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울을 깨고 싶을 때가 있다. 분노조절이 잘 안되어 뭐라도 깨고 싶은 마음에 거울을 찾는 거 말고,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이다. 얼굴 말고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다. 그렇다고 얼굴이 막 자신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 아무튼 지금 얘기하고 싶은 건 내 모습의 아쉬움이다. 항상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내 모습이, 날이 어둑어둑하다는 것을 핑계로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난 내 모습이, 이젠 정말 위기고 큰일 났고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 뒤 뭘 잘했다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말리며 단장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거울도 거울인데 규칙을 깨버리고 싶다. 성공한 사람들을 가만 보면, 아니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어> 같은 영화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규칙을 깨버림으로써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정말 멋있어 보인다. 성공하는 것 자체도 멋있어 보이지만, 어떨 땐 규칙을 깨는 행위 자체가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그 결과가 성공이기에 규칙을 깬 것까지 멋있어 보이는 것일 텐데, 무턱대고 규칙만 깨고 다니면 안 되는 것일 텐데, 그걸 알면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일단 저질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음에도 물론 규칙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멋있어 보이고 싶고,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아도, 한편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망설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규칙을 깰 타이밍을 놓친다. 타이밍을 놓친 다음, 타이밍을 탓한다. 타이밍을 탓할 타이밍만큼은 기막히게 놓치지 않는 내가 된다. 타이밍만 잘 맞았으면!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야!라는 말은 나이키의 슬로건처럼 ‘JUST DO IT’한 사람이나 일단 과감히 공을 던진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간 보고 재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할 말은 아니다.


이게 다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 말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 스스로를 믿는 마음. 자신감. 규칙을 깨기 위해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에어>에서 자신감을 봤다. 주인공 소니는 마이클 조던에 대한 자신의 안목을 믿는다. 이제 갓 NBA에 데뷔한 루키의 모습에서 세계 농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가 될 마이클 조던을 목격한 자신의 눈을 믿는다.



여기서 영화는 재밌는 연출을 선보인다. 영화는 소니가 마이클 조던에게 나이키를 믿어달라는 일장연설을 할 때, 갑자기 ‘마이클 조던의 미래 현실’을 영화에 삽입한다. 말하자면 198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1985년에서 1998년까지의 현실이 끼어든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NBA에서 3연속 우승을 하고, 아버지를 잃는 시련을 겪고, 다시 복귀해서 또 한번 3연속 우승을 거둔 현실이 말이다. 마치 소니가 초능력자처럼 이 미래를 봤다는 것처럼. 혹은 소니가 조던이 이렇게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믿어버렸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현실이 이루어져 버렸다는 것처럼. 말하면 입이 아프긴 하지만 물론 이건 전부 말이 안 되는 것이긴 하다.


다시 말해 이건 영화가 스스로 영화의 규칙을 깨버린 것이기도 하다. 실화와 현실을 기반으로 진행되던 영화가 갑자기 어벤져스나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의 방식을 차용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데 이게 좋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소니의 믿음과 <에어>의 감독 밴 애플렉의 믿음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해도 영화의 설득력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감독의 믿음. 그리고 영화와 세상의 규칙을 깨부숴버릴 만큼 확고한 소니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서로를 단단하게 지지해 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영화와 소니가 더욱 멋있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뭔가 믿을 거면, 이 정도로 믿어야 마침내 규칙을 깰 수 있을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에서 나약한 내가 아닌 미래 성공한 나의 모습이 마치 ‘이미 일어난 일’을 보고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여야, 그것을 본 나의 눈을 완전히 믿어야만 나의 거울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울 대신 세상의 규칙들을 깨야지. 그러기 위해서 거울을 조금 더 자주 봐야겠다. 아직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 보이긴 보인다. 나의 눈을 나는 믿는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OTT 영화 추천]
<성난 사람들>

대니는 ‘잘 풀리지 않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불만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터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 때마침 희생양을 발견한다. 한 운전자가 자신의 차를 향해 경적을 울린 뒤 가운뎃손가락을 내민 다음 떠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펼쳐진 한적한 동네에서의 분노의 질주를 시작으로 대니와 에이미의 비프(싸움)가 이어진다. 그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난 것일까. 아니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분노는 분명 일시적인 의식 상태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왜 성을 참지 못하는 것일까. 드라마 <성난 사람들> 속 대니와 에이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A24의 신작 드라마이자 배우 스티븐 연 주연 작품이다.
재밌게 읽으셨나요?
이번 원데이 원무비가 재밌으셨다면
평생 무료로 원데이 원무비를 운영하고 있는
연재자 김철홍에게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커피 한 잔을 사주시면 어떨까요?
또는
[ 계좌번호 : 신한 110 - 253 - 914902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