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_서울에서 혼자 산다는 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기란

새해엔 집을 열심히 보러 다녔습니다. 작고 귀여운 집, 그리고 전혀 작고 귀엽지 않은 가격을 보며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되더라고요. 한달 월급 벌기 위해서는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작고 귀여운 집의 한달 월세는 이렇게나 거대하고 한순간인가. 옆 담벼락엔 담배꽁초가 200개 정도 버려져 있는 집, 들어가자마자 어쩐지 목욕탕 사우나 향이 느껴지는 집, 부엌 타일이 꽃무늬로 정성스럽게 가득 채워진 집 등 다양한 집들을 만났는데요. 이것 때문에 못 살겠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단점은 아니었지만, 이 단점들을 감수하면서 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부동산에서는 '이런 집 금방 나간다, 진짜 좋은 조건에 나온 집이다' 했지만, 어쩐지 찜찜한 구석을 지울 수 없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최근 공개된 'LTNS'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감독님이 집 문제로 진짜 골머리를 앓았던 게 틀림없다고. LTNS는 '왜 맨날 오른다던 집값이, 내가 집을 사자마자 이렇게 떨어져?' 고민하는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인데요. 공동 극본 및 연출한 전고운 감독님의 이전작 영화 <소공녀>에도 주거 문제는 중요한 이슈로 등장합니다.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없이 살 수 없었던 주인공이, 결국 집을 포기하고 매일 새로운 집에서 하루살이를 시작하는 이야기니까요. 두 작품 모두 주인공들의 기상천외한 행동의 시작점은 '집'에 있더라고요. 돈 벌긴 왜 이렇게 힘들고, 멀쩡한 집 구하기도 왜 이렇게 힘드냐. 감독님의 현실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라 생각하니, 뭐든 겪으면 언젠가 도움이 되나 싶기도 하고. (다음엔 감독님 인터뷰를 좀 찾아봐야겠어요) 웃기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웃긴 이야기들을 만드는 재주꾼들을 부러워하면서 봤습니다.

금요일 밤엔 집값 문제에서 비롯된 드라마를 보며 낄낄대고, 토요일 오후엔 집을 열심히 보러다녔던 1월. 드디어 집을 구하기에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찜찜하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는 집을 만나 기뻤고, 더 이상 주말에 남의 집 구경을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봄엔 새 집에서 새 마음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어떤 우여곡절 끝에 지금 집을 만나셨는지, 첫눈에 사랑에 빠져서 계약했는지, 찜찜한 마음을 뒤로 하고 흐린눈으로 단점을 애써 못 본 척하며 계약했는지 궁금하네요. 그렇게 만난 집에서는 또 어떤 우당탕탕 스토리들이 펼쳐졌는지도요. 작고 귀여운 집들에 숨겨진 작지도, 귀엽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오늘 편지를 마무리해볼게요. 다들 추운 겨울인데, 아늑한 집에서 몸을 녹이는 한 주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새 집에서 뭔가 할 생각에 즐거운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보들고소 해시브라운 한 입🌼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퍼석퍼석한 현실 도피하러 영화관에 갔다가, 버석버석한 멜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보는 내내 현실 도피 대신 현실이 자꾸만 끼어들었는데요. 핀란드의 멜로 영화란 이런 것인가. 달콤한 제목에 속으면 다소 당황할 수도 있지만, 버석버석한데 낭만적인 멜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입니다. 우연히 눈길이 자주 마주치는 두 사람은 함께 영화를 보고, 종이에 연락처를 적어주는데요. 바람에 홀랑 날아가버린 종이를 뒤늦게 찾아도 이미 늦었고, 한쪽은 기다리고 한쪽은 헤매며 찾아다녀요. 결국 영화관 앞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이런 대사를 남기는데요. "당신 찾느라 신발이 다 닳았어요". 당장 일할 곳이 사라지고, 라디오만 틀면 전쟁 뉴스가 나오고, 영화의 99%는 무표정인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1%의 슬며시 퍼지는 미소를 위해서 결국 이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표정 속의 농담과 낭만들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던 영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무표정으로 살아내는 분들에게, 가끔 극장에 가는 낭만을 회복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싱싱담백 참치포케 한 입🥗

