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극장에서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은 연극적 드라마를 고조시키는 상징적이고 도구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입법부의 저지에 막혀 비상계엄이 조기에 해제되었다는 사실조차 비상계엄의 연극적 성격에 대한 근거로 활용되었다. 그것이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는 국가는 현실에서 연극적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즉시 피청구인은 평상시에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서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헌법 제 77조 제3항). 피청구인의 별도의 지시가 없더라도 계엄법에 따라 계엄업무를 시행하기 위하여 계엄사령부가 구성되고(제5조 제2항),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면서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하게 된다(제7조 제1항, 제8조 제1항). 중대한 위기상황을 병력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비상계엄의 본질이므로, 그 선포는 단순한 경고에 그칠 수 없는 것이다.
계엄이라는 행위 자체는 물리적 강제력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계엄 상황에서 국가는 자동 기계 장치처럼 권력을 집중시키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운동을 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엔 괴물이자 기계로서의 국가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
다른 한편,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만 의거해 보면 비상계엄이 궁극적으로 특정한 대안적 지배 관계를 수립할 목적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계엄에 동원된 병력이 국회의 의결을 방해하려 했다고 판단했지만, 이른바 ‘실패한 친위쿠데타’의 전모를 우리는 알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인 대통령 윤석열의 숨은 의도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만 사법적 판단을 내렸다.
그런 점에서 비상계엄은 일종의 이중 플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대통령은 국가의 물리력을 한껏 동원함으로써 실제적인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것이 새로운 지배 체제를 수립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지 정국의 교착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상징적 행위일 뿐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중략)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믿음과 판단을 정치적으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헌재재판관들 역시 민주주의의 원리 속에서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동등한 지위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그 보호를 핵심적 가치로 삼으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하나의 방향으로 일치시킬 수 있었다. 어떤 점에서 이러한 일치는, 국가가 통일된 이미지 속에서만 시민들의 대등한 지위를 가시화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정치적 픽션의 합리적 결론이기도 하다.
나아가 탄핵 심판에 임한 헌법재판소의 행위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국가의 두 원리를 가시성의 세계에 출현시킨 연극적 수행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다른 헌법재판과 달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 있어서 헌법재판소는 결정 요지를 발표할 때 경어를 사용함으로써, 심판의 당사자가 대등한 동료시민 전체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 이때의 심판정은 헌정의 위기와 봉합을 가시화하는 무대처럼 보인다. 리바이어던의 도상에서처럼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드문 순간이다. 더불어 대통령 박근혜 탄핵 심판과 달리, 대통령 윤석열 탄핵 심판에서는 별도의 보충 의견을 낭독하지 않았다. 비록 공식적인 결정문에는 탄핵 심판 절차에 대한 보충 의견이 활자화되어 있었지만, 주심을 맡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선고 요지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함으로써 헌법재판조차 가시성의 세계에 출현해야 하는 연극적 수행의 일부임을 분명히 보여 줬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