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의 제목은 1932년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이상의 연작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첫 문장입니다. 이번 호의 제목은 1932년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이상의 연작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첫 문장입니다.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발표된 이 시는 기존 문학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기하학과 수학의 언어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연 문학 실험이었습니다. 2021년, 오랫동안 난해한 글로만 여겨졌던 이 시를 한 물리학자가 '감각할 수 없는 4차원'을 구현하려는 시도였다고 해석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해석에 따르면 '사각의중(가운데)의사각의중의사각의중의사각 의중의 사각'이라는 구절은 공간의 차원을 순차적으로 확장해 최종적으로 4차원에 존재하는 사각형을 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끊임없이 겹치고 늘어나는 사각형들. 2025년 프리즈 서울에서 디리마트 갤러리Dirimart Gallery가 선보인 아이제 에르크먼 Ayşe Erkmen의 Half Of (2025) 앞에서 이상의 시가 떠오른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이상이 4차원을 시의 언어로 번역했듯, 아이제 에르크먼은 텅 빈 부스 그 너머 보이지 않는 구조를 되묻습니다. 우리가 열광하고 즐기는 예술이 어디에 놓여 있으며, 어떤 제도적 장치 안에서 규정되고 전시되는지를 말이죠.
미술관의 공간은 사라져야 하는 벽임과 동시에 경계와 규칙을 설계하며, 관람자의 경험을 조율하는 하나의 '매체'입니다. 이번 리서치 딜리버리 vol.4는 이러한 인식 위에서 1960년대와 70년대에 전개된 실험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미술관 공간이 어떻게 실험실로 기능해 왔는지를 살펴보며, 그 안의 새로운 가능성의 순간을 짚어봅니다.
👀 이미지 출처: Ayşe Erkmen, Half of, 2025. Frieze Seoul 2025 설치 전경 (사진: Yosuke Kojima) ©DIRIM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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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 딜리버리 vol.4에는...
[RESEARCH]
① 1960년대: 갤러리 공간 실험의 초기
② 1970년대: 공간 실험의 확장
[RECOMMENDATION]
📘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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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클라인 Yves Klein, 《공백 Le Vide》, 아이리스 클러트 갤러리, 1958
1958년 4월 28일, 프랑스의 행위미술가이자 설치 작가 이브 클라인은 자신의 30세 생일을 맞아 파리의 아이리스 클러트 갤러리 Galerie Iris Clert에서 《공백》이란 제목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그는 갤러리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진열장 하나와 오직 흰 벽만 남긴 전시 공간을 작품으로 선보였습니다. 20제곱미터의 갤러리에 다른 작품이나 설명은 없었습니다. 작가는 텅 빈 공간을 보여주며 배경이 되었던 갤러리의 물리적 제약을 드러냈고, 공허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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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Arman, 《가득 참 Le Plein》, 아이리스 클러트 갤러리, 1960
2년 뒤, 프랑스의 조각가 아르망은 같은 장소에서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정반대로 《가득 참》이란 제목이 붙은 전시였는데요. 상자, 자전거, 비닐봉지 같은 일상의 잡다한 물건을 갤러리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빽빽하게 쌓아 갤러리를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바꾸었습니다. 클라인의 경우와 달리 관객은 갤러리 창문 너머로만 공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클라인과 아르망은 극단적인 비움과 채움을 통해 공간이 배경에 머물지 않고 물질과 형태를 가진 매체로서 실험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Arman, Le Plein, 1960 ©Ar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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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개념 Concetto Spaziale〉,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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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환경 Ambiente Spaziale〉, 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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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과 아르망이 공간을 매체로 삼았다면, 이탈리아 화가이자 조각가 루치오 폰타나는 평면과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공간 개념〉 시리즈에서 그는 캔버스 표면을 찢음으로써 평면의 한계를 넘고자 했으며, 평평한 면이 아니라 캔버스 너머의 공간을 관객이 인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폰타나는 이러한 절개 방식을 전시 공간에 구현한 〈공간 환경〉 시리즈도 194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지속적으로 제작했습니다. 1968년 카셀 도큐멘타 4에서 선보인 〈공간 환경〉은 폰타나가 생전 남긴 마지막 작업으로, 그의 공간 실험이 평면을 넘어 실제 공간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이미지 출처
