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화면에 띄워놓은 문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이었다. 그들에게 내 병에 대해 알리고, 아직은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편지의 마지막은 일종의 선언문이 되었다.
내가 최근에 운동뉴런장애로 진단받았다는 사실이 밖에서 보면 상당히 비참한 일로 여길 거야.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뇌를 제외한 내 온몸이 서서히 기능을 멈추게 돼. 그러다 결국 숨을 쉴 수 없게 되겠지. 인공호흡기를 사용해도 몸 안에 갇혀 꼼짝할 수 없어.
하지만 이건 완전히 잘못된 관점이라고 생각해. 대신 내 뇌의 관점에서 상황을 봐줘. 몸에서 해방된 나의 뇌가 나(자기를 인식하는 부분)를 따라 특별한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운이 나쁘지 않다면 내 뇌는 당분간 문제없이 기능할 거야. 하지만 이 여행은 생명에 적대적인 ‘암흑의 허공’으로 가는 편도행이야. 이 이상한 여정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외로워질 거야.
이 허공에서 현실 세계를 향해 정보를 발신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또 현실 세계에서 정보를 얻는 수단도 고작 웹캠 영상을 보는 정도지(내 눈과 귀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다른 환자가 간 길을 따른다면, 지루한 요양원의 천장만 올려다보는 처지라고나 할까.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21세기야! 나와 내 뇌는 선사시대 이래로 수많은 사람을 집어삼켜온 ‘암흑의 허공’행 경로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렇다면 적어도 이 기회를 이용해 ‘발견의 항해’를 해보려고 해. 철저히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첨단 기기를 그 암흑의 세계로 가져가고 싶어. 나는 그저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번영을 누리며 잘살고 싶어!
그래, 이것이 반항적인 생각인 건 인정해. 하지만 ‘규칙을 깨라!’라는 나의 인생 모토는 이번에도 변함이 없어.
이것이 이 반란의 목적이야. 너무 멀리 가기 전에, 믿을 수 있는 생명 유지 장치를 장착하고 싶어. 호흡을 계속하고 다른 신체 기능들을 유지하는 건 대체로 의료 문제가 아니라 기계적 문제야. 암흑의 허공으로 정보를 들여오고 외부 세계로 정보를 내보내는 뛰어난 의사소통 시스템도 필요해. 또한 최신 센서와 로봇 장치도 도입할 거야. 그러면 잃어버린 기능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내 뇌가 원래 갖고 있는 처리 능력을 계속 이용할 수 있어. 아직은 인간의 뇌가 세계 최고의 컴퓨터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나는 또 암흑의 허공에 빛을 끌어들이고 싶어. ‘무 無’를 밀어내고 그곳을 사이버공간, 가상현실, 증강현실, 인공지능으로 채울 거야. 기술이 있는데 왜 고립되어 고독하고 따분하게 여생을 보내야 하지?
나는 평생 작가였고, 음악과 미술 애호가였어. 나는 문학, 음악, 미술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 싶어. 몸이라는 궁극의 감옥에 구속되었을 때, 허기진 뇌의 수많은 부위를 자극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미지의 평행 세계에 고립된 존재의 복잡한 심정을 표현하는 논문, 연설문, 음악, 그래픽 아트를 창조할 거야. 또한 내가 하고 있는 여행에 대한 책을 쓰고, 교향곡 ‘암흑의 허공으로부터’를 작곡하고, ‘변신’이라는 제목의 미술 작품을 창작하고 싶어.
그 결과물들을 너희한테 보낼게.
인류가 충분히 지혜롭다면, 내가 떠나는 이 기이한 편도 여행의 목적지는 고독한 감옥이 아니라, 집처럼 느껴지는 곳이 될 거야. 그래, 가상의 집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내가 쫓겨난 원래 집보다 훨씬 아늑하고, 쾌적하고, 안전하고, 보람 있는 곳일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창의적 과학 탐구가 그렇듯이 나는 지식의 최전선을 확장하고 싶어. 제대로만 하면 수백만 명, 심지어 수십억 명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이 탐구의 분명한 부산물이 있어. 무엇보다, 사고나 질병으로 몸이 마비된 모든 사람의 삶을 혁명적으로 개선할 효과적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 또한 늙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인 심각한 장애와 고독을 해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산물도 있어. 인공지능이 폭발적인 발전을 계속하면, 우리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를 이음매 없이 감쪽같이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성이 높아질 거야. 인공지능을 이용해 우리의 지능을 증폭할 방법, 혹은 치매를 보완할 방법을 알아낼 필요가 있을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 species으로서 우리는 기계에 뒤처질지도 몰라.
내가 앞으로 실험하려는 최첨단 생명 유지 장치는 모두 컴퓨터에 기반을 두고 있어. 앞서 말한 연구의 잠재적 부산물은 이 사실로 인해 막대한 혜택을 누릴 거야. 현재의 발전 속도로 보면, 지금 10만 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나게 값비싼 장치도 10년 후에는 3,000파운드 정도면 살 수 있게 돼.
그러면 많은 사람이 이 모든 부산물을 이용할 수 있어. 이것은 내가 떠나는 암흑의 허공으로의 여행을 견딜 만한 정도가 아니라 보람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빛나는 보상이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 여행의 효능: 나는 고립되지 않는다.
의의: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말 그대로 인생을 건 실험인 이 허공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해서 내 머리를 스친 흥미로운 생각이 하나 있어. 최첨단 장비의 24시간 감시와 지원 덕분에 만일 내가 운동뉴런장애로 진단받지 않은 것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하면서 살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