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론 앤 어라운드] 입니다.
금요일에는 Aa Essay로 '두 시의 미식가'를 보내드립니다. 음식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취향과 추억을 담은 글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식당은 맛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읽고, 뽑은 콘텐츠도 보내드립니다. 제 주관과 편견이 '다분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원문을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저는 두 시의 미식가입니다. 오후 두 시의 한적한 식당에서 혼자 음식을 즐깁니다. 모토는 '인생은 한가하고 음식은 맛있습니다'입니다. 자,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어볼까요.
✓ Aa Essay 두 시의 미식가 003
와플, 인생과 사랑을 아는 어른들의 간식 - 카카오봄
 
마지막 마감을 끝내고 나니 어느새 금요일입니다. 몸과 정신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빨리 흘러가는군요. 한 주가 후다닥 도망치듯 가버렸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외출할 일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더군요. 롱패딩을 꺼내 입었습니다. 두툼한 롱패딩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이 옷이 없었다면 한국의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겨울은 점점 더 지독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달콤하고, 따뜻하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풍성한 맛이 그리웠습니다. 폭풍 같은 마감이 지나고 나면 탄수화물이 생각나는 법입니다. 우리의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위로하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일 때도 있지만, 때론 탄수화물과 고기가 우리를 더 다정하게 쓰다듬어 줍니다. 아니 더 자주, 탄수화물과 고기가 우리를 위로하고 어깨를 두드려줍니다.
삼각지에 자리한 ‘카카오봄’은 우리나라 쇼콜라티에 1호인 고영주 대표가 운영하는 초콜릿 전문점입니다. 그는 벨기에에서 초콜릿을 배웠습니다. 벨기에에서 초콜릿은 국가 산업입니다. 그만큼 기준도 까다롭겠죠. 그런 곳에서 제대로 배워온 만큼, 그가 만든 초콜릿은 한 마디로 예술입니다. 지금까지 카카오봄의 초콜릿보다 더 맛있는 초콜릿은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초콜릿도 맛있지만 제가 진짜 좋아하는 건 핫초코입니다. 기분 좋은 달콤함으로 꽉 찬 한 잔. 카카오봄의 핫초콜릿을 마시고 있노라면 ‘인생은 무조건 달콤해야 해. 이 핫초코처럼!’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와플을 먹습니다. 다들 아실 겁니다. 격자무늬의 과자죠. 두꺼운 팬 사이에 반죽을 넣고 눌러 굽습니다. 14세기까지는 다양한 문양의 금속 틀이 존재했지만, 16세기 벨기에에서 격자무늬 틀에 구운 와플이 유행한 이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와플은 격자무늬로 통한다고 합니다. 와플에는 브뤼셀 와플, 스트룹 와플, 갈레트, 리에주 와플 등 종류가 많습니다만, 카카오봄에서는 브뤼셀 와플을 팝니다. 밀가루와 물, 우유, 버터, 달걀로 만든 묽은 반죽을 이스트로 발효해 만듭니다. 
'와플이 거기서 거기지. 우리가 길에서 흔히 먹는 그 와플 아냐?' 아닙니다. 카카오봄의 와플은 그 와플이 아닙니다. 카카오봄의 와플은 주문을 하면 구워져 내줍니다. 하얀 접시 위에 짙은 노란색과 갈색의 중간쯤 되는 색깔로 단단하게 올려져 있습니다. 와플 위에는 파우더 슈거가 토도독 뿌려져 있습니다. 그 옆으로 생크림이 담긴 조그만 컵이 놓여 있고요. 와플을 썰기 위해 칼과 나이프를 듭니다. 묵직한 느낌이 좋습니다. 칼과 나이프는 이렇게 묵직해야 합니다. 가벼운 칼과 나이프는 격조가 없습니다.
부드럽고, 촉촉하고, 깊고, 달콤하고, 풍성하고, 고소한 버터 향이 사르륵 올라옵니다. 버터향에는 이런 표현이 다 어울립니다. 이런 표현이 맛을지 모르겠지만, 버터 향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와플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갑니다. 바삭합니다. 뜨겁게 달군 두꺼운 주물팬으로 재빨리 구워내서 그럴 겁니다. 가벼운 바삭거림이 참 느낌이 좋습니다. 바삭함 안에는 부드럽고 촉촉한 구름이 숨어 있습니다.  ‘음~’ 하며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드는 맛입니다. 다정하고 사랑스럽군요. 커피도 괜찮지만 저는 여기에 핫초콜릿을 곁들입니다. 뜨겁고 고소한 와플 한 조각에 달콤한 핫초콜릿 한 모금. 이 깊은 달콤함을 아이들은 모릅니다. 와플은 어른의 간식, 인생을 아는 자의 간식, 사랑을 아는 자의 간식입니다.
다음 주는 좀 여유롭게 보내야겠어. 이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와플을 썹니다. 아, 언제쯤 사는 게 왜 이리 심심해하고 불평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이날들을 또 그리워하고 있을까요.
 
