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서 만들어지는 초콜릿 이야기
요기요의 공장 탐험 

건강과 신뢰의 초콜릿 

취재를 다니며 내가 취재한 거의 모든 음식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생각해보면 거의 현장 담당자들의 전문성 때문이다. 확실한 전문성의 증거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현장 전문가들의 답이 어떠냐고? 지혜롭다, 인사이트가 있다, 그런 게 아니다. 전문가의 답은 확실하고 간결하다. 이들의 답은 이런 식이다. "그렇다." "아니다." "(모르면) 모른다(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말해줄 수 없다면)말해줄 수 없다(이런 경우는 많다)". 구체적인 그분들의 구체적인 답을 생각하면 자연히 믿음이 간다.


이날 만난 롯데제과 김정민 책임도 그랬다. 그는 롯데제과 영등포공장 초콜릿 라인 생산 담당자다. 롯데제과에 입사해 양산 공장에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담당하다 몇 년 전 초콜릿류를 만드는 '영공'에 왔다. 영공은 '영등포 공장'을 줄여 말하는 사내 호칭이다. 그는 현장이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 천상 현장 관리자다. 입사 초기에는 사무실에서 원가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때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양산에서는 기숙사에서 혼자 살았어도 일 끝나고 축구도 하는 등 잘 지냈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는 건강한 사람 같았다.


건강한 김정민 책임은 업무 이해도도 높았다. 그는 롯데제과 양산 공장과 영등포 공장의 차이를 알았다. 아이스크림 생산 공정과 초콜릿 생산 공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진에는 없는 양산 공장에 롯데제과만의 특별한 시설이 있다. 생두를 볶고 분쇄하고 아주 얇게 갈아내면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매스가 된다. 한국에 카카오를 볶고 초콜릿의 원료를 만들어내는 대형 설비가 있는 곳은 한곳 뿐, 롯데제과 양산공장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롯데 '영공'을 돌았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초콜릿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초콜릿은 언제나
일시 ㅣ 1월의 어느 목요일 아침
장소 ㅣ 서울 영등포구 롯데제과 공장
탐험 난이도 ㅣ 3.0/5.0  ➡ 초콜릿 냄새가 너무 좋아 참기 힘들었다.
획득 물품ㅣ 가나초콜릿 세 개

초콜릿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일정 수준 이상 규모를 갖춘 식품공장의 제작 공정은 모두 같다. 재료로부터 제품 제조. 제품을 포장. 포장 후 검수. 검수 후 출고.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코코아매스는 양산에서 탱크로리로 올라온다. 이 코코아매스가 공장에서 재료 배합과 숙성 과정을 거쳐 초콜릿이 될 준비를 한다. 이 상태의 초콜릿은 거대한 핫초코처럼 큰 통 가득 녹은 초콜릿 상태다. 그 초콜릿이 숙성을 마치고 초콜릿 틀에 들어간다. 틀에 들어간 초콜릿이 우리가 아는 초콜릿 모양으로 굳고, 굳은 초콜릿을 떼어 포장 기계를 통과하면 초콜릿이 된다.

초콜릿 공장에 우리 눈에 보이는 초콜릿의 강 같은 건 없다. 먼지와 이물질 등을 피하려 모든 공정은 가려져 있다. 공장에 처음 가 본 우리 눈 앞의 풍경은 이런 식이다. 초콜릿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하다. 뭔지는 모를 큰 기계가 큰 소리를 낸다. 어딘가에서는 기계장치가 움직일 때의 '윙 윙' 소리가, 어딘가에서는 무거운 쇠끼리 부딪칠 때 나는 '꿍 꿍' 소리가 난다. ‘윙 윙'은 초콜릿 통에서 원료를 반죽시키는 '콘칭' 기계 소리, '꿍 꿍'은 틀 속에서 다 굳은 초콜릿을 떼어낼 때 나는 소리다. 모르고 들으면 소음이지만 알고 나면 다 신호다. 초콜릿이 만들어진다는 신호. 


