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하자면, 특별한 날이라고 몇 달 전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행할 타입은 아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좋아하지만 워낙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하고 사람 많은 걸 싫어해서 크리스마스에 밖에서 홀로 쏘다니는 내 모습은 도통 상상이 안 간다. 그래서 25일 아침, 나는 혼자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휴식’이라는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면서.

휴식에 필요한 물건은 많지만 그중 가장 기본은 편안한 잠옷이다. 며칠 전에 사두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이 잠옷을 두 손으로 끌어올렸다. 뽀송한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며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확실히 잠옷은 잠옷인가 보다. 바라만 봐도 당장 입고 이불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걸 보니. 보다 안온한 크리스마스의 첫 신호탄이 되어줄 잠옷이다. 대안으로 헐렁한 티셔츠가 있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잘 쉬려면 이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이틴 영화를 보면 아끼는 인형에 고민을 털어놓는 여주인공의 독백 장면이 나온다. 내 크리스마스 말벗은 이 친구가 적절할 것 같다. 살짝 건드리면 위아래로 통통 튀는 게, 크리스마스라고 신난 모양이다. 그 귀여운 광경에 시선이 자꾸만 향한다. 내 눈은 빨간 산타 모자, 매우 반짝이는 코를 비추다가, 단단히 서 있는 조그마한 두 발을 클로즈업한다. 이런 단순한 소품 하나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출되는 게 신기하다. 이 눈사람 인형이 없었다면 아쉬운 마음에 급하게 트리를 구해서 족히 한두 시간은 태워 고생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