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게임』 출간!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입동이 지나고 날이 추워졌어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사무실에서 훌쩍이며🤧) 지난 뉴스레터에서 출간을 예고했던 신간 『거짓말 게임』이 드디어 나왔답니다! 『우리를 바꾸는 우리』를 쓴 정치학자 조무원의 두 번째 책이에요.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이 책의 키워드는 '과시'예요. 책 읽는 지적인 모습을 과시하는 '텍스트 힙' 열풍부터 매력적이고 안전한 남성임을 보여 주는 '퍼포남', 젊음을 강조하는 외양으로 조롱받는 '영포티'까지, 인간은 과시하는 존재라는 거예요. 이렇게 모두가 무대 위에 선 배우일 때, 우리가 매일같이 직면하는 질문은 ✅ 과시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라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 끝없는 비교와 과시가 나를 불안과 질투에 빠뜨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아침 스마트폰 속 흘러내리는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현실의 고통스러운 조건을 정치철학적으로 이해해 봅시다.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요.
『거짓말 게임』의 또 하나의 통찰은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도 과시를 한다라는 거예요. 자기를 연출하고 지위를 과시하는 '극장국가'의 관점에서 비상 계엄 선포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비평하는 대목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책을 읽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인데요.

탄핵 인용 판결문을 다시 읽으며 비상 계엄 선포와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 극장국가 한국의 몸짓으로 분석하는 대목을 차근히 함께 읽어 봐요. 🇰🇷
윤석열의 극장에서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은 연극적 드라마를 고조시키는 상징적이고 도구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입법부의 저지에 막혀 비상계엄이 조기에 해제되었다는 사실조차 비상계엄의 연극적 성격에 대한 근거로 활용되었다. 그것이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는 국가는 현실에서 연극적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즉시 피청구인은 평상시에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서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헌법 제 77조 제3항). 피청구인의 별도의 지시가 없더라도 계엄법에 따라 계엄업무를 시행하기 위하여 계엄사령부가 구성되고(제5조 제2항),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면서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하게 된다(제7조 제1항, 제8조 제1항). 중대한 위기상황을 병력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비상계엄의 본질이므로, 그 선포는 단순한 경고에 그칠 수 없는 것이다.

계엄이라는 행위 자체는 물리적 강제력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계엄 상황에서 국가는 자동 기계 장치처럼 권력을 집중시키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운동을 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엔 괴물이자 기계로서의 국가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

다른 한편,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만 의거해 보면 비상계엄이 궁극적으로 특정한 대안적 지배 관계를 수립할 목적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계엄에 동원된 병력이 국회의 의결을 방해하려 했다고 판단했지만, 이른바 ‘실패한 친위쿠데타’의 전모를 우리는 알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인 대통령 윤석열의 숨은 의도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만 사법적 판단을 내렸다.

그런 점에서 비상계엄은 일종의 이중 플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대통령은 국가의 물리력을 한껏 동원함으로써 실제적인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것이 새로운 지배 체제를 수립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지 정국의 교착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상징적 행위일 뿐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중략)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믿음과 판단을 정치적으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헌재재판관들 역시 민주주의의 원리 속에서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동등한 지위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그 보호를 핵심적 가치로 삼으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하나의 방향으로 일치시킬 수 있었다. 어떤 점에서 이러한 일치는, 국가가 통일된 이미지 속에서만 시민들의 대등한 지위를 가시화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정치적 픽션의 합리적 결론이기도 하다.

나아가 탄핵 심판에 임한 헌법재판소의 행위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국가의 두 원리를 가시성의 세계에 출현시킨 연극적 수행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다른 헌법재판과 달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 있어서 헌법재판소는 결정 요지를 발표할 때 경어를 사용함으로써, 심판의 당사자가 대등한 동료시민 전체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 이때의 심판정은 헌정의 위기와 봉합을 가시화하는 무대처럼 보인다. 리바이어던의 도상에서처럼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드문 순간이다. 더불어 대통령 박근혜 탄핵 심판과 달리, 대통령 윤석열 탄핵 심판에서는 별도의 보충 의견을 낭독하지 않았다. 비록 공식적인 결정문에는 탄핵 심판 절차에 대한 보충 의견이 활자화되어 있었지만, 주심을 맡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선고 요지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함으로써 헌법재판조차 가시성의 세계에 출현해야 하는 연극적 수행의 일부임을 분명히 보여 줬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 조무원, 『거짓말 게임』
6장 '극장국가 한국' 중에서



아아, 『거짓말 게임』의 절창인 6장을 읽으며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들을 떠올려 봤어요.

✅ 진실만을 말하려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사람
✅ 인스타그램에 "이건 사실상 과시죠"라고 댓글을 달고는 돌아서서 쓸쓸해진 사람
✅ 사회생활에서 거짓말도 하루이틀이지 이제는 뭐가 사실인지 모르게 된 사람
✅ '모두가 가면을 쓴다'는 주장에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이라고 브레이크를 걸고 싶은 사람
✅ 그 모든 의견 차 속에서도 이 나라를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사람

2025년 4월 4일 헌재 판결을 분석하는 위 대목을 천천히 따라 읽으면, 모두가 과시를 하며 탄핵 심판정조차 무대라는 이야기가 점차 다가와요. 나와 너의 몸짓, 저곳에서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뭔가 불투명해서 차라리 급하게 판단해버리곤 하던 사회적 행위를…… 이해할 하나의 틀을 얻는달까요. 이렇게 '거짓말 게임'의 묘미를 깨닫고 차분해지는 경험을 님에게도 권하고 싶어요.(계속해서 말 걸기)

지난 금요일 다녀온 대전 한편x변방연극제 전시 사진도 띄워 보내요. 옛 교회에 마련된 공간인 '구석으로부터'에 걸린 '축제' 호의 질문들입니다. 
😙 좋아요

😙 세영 편집자님이 나눠 주신 <그냥 우리> 발췌 부분이 너무 좋아서 무한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특정 어휘나 표현으로 상대방을 단정 지었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이런 식으로 ‘정정 가능성’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화를 개시한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 긁적긁적… 여전히 말 걸기와 대화는 두렵지만… 어떤 두려움은 뭔가를 구하기도 한다는 걸 유념하게 되는 레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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