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 노숙 | 주거불안 "집도 없고 절도 없다"는 옛말이 있어요. 불교를 섬겼던 나라 백제가 망하자, 집도, 절도 모두 불타 없어졌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집과 절은 몸과 마음을 편히 누일 수 있는 보금자리였어요. 이 보금자리가 더욱 간절해지는 겨울이 왔습니다. 기울어진 세상 위, '여성 홈리스'는 어디에서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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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 아니, 리사! 멜버른에서 '노숙'을 했다고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리사 노숙이라기보다는...ㅠㅠ 숙소를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 하룻밤쯤이야' 하고 길거리에서 그냥 밤을 새우기로 한 것이었어요. 그래도 멜버른은 새벽에도 환한 편이고,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 많아서요. 게다가 여성 노숙인이 꽤 많이 보였어요. 평생 한국에 살며 본 수보다, 멜버른에서 잠깐 지낼 때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보통 편의점이나 은행 앞에 노숙인이 많은데, 길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쓰고 계시기도 하더라고요.
라노 리사 얘길 듣고 놀랐어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여성 노숙인은 거의 본 기억이 없거든요. 가끔 TV프로그램에 소개될 정도잖아요. '맥도날드 할머니'나 '중광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요. 권하자 선생님은 주로 맥도날드에서 지내셨고, 송선희 선생님은 매일 대학 도서관에 나와 계셔서 학생들이 '중광 할머니'로 불렀고요. 여성이 안전할만한 공간을 찾다 보니 그게 패스트푸드점과 도서관이었겠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러련이 소개해 준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를 봤는데요. 여성 홈리스 구술사를 통해 이러한 젠더적 차이를 이야기한 책이에요. 여성 노숙인은 눈에 띄지 않으려고 화장실, 기차역 대합실,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을 떠돈다고 해요. 남장하거나 일부러 씻지 않기도 하고요. 청결하면 성폭력 가해자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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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 〈조용한 희망〉 중 한 장면.
주인공 알렉스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 '홈리스'가 된다.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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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나는 집도, 절도 있는데? 노숙인이 될 일은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집을 잃는다는 건 여러 불운과 사건·사고가 얽힌 결과에 불과해요. "집도 절도 없다"가 백제가 멸망하면서 나온 말인 것처럼요.
일본에는 '넷 카페 난민'이라는 신조어가 있어요. 90년대 이후 오랜 경기침체로 인해 직장과 집을 잃고 '인터넷 카페(피시방)'에서 장기 거주하는 홈리스를 '넷난민'이라고 부른대요. 이처럼 사회가 어려워지면 개인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겠죠.
라노 전세로 살고 있다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이사할 집을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도 크다고 해요. 몇 년 사이 '전세사기' 피해자도 어마어마하고요. 이런 사회적인 영향에 더해서, 여성은 '집' 자체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곳이 되기도 쉽잖아요? '가정폭력' 때문에요. 여성은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안전한 보금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거죠.
'노숙인'이라는 정의부터 남성적이라는 지적도 있어요. 경제위기로 인해 실직한 중장년 남성을 흔히 떠올리죠. 법적 기준을 경제적 상황에만 둔다면 그건 여성을 고려하지 못한 정의 같아요.
한편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넓게 '홈리스'를 정의하고 있는데요.(Housing Act, Homelessness Act.) '가정 내외의 폭력 및 위협 등이 이유가 되어 적절한 거처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홈리스 상태로 인정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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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 도클랜드 도서관은 시민에게 필요한 사회복지 플랫폼으로도 역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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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홈리스'의 정의를 넓혀서 법적인 안전망이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했네요!
제가 잠시나마 호주에서 집 없는 생활을 하며 놀란 점이 또 있는데요. 공공 도서관에 샤워실이 있다는 거였어요. 사서에게 물어보니까, 씻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샤워실을 제공하는 거래요. 홈리스들이 공공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생겼다고 해요.
그리고 게시판에는 "NEED HELP?(도움이 필요하신가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주거, 건강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도서관이 사회복지사를 연결해 준다는 내용이었고요. 제가 직접 샤워실을 이용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공공시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되고,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답니다.🤧
라노 따뜻하고 안전한 느낌이 저한테도 전해져요. 별것 아닌 것 같은 샤워실이나 문구 하나에도 누군가는 삶이 바뀔 수도 있겠죠. 이렇게 정책과 공공시설은 '주거 불안정'을 인지하고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여성의 주거 불안은 남성의 경우와 차이가 크다는 사실도 인지해야겠고요. 구석구석 촘촘한 사회 안전망은 꼭 필요해요. 집도 절도 없어도 다른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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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가방'의 언저리에서
- 오늘의 콘텐츠 |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글 | 에디터 러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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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숨죽이며 살던 이야기를 하는 여성들이 있어요. ‘빈곤’와 ‘젠더’라는 두 겹의 가림막에 둘러싸여 사회에서, 법과 제도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홈리스 여성’입니다. 화장실에서, 서울역에서, 쪽방촌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는 “미친 여자”, “성난 여자”, “말을 꺼리는 여자”들이 직접 꺼내는 이야기를 들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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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이슬 로(露)에 잘 숙(肅), ‘이슬을 맞으며 자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노숙인’. 하지만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성 홈리스의 구술을 글자로 옮겨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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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실마리
하나, 젠더와 빈곤의 교차점에서
'실직 남성'으로 대표되는 홈리스, 보이지 않는 한쪽에는 다른 이유로 집 없이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어요. 남성이 집을 잃는 이유에는 실직/사업실패 등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여성에겐 실직뿐 아니라 질병·장애, 가정폭력, 이혼 및 가족해체 등 경제적 요인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치거나 가족이 해체되었을 때, 가족의 자원이 남성에게 집중되면서 여성은 거리를 떠돌게 된다고 합니다.
