘어 보편적 독자에게도 유익하고 의미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좋지만 타인에게도 좋은 글인지,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건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읽을 만하고 유익한 글인지 물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출판은 하나의 원고가 개인의 가치를 넘어 타인과 공동체에까지 의미가 있음을 확인하여 거기에 공적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투고 원고에 “투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이란 회신을 하는 이유는 이 지점에서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출간이 결정되어도 원고가 책이 되기까지 또다시 많은 시간과 인력,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따라서 책을 내겠다는 결정은 출판사로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모든 글은 좋지만 모든 좋은 글이 책이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30곳 이상의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받았다가 끝내 성공한 J. K. 롤링처럼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렵게 쓴 글이니 책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되지만, 그 방법이 반드시 출판사를 통해 수천 부의 책을 찍어 유통하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의 책 다섯 권을 만들어(큰 비용 안 들이고 이런 서비스를 해주는 회사들이 많다) 그것을 의미 있게 읽어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투고 원고를 반려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출판사가 내려는 책과 지향이 있는데 그와 맞지 않는 경우다. 출판사로서는 충분히 좋은 원고임에도 방향이나 색깔과 맞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다른 곳에 투고해 볼 것을 권하거나(그러므로 투고자는 낙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과 결이 맞는 출판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정 놓치기 아까운 원고라면 이제껏 내지 않았던 성격의 책이지만 개척하는 심정으로 새로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의 출간 방향에 영향을 주는 대단한 원고일 테다.

그럼에도 한 권의 책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 응원을 보낸다. 글을 쓰는 과정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뜻깊은 작업이었을 테니, 그렇게 쓰인 원고 중 일부는 책으로 출간되어 자신과 주변을 넘어 타인과 사회까지 공명하며 어떤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마중물이 될 테니, 설령 출판되어 유통되는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책 한 권을 써낸 인생은 전과 같지 않을 테니, 그렇게 자신을 성찰하고 의미를 발견한 인생은 자신과 주변 세상을 분명 풍요롭게 할 테니. 쓰는 인생은 이미 한 권의 책인지도 모른다.

새해를 시작하자마자 세 편의 투고 원고가 들어왔다. 검토하고 회신하기도 적잖은 시간이 들지만,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썼고 출판사에 기대를 안고 보냈다는 건 설레는 일.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고 원고를 열어본다. 보화를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박명준
책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미몽에 사로잡힌 편집자.

선율 출판사 이재원 대표님이 〈서사의 서사〉를 응원하며, 선율의 책(《과학자의 신앙공부》, 《닮은 듯 다른 우리》, 《생물학자의 신앙고백》)을 50권이나 찬조해 주셨습니다. 매호 10권씩 나눠서 구독자님들에게 선물로 드리려 합니다. 〈서사의 서사〉를 SNS에 소개하고, 피드백을 남겨주신 분들에게 책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래 뉴스레터 피드백을 꼭 남겨주셔야 합니다.)

우리네 신앙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과학자 김영웅 박사님이 집필한 종의 책입니다.



지난 호 의견 💌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대단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도 이웃을 섬기는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 제게 큰 울림을 줍니다. 뚜렷하지는 않더라도 내 노동의 대가 그 이상의 도움을 주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에 큰 힘이 되는 뉴스레터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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