Lucio Fontana, Spatial Concept: Expectation, 1960 ©M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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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애셔 Michael Asher, 클레어 코플리 갤러리 Claire Copley Gallery, 1974
개념 미술가 마이클 애셔는 클라인의 《공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실험을 보여주었습니다. 애셔는 평소 가려져 있던 갤러리의 운영 구조를 드러내는 데 주목했고, 갤러리의 전시 공간과 사무 공간을 구분하던 벽을 제거했습니다. 빈 장소를 관객이 체험하며 그 자체를 느끼게 했던 클라인의 사례와 달리, 흰 벽 너머에 있던 '진짜 구조'를 보게 한 것이죠. 이제 전시 공간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공간과 제도적 맥락을 함께 드러내는 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Peter Plagens, "Michael Asher Exhibition at Claire Copley Gallery", ArtForum vol.13, 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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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전후로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 Museum),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등에서도 공간 자체를 매체로 삼는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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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안드레 Carl Andre, 〈바닥 조각 Floor Sculptures〉 시리즈
1970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칼 안드레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이는 미술관에서 열린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작가는 다양한 매체의 조각 작품으로 전시장 바닥을 채웠습니다. 1950년대 말부터 공장제 벽돌이나 사각 동판, 목재 등을 조각의 재료로 활용해 온 안드레는 기존의 전통적인 전시에서 벗어나 조각 받침대를 제거하고 작품을 전시장 바닥 위에 그대로 배치하였는데요. 전시장 바닥을 점유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전시 공간과 작품의 경계를 허물고 조각을 하나의 장소로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관람자를 작품과 동일한 차원으로 끌어들여 공간과 관람자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했음을 보여줍니다.
👀 이미지 출처: Carl Andre, Equivalent V, 1966-69 ©MoMA |
솔 르윗 Sol LeWitt, 〈벽화 Wall Drawings〉 시리즈
안드레가 미술관 바닥과 조각 사이의 받침대를 제거했다면, 솔 르윗은 벽과 작품 사이에 존재하던 캔버스를 없애는 실험을 시도합니다. 르윗의 〈벽화〉 시리즈는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대형 벽화 작업으로, 작가는 연필과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미술관의 벽면을 직접 채워 나갔습니다. 한 면의 벽이 르윗의 작업으로 뒤덮이면서, 미술관 벽면과 작품의 경계는 희미해졌는데요. 이처럼 미술관의 물리적 공간을 그대로 활용한 르윗의 작업은 벽을 캔버스로 확장한 실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Sol Lewitt Wall Drawing, in the series, "Modern Starts" ©M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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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샤 브라운 Trisha Brown, 〈벽 위를 걷기 Walking on the Wall〉, 휘트니 미술관, 1971
솔 르윗이 벽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선보이던 당시, 미국의 예술가이자 무용수 트리샤 브라운은 또 다른 방식으로 미술관의 벽을 매체로 활용합니다. 1971년 3월 30일, 브라운은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 특수 하네스를 착용하고 휘트니 미술관의 벽을 걷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들은 두 개의 인접한 벽 공간을 따라 중력을 거스르듯 바닥과 평행하게 서서 걷고 달리며, 일상적인 움직임을 반복하였습니다. 솔 르윗이 벽 위에 드로잉을 실행하며 벽과 작품의 경계를 흐렸다면, 브라운은 퍼포먼스로 벽을 무대이자 행위의 장으로 확장시킨 것이죠. 브라운의 움직임은 '회화 작품을 거는 공간'으로 기능하던 미술관 벽의 전통적인 역할을 허물고 공간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실험이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Trisha Brown, Walking on the Wall, 1971 ©trishabrowncompa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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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연구자 오상현, 이수정은 연작 시 「삼차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를 4차원 공간 상에서 물체의 물리적 위치에 대한 좌표값, 차원의 확장으로 풀이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상은 당대 최신 물리학과 건축 이론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빛과 속도, 차원 등과 같은 개념을 도입해 기존의 정형화된 문학을 넘어서고자 했습니다.
해당 논문은 이곳, 논문의 해설 영상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번역 출처: 오상현, 이수정, "이상 시의 4차원 시공간 설계 및 건축: 「삼차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연결, 그리고 차원 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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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October 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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