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큰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님에게만 먼저 말씀드리면, 2월에 제가 인턴으로 다녀온 스페인의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가 전시와 워크숍을 하러 한국에 오는데 제가 로컬 매니저를 담당하게 되었거든요. 저에게는 꽤 특별한 의미인 게, 호기롭게 제가 먼저 제안해서 지금 이렇게까지 판이 커져 버린 일이라서요. 정말 너무나 잘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합니다. 사실 그때는 패기 있게 질러버렸다! 정도의 느낌이라 크게 실감은 나지 않았는데, 일정이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인 지금은 점점 늘어나는 실무에 조금(사실 조금 많이) 허덕이고 있습니다.
일단 하자고 돌격을 선언해 버리고는 다리가 찢어지고 잠 못 이루면서 어찌저찌해낸 다음에 성장통 겪듯 배워내는 게 일상인지라, 여지없이 이번에도 질러버린 이번 프로젝트는 관계자가 워낙 많은 탓에 조율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지금 딱 업무의 중간 지점이라 말을 얹기는 조심스럽지만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네요. 그 와중에 개인 업무도 해야 하고, 감정적으로도 평온하지 못하다 보니 집안일처럼 일상을 유지해 주는 긴급하지 않은 루틴들은 뒤로 밀리고만 있습니다. 작업방은 이미 뒤죽박죽, 외부 일정은 또 왜 이렇게 많이 잡아 두었는지 이번에도 저를 원망해 봅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일이 맞나? 돌아볼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영원히 파고들 이 질문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시간 내어 들은 외부 강연 덕이었어요. 그리고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유영국 작가 전시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구요. 이 감각을 잊기 전에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은데, 당장 닥친 일들과 소통 업무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수면 시간도 불규칙해졌습니다. 사실은 한 삼일 정도 조용한 카페로 훌쩍 떠나서 아무 방해 없이 일기만 적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현실은 월말마다 블로그며 일기에 남기는 신변잡기 시간조차 9월의 첫 주를 마무리하는 이때까지 손 댈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요. 그렇지만 동시에, 주어진 기회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리광 부리며 징징거리고 있는 스스로가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일단 꾸역꾸역 일을 하긴 하지만 정리할 새도 없이 자꾸 마음이 둘로 갈라지고 있어서 참 엉망인 요즘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어쨌거나 시간은 갑니다. 그 사실이 유일한 위로이자 공포이기 때문에 이 레터를 쓰며 일단 프로젝트가 성료할 때까지는 엉망으로 지내자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새삼스러운 다짐은 아니고요, 레터를 핑계 삼아 되새겨 보는거죠. 누구는 제게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하고, 또 누구는 생각이 너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저는 터져 나오는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쪽에 가깝고요.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더 자신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져야 합니다. 내가 흔들리면 그대로 무너져 버리니까요.
그런 와중에도 친구가 선물해 준 파스타로 요리를 했습니다. 얼마 전 행사 준비하다 남은 카포나타를 비벼서 후딱 완성했어요. 카포나타는 작게 썰어 구운 가지, 파프리카, 양파, 올리브 등을 토마토소스에 버무린 이탈리아 요리인데, 숏파스타와 곁들이니 잘 어울리더라고요. 기교 없이 직관적인 맛이라 큰 생각 없이도 맛있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또 누군가의 마음으로 제 식탁이 완성되었네요. 답답할 때마다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걸 되새기려고 하는데요, 이 카포나타 파스타 역시 엉망인 요즘에 힘을 더해주었습니다. 뭐가 됐든 역시 맛있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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