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원 님께 함께 인터뷰하고 싶은 친구를 물으니 곧장 오은 님을 추천하셨죠. (…) 오은 님도 “덕원이라면 시원하게 오케이!”라며 흔쾌히 승낙하셨어요.
오은 친구라고 매일매일 연락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브로콜리너마저나 윤덕원의 음악을 들으면서 ‘덕원이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생각하곤 해요. 굳이 전화나 메시지로 안부를 묻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종종 떠올리며 지내고 있죠. 그런데 이번 기회로 덕원이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고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덕원 오래 만나지 못해도 주저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에게는 단연 오은이에요. 연락하지 않는 시간에도 서로에게 관심이 있단 걸 알고 있거든요. 은이랑은 언제 만나도 어색함 없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우정의 밀도가 높으니까요.
친구로 주고받는 영향도 있겠지만 창작자로 작업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오은 2016년에 나온 제 시집 《유에서 유》에 실린 〈졸업 시즌〉이란 시를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카페에서 시를 쓰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취업할 준비는 안 됐고 졸업은 코앞인 학생들이 앉아 있었어요. 뾰족한 수가 없으니 휴학하고 졸업을 유예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덩달아 우울해졌죠. 그 당시 청년 세대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 고민한 기억이 나는데, 자주 듣던 노래에서 힌트를 얻었단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이란 곡에도 비슷한 정서가 있거든요. “방황하던 청년들이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는 내용이죠.
덕원 저는 지난 몇 년간 창작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잘하려고 맘먹을수록 짜임새 있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결과물을 내놓는 데 성공하지 못했죠. 그러다 최근에 은이 시에서 영향을 받아 다시 창작을 시작하게 됐어요. 은이가 근래 발표한 시집을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각성이 들었거든요. 특히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의 산문시들이 그랬어요. 제가 그동안 조각하듯 깎아내며 하나의 의미를 남기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면, 은이는 작은 덩어리를 붙여가며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는 게 보였어요. 지나치기 쉬운 순간을 차곡차곡 모아서 의미를 찾는 은이의 방식이 이 시대에 맞는 창작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의 표현 방식을 보면서 영향받은 거군요.
덕원 맞아요.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하자면, 얼마 전에 가족 여행에서 아이가 돌멩이를 한 아름 주워 온 적이 있어요. 너무 많으니까 제일 예쁜 거 하나만 고르자고 했더니 고르지를 못하더라고요. 아이에겐 돌 하나하나에 주워 온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만 가져가자고 하니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그러다 문득, 그래봤자 돌멩이일 뿐인데 전부 가져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제일 예쁜 것만 남기고 정리하자는 말에서 하나만 남기고 깎아내는 제 작업 방식이 보이는 것 같았죠. 반면 은이는 제 아이가 그랬듯 여러 가지를 모아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은이에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두 분은 서로의 작품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보여요.
오은 그럼요. 여기 오면서도 덕원이 앨범을 들었는걸요. 브로콜리너마저와 윤덕원의 노래에는 희망이 있어요. 어떤 정서를 노래하더라도 늘 가능성을 심어 두죠. 잠깐 나왔다가 사라진다고 해도 무척이나 반짝이는 부분이에요. 남아 있는 불씨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거든요. 그런 점에서 브로콜리너마저의 ‘가능성’은 자기 고백적인 노래로 다가왔어요.
덕원 저는 음악에 어떤 내용을 담더라도 여지를 두고 싶어요. 한 가지에 심취해서 ‘너무 기쁨’, ‘너무 처절’만을 노래하고 싶진 않거든요. 영화 〈에이리언〉(1979) 같은 거죠. 주인공이 에이리언에게서 탈출하는 결말이지만 주인공 몸 안에 에이리언 알이 남아 있잖아요. 다 부쉈지만 전부 부숴지진 않은, 그런 여지를 두고 노랠 만드는 거죠.
오은 영단어 에이리언Alien에는 ‘이방인’이라는 뜻도 있어요. 창작 활동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가 바로 이방인의 정서가 아닐까 싶어요. 익숙한 걸 또 만드는 게 아니라, 불편하고 어색하고 낯선 것을 통해 새로운 걸 만드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에이리언의 알을 나란히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