초콜릿 공장의 닫혀 있던 상당 부분은 점검을 위해 열릴 수 있었다. 우리가 궁금해할 때마다 김정민 책임은 초콜릿 생산 설비의 내부를 보여주었다. 초콜릿 생산 설비의 구조를 보니 매 공정이 하이라이트였다. 초콜릿 반죽이 틀로 들어가는 과정, 초콜릿을 담은 틀이 다 굳을 때까지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하는 과정, 꿍 꿍 하며 떨어져 나간 개별 초콜릿을 포장 기계들이 그림같이 포장하는 과정, 그 모든 과정이 별개의 마술처럼 보였다. 작은 마술이 모여 하루에 수만 개씩의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초콜릿 공장의 무엇이 인상적인가

식품 제조의 어떤 현장에서든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초콜릿 공장도 그랬다.

첫 번째는 롯데가 가지고 있는 초콜릿 생산 노하우였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그냥 씨다. 이게 어떻게 부드러운 카카오가 될까? 공정이 여러 번 지속되기 때문이다. 일단 카카오 씨를 볶는다. 커피같은 로스팅이다. 볶은 카카오 씨는 간다. 역시 커피처럼, 그라인딩이다. 그런데 카카오는 아주 얇게 갈아낸다. 20미크론 이하가 될 때까지 갈아주기 때문에 마이크로그라인딩이라고 한다. 양산공장에서는 마이크로그라인딩까지 마친 초콜릿의 재료 코코아매스가 올라온다. 이 코코아매스에 설탕 등의 재료를 섞어 반죽하는 ‘콘칭’ 과정을 거친다. 콘칭을 거치고 나면 거슬리는 맛과 향기가 사라지고 우리가 아는 초콜릿의 맛과 향이 남는다. 롯데제과에는 그 설비와 노하우가 있다.


초콜릿을 만드는 방법론 자체는 규모와 상관없이 같다. 앞서 말한 로스팅-그라인딩-콘칭-탬퍼링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소규모 고급 초콜릿 제조사도 있다. 롯데도 고급 초콜릿 회사처럼 원물 수급부터 최종 생산까지의 초콜릿 생산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대신 그 단위가 엄청나게 크다. 대중 지향이니까. 동시에 단가나 여러 상황에 맞춰 맛을 대중화시킬 필요도 있다. 역시 대중 지향이니까. 그래서 대중 초콜릿은 고급 빈 투 바에 비해 카카오 비중이 떨어지거나 맛의 개성이 덜할 수는 있다. 그게 바로 대중성이다. 모두에게 불만을 사지 않으려면 어디 하나 뾰족한 구석이 없어야 한다.

대량 생산품의 목적은 결국 어디 하나 뾰족한 구석 없이 멀쩡한 물건이 끊임없이 계속 많이 나오는 것이다.  보통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보통이 아닌 설비와 노력과 노하우가 필요다. 롯데제과 영등포 공장은 그 사실의 실물 증거였다. 여기 있는 기계 중 지난주에 설치한 듯 보이는 새것은 없었다. 역으로 그만큼 많은 유지보수와 다양한 상황을 거쳤을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 쓰는 물건은 그게 얼마나 오래됐든 유지하면 계속 쓸 수 있다. 초콜릿 공장의 각종 기계들도 잘 관리받으며 잘 움직이고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결코 그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김정민 책임을 비롯한 현장 근무 인력의 숙련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장 티 나지 않는 여러분의 일들이 사회 곳곳을 지탱하고 있듯이.

초코의 역사, 도시의 역사

공장 한 바퀴를 다 돌아보고 나가는 시간, 새삼 들어온 길을 살펴보았다. 이 공장은 1969년 준공한 오래된 공장이다. 공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대신 계단에 '오래 걸으면 장수합니다' '한 걸음 걸으면 1칼로리' 같은 말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입구에 설치된 텔레비전에는 전국 롯데 공장 직원들이 고품질 생산을 다짐하는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근본 있는 공간의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이곳은 한국 제과 산업의 역사 중 하나다. 서울의 주요 공장이 이미 다 외곽지역으로 이전한 가운데, 롯데 영등포 공장은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대형 공장이다. 준공 이후 롯데껌과 가나초콜릿 등 롯데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이 역사적인 공장은 진짜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2022년 이곳이 ‘헤리티지 쇼핑몰’이 될 거라는 기사가 나왔다.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두고 볼 일이지만 이 역시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적인 대도시는 인구가 몰리고 땅값이 오르며 점점 물리적으로 확장된다. 기존의 시 외곽지역이었던 곳도 도시로 편입되며 원래 그곳에 있던 공장은 점점 도시 밖으로 밀려난다. 롯데 영등포 공장은 아직 밀려나지 않은 곳 중 하나다. 롯데 영등포 공장에 다녀온 뒤 가나초콜릿을 사 먹을 때면 뒤 포장지를 한번씩 들여다본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물론 '메이드 인 서울'도 보기 힘든 마당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나초콜릿이 서울 생산이라니. 