하지만 한편, 다리 위가 아닌, 녹색이 아닌 수많은 '생명의 전화'들을 떠올린다. 경중은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쯤 그 전화의 발신자이거나 수신자였다. 그때라면 나의 저 실없는 답변도 조금은 효용을 지닐는지도 모른다. "내일 삼겹살에 소주 어때!" "다음 달에 짧게 여행이나 다녀올까?" 가끔 인생이 너무 길게 느껴질 때, 기대할 만한 일을 스스로 만들거나 만들어준다. 맛난 밥 한 끼, 곧 도착할 택배, 내일 개봉할 영화, 주말의 설레는 만남, 몇 달 뒤의 휴가까지. 고작 기대 하나가 어떤 날의 우리를 살게 한다. 그 크고 작은 기대들을 함께 기워 연명하는 것이 어쩌면 대단치 않은 생존의 기술일까.

끌어내 주어서 끌려 나와 주어서 고맙다, 오늘도.

-[동아일보] '기대할 만한 일' 하나가 사람을 살립니다, 김지영

요즘은 일주일을 버틸 원동력을 계획하는 재미로 지내요. 마라로제떡볶이 시켜먹고 환승연애 새 에피소드를 보는 금요일 저녁 같은 것. 뜬금없이 끊은 기차 티켓과 눈앞에 어른거리는 바다 같은 것. 아침에 집을 나서기가 싫을 때, '이번 주엔 이거 하러 가잖아!' 생각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부분 맛있는 걸 먹겠다는 계획이 가장 큰데요. 출퇴근길을 오가며 맛있는 냄새에 군침 흘렸던 가게들, 신상 메뉴가 궁금한데 혼자 먹기엔 부담스러웠던 음식들. 좋아하는 사람과 잔뜩 풀어져서 맛있는 걸 먹을 반나절을 기대하며, 길고 경직된 나날들을 버틸 힘이 생기더라고요. 가끔은 즉각적으로 짜릿한 소비의 맛에 기대기도 합니다. 주문하는 그 순간의 짜릿함, 택배를 기다리는 설렘을 함께 즐길 수 있으니까요. 이번 주엔 어떤 기대되는 일들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직 이번 주의 기대를 계획하지 못했는데, 뭘로 채우면 좋을까요. 유난히 추운 한 주인데, 보글보글 전골류를 드시러 가시는 건 어떠실지! 아니면 귀여운 목도리 같은 겨울 아이템을 사시는 건 어떨지! 제 기준 사소한 행복을 추천드려봅니다🌼

달콤따뜻 코코아 한 잔🌸

김오키 - 점도면에서 최대의 사랑

얼마 전, 김오키님의 공연을 보고 왔어요. 작은 공연장을 꽉 채운 살아있는 음악들.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주고받는 게 참 멋지다, 말 그대로 'LIVE'란 이런 거구나. 살아있는 음악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운 겨울날, 버스에 타서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자주 들었던 음악이기도 하고요. 가사도 없는 이 음악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결국 이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된 건 제목 덕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점도면에서 최대의 사랑. 최고의 사랑도 아니고, 그냥 최대의 사랑도 아니고, '점도면에서' 최대의 사랑이라니. 떼어놓고 싶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어느 순간 끈적하게 스며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끈적끈적하고 불쾌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딱 붙어있는 게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점도면에서 최대의 사랑'이라는 말은 어쩐지 한순간 황홀하게 좋았다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모순적인 감정을 오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사랑의 이야기 같이 느껴져서 좋았는데요. 그 제목을 곱씹으며 노래를 들으면 더 따뜻하고 살아있는 음악으로 들리지 않을까 싶어 가져왔습니다. 차가운 겨울, 따뜻한 코코아 한 잔과 함께 들어요🍎

망고네 또'갈'집🍋

망고네 주인장이 또 가고 싶어하는 공간

닭내장집 - 서울 서대문구 수색로 28-5

정직한 가게명, 오래된 간판에서 오는 노포 분위기가 압도적인 가좌역의 식당. '닭내장탕'이라는 다소 생소한 메뉴가 진입장벽이지만, 진한 감자탕처럼 구수한 국물 맛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소주 한 병에 볶음밥까지, 연령층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노포를 원한다면 추천.

극락 - 서울 서대문구 수색로4길 7 2층 좌측호

시장 골목 사이에 이런 공간이 있다고? 싶은 가좌역 근처의 뮤직바. 밴드 CHS의 작업실을 뮤직바로 공개한 만큼, 주말이면 다양한 뮤지션의 공연들이 열린다. 시장 한복판에서 갑자기 음악의 세계로 공간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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