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융희 문화연구자

우리 세대 연구자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인정 투쟁’이란 것이다.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내 또래들은 모두 어린 시절 도서 대여점에서 판타지 소설 등을 빌려 읽었다. 순수 문학이 아닌 장르 문학 콘텐츠를 이미 소비하며 자란 세대인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식이 좋지 않았다.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책을 학교에서 읽고 있다가 들키면 선생님이 책을 찢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웹소설은 연구자라면 당연히 연구해야 마땅한, 아주 커다란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콘텐츠다. 무시할 수 없는 이 콘텐츠들이 인정받게끔 노력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그렇다. 다섯 가지 정도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스마트폰을 주된 매체로 하여 소비된다. 둘째, 웹소설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플랫폼을 통해 유통된다. 셋째, 편당 5천 자 정도 분량의 장편 연재소설의 형식을 가진다. 넷째, 유료 콘텐츠로서 판매된다. 마지막으로 장르 문학 작품이다. 첨언하자면, 웹소설을 ‘콘텐츠’로서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세 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 수 있겠다. 먼저, 웹소설은 굉장히 제한적인 독자층을 갖고 있다. 업계에서는 웹소설 독자층을  100만에서 15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따라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재창작할 경우 소재와 내용의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웹소설이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모든 콘텐츠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창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문법이 가장 최첨단에 서 있고, 그 새로운 문법을 가장 먼저 성숙시키고 있는 콘텐츠라는 점이 독특하다. 웹소설은 하루에 한 편 나온다. 이런 속도의 콘텐츠는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가장 예민한 이슈도 가장 빠르게 콘텐츠에 녹아들고, 그것을 어떻게 써야 소비자가 호응하는지를 볼 수 있는 시장이다. 여기서 마지막 이유가 나온다. 웹소설 시장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150만 명 정도의 베타테스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문법, 새로운 소재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때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지를 검증할 만한 모수가 모여있고 문법도 어느 정도 대중화했다. 다시 말해, 콘텐츠 시장의 실험실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 웹소설이 가진 장르 문학이라는 특성 때문에 기본적인 용어나 개념 등을 잘 모르면 빠져들기 힘든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동안 웹툰이나 OTT 시장의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그러한 코드가 어느 정도 대중에게도 익숙해졌다. 또한, 이와 같은 움직임을 바탕으로 새로운 독자들이 유입되면서 웹소설 시장 내에도 비교적 대중적인 작품들이 누적되고 있다. 그리고 인기를 끈 작품들은 다시 웹툰이나 영상 콘텐츠로 소비자와 만나게 된다. 이러한 선순환이 이어지다 보니 웹소설 IP들의 가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금은 폭발적인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서사를 다루지 않는 서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분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인 웹소설은 스토리보다는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감정을 중요시한다는 얘기다. 즉, 통쾌함, 답답함, 설렘 등의 감정을 독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논문 등에서는 ‘감정의 서사’라고도 한다.

보통 소설의 3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한다. 인물이 사건을 경험하고, 또 특정한 배경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웹소설은 다르다. 서사라는 개념이 많이 약해지고 감정이 강해진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서사’라는 개념이 발생한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짧은 글이기 때문에 독자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올 수 있다. 이것이 웹소설 콘텐츠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된다. 웹소설은 100원을 주고 5분짜리 글을 읽는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24시간 이내에 독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콘텐츠인 것이다. 따라서 독자의 즉각적인 반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결과 댓글에 따라 글 자체가 바뀌기도 하는데, 이에 따라 독자는 연속성을 가지고 소비하는 콘텐츠에 나 자신이 속해 있는 독자 집단의 정념이 반영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독자의 댓글 자체가 콘텐츠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댓글이 재미있게 달리는 플랫폼으로 독자가 이동하는 경우도 관찰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대화적인 창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웹소설 독서의 방식은 ‘접속’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독자라는 표현보다 유저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즉, 작가와 독자가 아니라 플레이어와 유저가 돼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창작 방식, 소비 방식을 짚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

그 문제는 웹소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도, 만화도, 드라마도 자극적인 콘텐츠는 많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누군가는 ‘넷플릭스에 왜 그렇게 미성년자 관람 불가 콘텐츠가 많은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자극적인 콘텐츠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 다만, 매일 엄청난 양의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웹소설의 특성상 양적인 착시현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또, 웹소설 분야의 좋은 콘텐츠를 알리고 소개하는 노력도 앞으로 더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웹소설 중 좋은 SF 장르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또,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소재를 시도하는 웹소설이나 주제 의식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굉장히 간단한 공식이 있다. 1시간에서 2시간이면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성공한 웹소설의 비밀은 그 공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끊기지 않고 쭉 써 나아갈 수 있느냐는, 작가의 끈기와 노력이 핵심이다. 작품으로서 200편, 300편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력,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하며 독자들을 유인하는 힘은 오롯이 작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비평가 조너선 컬러는 “우리는 장르의 틀이 없으면 그것을 (시와 소설을) 쓸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웹소설이라는 것이 다 비슷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보면 3개월마다 트렌드가 바뀐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트렌드라기 보다는 패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그렇다. 옷과 비슷하다. 지금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대부분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로 비슷하게 입고 있다. 웹소설도 마찬가지다. 지금 연재되고 있는 작품들은 하나의 패션이기 때문에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달에서 석 달 정도만 길게 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변주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 변주를 읽어나가는 것이 웹소설을 보는 독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패턴이 있기 때문에 웹소설이 더욱 성숙할 수 있다는 점도 짚고 싶다. 웹소설 시장에는 정말 다양한 소재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고미술 감정사를 소재로 한 작품도 등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배경에는 웹소설이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고유의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 형식이 새로운 실험, 전문적인 내용조차 독자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작동한다. 웹소설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웹소설은 최초로 글로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콘텐츠이다. 우리 모두 사랑했고 또 사랑하는 텍스트 콘텐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이름으로 제대로 평가해 본 적 없는 문학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 두 편 읽고 편견을 갖지는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그냥 순수하게, 무한하기 짝이 없는 웹소설의 세계를 천천히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신아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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