나는 앞으로 서울을 찾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가나초콜릿을 기념품으로 줄 것이다. 이 흔한 걸 왜 기념품으로 주냐고 묻는다면 그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별로 없는데 말이지…."라고. 그런 이야기가 한국을 찾는 친구들에게 선물이 되지 않을까. 여행은 거기에만 있는 이야기를 찾아오는 거니까. 

▼ 초코 공장 탐험 영상으로 보기  

빈 투 바 초콜릿은 무엇일까? 🍫

카카오 '빈(생두)'에서부터 초콜릿 '바'까지 직접 만든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빈'부터 '바'까지 직접 만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생산 효율을 위해서다. 롯데제과가 이 경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맛을 이루는 각 부분에 관여해 섬세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빈 투 바'라는 개념을 쓰는 신흥 고급 초콜릿 회사들이 여기 속한다. 카카오 생두, 생두를 볶는 과정부터 숙성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초콜릿을 만드는 각 공정은 모두 맛과 미묘한 관련이 있다. 이 영역에 집중하면 초콜릿도 와인이나 커피처럼 원료의 맛을 따지는 미식으로 넘어간다. 어느 지방에서 나온 카카오를 얼마나 볶고 어떻게 섞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빈 투 바는 1970년대 미 서부에서 시작해 지금은 북미, 유럽, 한국 등 여러 국가로 퍼졌다. 지금은 초콜릿 메이커들이 테루아와 제조자의 솜씨를 뽐내는 빈 투 바 초콜릿 장인의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빈 투 바'라는 용어가 따로 있다는 건 빈 투 바 개념을 쓰지 않는 초콜릿도 있다는 뜻일까? 바로 그렇다. 사실은 빈 투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초콜릿이 훨씬 많다. 상당수의 고급 초콜릿 업체들도 원료가 되는 초콜릿은 벨기에산을 사서 녹여 쓰고, 대기업의 초콜릿 중에서도 롯데처럼 자체 로스팅 설비를 갖춘 곳은 없다. 다만 이게 초콜릿의 맛과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급 베이스 초콜릿을 이용한 초콜릿과 빈 투 바 초콜릿은 지향하는 미식의 방향이 다르다고 보면 되겠다.

에디터 박찬용 @parcchanyong

잡지 에디터. 라이프스타일이라 부르는 일용품 생산과 소비 현장을 구경하며 정보를 만들고 편집한다. 이번 가나초콜릿 공장을 취재하며 모처럼 초콜릿을 양껏 먹었다. 2022년 12월부터 남성 잡지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포토그래퍼 최용준 @___yjc

한국의 사진가. 새로 만든 건축물 사진을 촬영하는 틈틈이 그가 찾아낸 도시 건축의 단면을 담는다. 두 번째 사진집 <엘리먼츠>는 청담동 꼬르소 꼬모와 파리의 이봉 랑베르 등에 진출했다. 이날도 초콜릿 공장 곳곳에서 맹활약했다.

*모바일에서 접속 가능   
요기요 디스커버리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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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가 있는 2월을 맞이하여 초콜릿 공장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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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예고해드린 것처럼, 이번 초코 공장 탐험기는 영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꿍 꿍', '윙 윙' 소리를 내며 초콜릿을 만드는 공장의 모습을 확인해 보세요. 
첫 영상 업로드를 기념하여 유튜브 댓글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영상으로 보고 싶은 탐험 장소를 '초콜릿은 언제나' 영상의 댓글로 달아주세요. 참여해주신 분들 중 20분을 선정해 요기요 선물하기 2만원 상품권을 드립니다. 

※ 기간: 2월 1일 (수) ~ 2월 10일 (금) 
※ 참여 방법: 요기요 유튜브 '초콜릿 공장 탐험' 영상 댓글로 참여 
※ 발표일: 2월 13일 (월) 댓글 발표 (댓글 통해 상품권 수령을 위한 정보 수집) 
※ 경품: 요기요 선물하기 2만원 상품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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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힌트: 라면과 먹으면 맛있는 바로 그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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