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소통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윤석열 '방자' 정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메시지 전달자로 내세운 이동훈 전 조선일보 기자(왼쪽)와 이상록 전 동아일보 기자. 이 전 기자는 20일 윤 전 총장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연합뉴스]
 <도령이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들은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방자 놈 여쭈오되, “눈같이 희 피부 꽃다운 얼굴이 이 일대에서 유명하여 관찰사, 병부사, 군수, 현감, 엄지발가락이 두 뼘씩이나 되는 양반 오입쟁이들도 무수히 만나 보려 하였지만 실패했고. (중략)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요, 여자 중의 군자오니 황공하온 말씀이나 불러오기 어렵나이다.” 도련님이 크게 웃고, “방자야 네가 물건에는 각기 그 주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도다. 형산에서 나는 백옥과 여수에서 나는 황금이 각각 임자가 있느니라. 잔말 말고 불러오라.”>
 
 『춘향전』(송성욱 풀어 옮김, 민음사) 도입부에서 그네 타는 성춘향을 데려오라고 이몽룡이 방자를 보내는 장면입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친구들끼리 서로 ‘방자’가 됐습니다. 친구와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이성과의 사이에서 전령 역할을 했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시절, 은근함이 미덕이었습니다. 친구 소개로 누굴 만난 뒤에도 한동안은 그 친구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소개팅’이라는 걸 해도 좀처럼 주선자와 함께 만나지는 않습니다. 보통 주선자가 양측에 상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끝입니다. 그 뒤 당사자 두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인사 나누고 자기들끼리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한다고 합니다.  

 40대 이상에겐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장점이 있어 이렇게 진화된 듯합니다. 중간 전달자 때문에 빚어지는 메시지 혼선과 그 전달자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일이 사라집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SNS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주선자가 양측에 상대의 정보를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화번호, 이름, 소속 정도만 알려주면 금세 상대에 대한 입체적 정보 파악이 가능합니다.  

  SNS가 직접 소통의 장을 열었습니다. 대기업 CEO가 소비자에 친구처럼 다가갑니다. 67세 대선 주자도 유튜브 채널로 꾸준히 자기 생각을 알립니다. 지체 높은 분들이 비서 통해 만날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게 더 번거롭습니다. '옛날 사람'처럼 보이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3초면 해결됩니다.  

 이런 시대에 ‘국민의 부름을 받고 나왔다’는 대선 주자가 전령을 통해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가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자기 말을 대신하게 합니까?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4년 1개월 전에 취임사를 통해 한 약속입니다. 국민이 손뼉을 쳤습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국민은 답답합니다. 왜 우리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처럼 수시로 기자들을 만나 현안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지, 퇴근길 대화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서도 비슷한 종류의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오락가락 메시지를 내던 그의 대변인은 덜컥 그만둬버렸습니다. 본인은 ‘일신상의 이유’라 하고, 다른 대변인인 ‘건강상의 이유’라고 합니다. ‘대변’을 맡긴 윤 전 총장은 말이 없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6일 윤 전 총장을 만난 전준영 천안함생존장병전우회장은 중앙일보에 "윤 총장 측의 장예찬 평론가가 여러 차례 만남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더니 윤 총장이 전화해 '직접 연락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그 전화를 받고 최종 승낙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어떻게든 젊어 보이려고 몸부림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방자' 정치라니요. 이제라도 국민에게 자기 생각을 본인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춘향이에게 마음이 있다면 춘향이에게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것, 이 시대의 ‘상식’입니다. 

 윤 전 총장의 '전언 정치'를 도왔던 이동훈 전 대변인의 사임에 대한 기사가 중앙일보에 실려 있습니다.
더 모닝's Pick
1. 최재형 감사원장 곧 사직 예상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최재형 감사원장이 주말에 지인들을 만나 사직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이 달 안에 사표를 내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고  합니다. 국회에서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으므로 가급적 빨리 정리하겠다는 게 최 감사원장의 뜻이라고 합니다. 여론조사에서 최 감사원장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꽤 올랐다고 하네요.  😮
2. 80% 백신 맞은 영국 확진 급증 
 성인의 80%가 백신을 맞은 영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1만 명 이상 나옵니다. 인도에서 건너 온 '델타' 변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 정부의 거리두리 완화와 백신 접종자 야외 노(No) 마스크 방침이 불안감을 키웁니다. 방역 성과를 내세우기 위한 성급한 결정이 아닌지 다시 한번 결정권자들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
3. 이준석 "2027 출마 생각 없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윤석열 전 총장을 향해 "침대 축구를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40세 출마 제한이 사라지는 2027년 대선에 대한 계획을 묻자 "전혀 생각 없다. 외교나 안보, 북한 문제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고 탁월한 대안을 갖기 전까지 공부하겠다"고 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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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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