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정말이지 '일'이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맡은 것과 비슷했다. 스프레드시트에 정리된 이런저런 절차와 그에 따르는 비용들. 연락. 검수. 전달. 비용 정산. 회의. 그 사이사이의 커피.
결혼식 다음 날에도 출근을 했다. 붙들고 있는 일을 다 매조지려면 한 주 텀이 필요했다. 출근해선 AI를 붙들고 10시간 정도를 보내다 퇴근 후엔 하객들에게 인사를 돌리던 한 주. 노동과 일상, 일과 말, 우정과 동료, 인간과 컴퓨터가 뒤죽박죽 뒤섞인 나날 속에서 나는 무언가 중요한 걸 잃어버리고 있단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를 찾아낼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풍습은 왜 생겼고 왜 유지되고 있을까. 신랑 신부의 제정신 유지를 위해서? 겨우 올라탄 비행기에서 혼인서약서를 다시 꺼내 읽었다.
돈. 집. 스펙. 남들처럼. 이 정도는. 이런 세상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휘둘리며 함께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서로가 걱정 없이 인생의 선물을 누릴 수 있도록 제 몫을 다하길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바쁜 서로를 위해 매일 적정량의 고요를 선물하겠습니다. 그러다 주말이 오면 모든 고민을 다 내려놓고 같이 카페에 가서 티타임을 즐기겠습니다.
이런, 이 내용들을 지키려면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모든 게 다 일 같은 나날이지만 그래도 '일 같지 않은' 무언가를 어떻게든 찾아내 꽉 붙들어야 할 텐데. 쓰레기 같은 AI 콘텐츠들 사이에서 그나마 괜찮은 결과물을 골라내듯이. 그럴 체력이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비행기의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찾아 쥐고 잠을 청했다. 비행기에선 피로가 권장되고 나는 이 점 때문에 장기 비행을 좋아한다.
우린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간다. 거리는 낯설지만 여행이 어떻게 작동하는진 우린 이미 잘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갈 곳을 찾아본다. 그중 한 곳을 선택한다. 결제를 한다. 리뷰를 남긴다. 이 방식은 이미 만국 공통이다. 우리는 외국어엔 서툴지만 이런 방식의 소비는 네이티브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이번 여행에도 모험이라고 부를만한 순간은 있다. 원래 가려고 했던 도시에 홍수가 나서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내야 하는 것 같은. 하지만 우리는 AI 앱으로 금세 대안을 찾아냈다. 이 물건은 어떤 요청이든 막히는 법이 없다. 유료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신혼여행 예산은 넉넉하다. 덕분에 여행하는 동안 좋은 친구를 꽤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첫 번째 친구는 호텔 프런트 직원. 호텔은 온수가 잘 안 나왔고 조식이 맛없었지만 그가 굵은 손마디를 어깨에 올리며 친근함을 표시해 주는 게 나쁘지 않았기에 별점 5점을 줬다.
그리고 또 보자. 시골 레스토랑에서 만난 교민. 그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친절했지만 음식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만큼 맛이 없었다. 하지만 생수랑 초코바 등 이것저것 선물을 잔뜩 받았기 때문에 도저히 나쁜 별점을 줄 수 없어서 별점 5점을 줬다.
마지막으로 들른 도시에서 한국인들 필수 코스로 유명했던 기념품 매장의 직원은 과연 대단한 세일즈맨이었다. 그는 특별 가격 제시, 무료체험, 박리다매, 업셀링, 사은품 등 모든 판매기술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았다. 캐리어를 기념품으로 꽉 채운 다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임 해피" 그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기 이름을 넣어서 리뷰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부부는 이번에도 별 5개를 남겼다.
여행 마지막 날, 우린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신혼여행 동안 느낀 점을 말하기로 했다. 애인은 놀러 오니까 노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눈에 잘 보였다고 했다. 택시 기사든,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이든, 요리사든. 다들 너무너무 열심히 일한다고, 자기도 돌아가면 열심히 살 거라고 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번화가의 메뉴판들이 온통 AI로 디자인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본 것과 놀라우리만치 비슷해 보이는 게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리고 때아닌 홍수로 위약금을 물고 여행지를 바꿔야 했지만 바꾼 곳에서도 즐겁게 여행을 했다는 게 참 기쁘다고. 이게 꼭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점점 많아지는 아슬아슬한 곳이겠지만 그럼에도 우린 어떻게든 잘 해나갈 거란 예고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앞으로도 계속 바쁠까. 어디든 비슷해지고 점점 위험해지는 이 행성에서 계속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신혼여행이란 뭘까? 미래가 오는 게 무서워서 잠시 도피한 걸까. 아니면 같이 미래로 가기 전에 축제를 연 걸까? 식사는 이런 대화를 반복하며 오래오래 이어졌다.
"언젠가 또 올 수 있을까?"
"꼭 다시 오자."
"언제?"
"언젠간-."
3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우린 앓아누웠다. 휴가가 하루 이틀 더 남아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나는 기념품으로 가득 차 있는 알록달록한 상점 안에 술탄들이 쓰는 것 같은 화려한 침대를 두고 청포도를 먹는 꿈을 꾸다 깬다. 애인도 뭔가 잠꼬대를 한다. "우와 진짜 재밌다. 콜라가 있네?" 아마도 레스토랑인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앓는 것으로 여행을 소화시키며 긴 잠을 잔다.
잠깐잠깐 깰 때마다 창문 밖의 하늘색은 달라져있다. 창 너머 빛깔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결혼 프로젝트가 끝났단 생각이 비로소 든다. 우린 결혼식이라는 기성품으로 집을 짓고, 적당히 대중적이고 그럭저럭 취향이 반영된 신혼여행을 가구로 들인 다음 마침내 누워서 좀 쉬고 있는 거다. 노동과 소비로 마감된 시멘트 사이사이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박혀있는 게 보인다.
결혼식장에서 들고 있던 꽃. 우리가 그동안 서로에게 써왔던 편지들. 낯선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소리 죽여 나눴던 농담. 하객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 식장을 빠져나와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맞았던 비. 이것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순간들. 말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찾아오게 되면 그냥 느끼게 되는 시간. 긴장은 풀어지고, 이러나 저러나 살아있어서 참 좋단 생각이 드는 시간.
핸드폰은 건넌방에 던져두고 대신 이불을 푹신하게 부풀려 무릎에 깐다. 여행지에서 흥얼댔던 콧노래 멜로디를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음이 뭐였더라? 내일 출근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내일이 오면 또다시 회사에 나가고, 월급을 받고, 그걸 여기저기 쓰느라 정신없이 바빠지겠지만 지금은 멜로디를 기억해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