"여성 홈리스가 밥 먹으러 줄 서면, 남자들이 이상한 말을 해요. '식당 가서 일하고 밥을 먹지' 그래. 지네도 와서 먹으면서."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中)
서가숙 씨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여성 홈리스는 홈리스가 된 과정뿐 아니라 생활하는 모습도 젠더화되어 있어요. 그런 현실 속에서 홈리스 여성은 '홈리스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여행자인 척 기차역 벤치에 오래 앉아 있거나, '여성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입기도 합니다. 빈곤사회연대 이재임 활동가는 "도시 속에 그녀들이 머물 공간이 없다는 사실은 여성 홈리스가 남성 홈리스보다 자주 자신을 숨기고, 이동하며, 장기적 관계를 맺기 어렵게 한다"고 말해요.
둘, '보이지 않는'과 '보지 않는' 사이에서
'여성 홈리스'라고 하더라도 '노숙인(露宿人)'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아요. '홈리스(homeless)'는 말 그대로 집(home)이 없다(-less)는 뜻이지만, 여성이 '노숙'을 하는 건 각종 폭력과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니까요. 집 밖으로 나온 여성들은 거리에서도 쫓겨나 화장실로, 고시원으로, 피시방이나 만화방이나 패스트푸드 음식점으로 향하게 되죠.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를 기획한 비영리단체 '홈리스행동'은 "여성 홈리스가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구태여 '보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꼬집습니다. 거리·시설·쪽방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만을 포함하는 실태조사 때문입니다. 여성 홈리스들을 고려한 제도가 마련되기는커녕, 공식 통계에조차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죠. '보이지 않는' 여성 홈리스의 젠더화된 경험을 '보지 않기'에 이들은 점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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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그럼에도 '삶'을 놓지 않는 여성들
이가혜 씨는 공원에 딸린 공공 장애인 화장실에서 지냅니다. 자기 주변을 끊임없이 쓸고 닦아요. 또 다른 인물 길순자 씨는 아픈 어머니, 옆방 '아저씨'(남편), 쪽방 이웃과 옆 건물 치매 환자를 돌보며 살아왔습니다. 그 돌봄은 가까운 사람을 향한 사랑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과 '책임'에 엮여 있는 '일'로도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가혜와 길순자는 '일'을 좋아하고 잘하며,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야기 곳곳에서 묻어나요.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의 '그여자'들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노동하며 살아냅니다. '거리의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그들은 '미친 여자'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여성'이자 '홈리스'라는 중첩된 정체성은 그들이 마치 납작한 피해자이기만 한 것 같은 모양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입체적인 발화자로서의 그녀들을 발견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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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러련의 생각조각
'노숙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숙인'이란 길거리나 시설에서 사는 사람뿐 아니라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포함하고 있어요. 쪽방이나 고시원, 돈을 내고 공간을 이용해야 하는 찜질방, 피시방 등도 이에 포함이 되죠.『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속 인물들도 거리나 시설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그러한 '방'에서 생활한다는 점에서 그 정의 안에 들어가고요.
이런 여자들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가방'이에요. "언제 필요할지 몰라" 쌓이고 쌓이는 그녀들의 가방 혹은 '봉다리'는 계속 이동해야 하는 여성 홈리스의 취약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동시에, 언제나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그녀들의 강인한 하루하루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가방'과 '방'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제목이 무릎을 '탁' 치게 될 만큼 멋지지 않나요? 이 책이 홈리스 여성의 입말을 가감 없이 옮긴 구술이라는 점에서 제목이 쓰인 삐뚤빼뚤한 글씨체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 여자들은 깔끔하지도 납작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 말하고, 또 살아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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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집도 절도 없어서"
서러웠던 적이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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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성과 게임' 레터에 위드가 보내준 피드백을 살펴보았어요.
- 제가 보내드린 주제가 실리다니! 너무 기쁘고 뿌듯합니다! 너무 추상적인 주제가 아닐지 걱정했는데 다양한 정보와 관점으로 잘 풀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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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터를 함께 만든 사람들 👪
꾸물🐛 따개🖇 라노🦖 러련 🪁
리사🤿 장소조🐭 짱콩🐥 쵸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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