달콤한 시간이었습니다. 카카오봄을 나와 전철을 타러 갑니다.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지나갑니다. 까르르 그들이 웃음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집니다. 그렇지. 그 나이에는 모든 게 즐겁고, 모든 게 기쁘고, 모든 게 달콤하지. 하지만 진정한 달콤함을 구분하고 알게 될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란다. 달콤함을 얻기 위해서는 고독을 지불해야 하는 법이거든. 멀리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정한 금요일 오후, 거리에는 가을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 Words 변할 뿐입니다
 
“뭔가가 사려졌어요. 영원히 떠났다고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아. 그저 변할 뿐.”

- 영화 <라임라이트> 중에서
✓ Clip 은근 달콤한 팥, 전국의 팥 맛집
 
  1. 팥이 수확기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팥 알갱이 속 가득 찬 단맛을 거두는 때다.
  2. 설탕이나 꿀이 귀해, 팥은 오래전부터 감미료로 사용됐다.  
  3. 팥은 이뇨 작용에 좋고 부기를 빼는 효과가 있다. 피로 해소와 항노화에 좋은 비타민B 성분도 많다.  
  4. 우리나라 떡, 중국 월병, 일본 화과자에 검고 흰 팥소나 팥고물을 썼다. 근대에 들어선 일본이 양과자 기법을 도입해 곱게 갈아 침전시킨 앙금으로 소를 만들어 떡이나 빵에 넣었다.
  5. 일제강점기 단팥빵을 앙코빵이라 불렀는데, 팥앙금을 말한다. 앙금은 찹쌀떡과 바람떡, 일본 모나카에도 들어간다.
  6. 양갱(羊羹) 역시 팥을 쓴 음식이다. 양갱의 이름은 양 국물이란 뜻에서 나왔다. 원래는 중국에서 양의 선지와 고깃국물을 굳혀 만든 음식인데 일본 승려가 전하며 대신 팥과 한천을 썼다. 이후 설탕이 가미되면서 달콤한 전통 디저트가 됐다.
  7. 경주 황남빵, 풀빵, 붕어빵, 국화빵, 호두과자 등 예전부터 먹던 간식거리에도 팥이 주된 재료로 들어간다.  
  8. 노점이 사라진 현대에는 붕세권(붕어빵을 살 수 있는 지역)이란 말이 떠돌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는다. 젊은층의 취향을 반영해 팥 대신 슈크림 등이 들어간 붕어빵도 인기가 있다. 
 
  • 서울 기뜬정 : 고급스러운 수제 양갱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씹지 않고 혀로 녹여 먹어도 될 만큼 부드럽다.  
  • 고양 덕수다방 : 수제 팥 고명을 얹은 빙수도 맛이 좋고 즉석에서 구워주는 붕어빵도 일품이다. 날마다 테마에 맞춰 음악을 들려주는 등 분위기도 좋다.  
  • 대구 근대골목 단팥빵 : 대구 본점뿐 아니라 유통채널에서도 소문난 단팥빵 전문점이다. 단팥크림빵이 인기가 좋다.
  • 포항 철규분식 : 구룡포초등학교 앞에서 찐빵으로 전국구로 이름을 떨쳐온 분식 노포. 
  • 진해 팥이야기 : 오직 팥 테마로 다과를 파는데 오히려 젊은층에 SNS 맛집으로 인기가 높다. 
  • 전주 주마본 : 동짓날 먹는 그 고소하고 달콤한 팥죽을 커다란 사발에 가득 퍼준다. 
💬 발자크가 말했습니다. "문명적이든 원시적이든, 삶의 목적은 휴식이다" 주말, 푹 쉬세요. 😍
얼론 앤 어라운드
alone_around@naver.com
경기도 파주시 한빛로 11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