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 계절은 흘러,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지난 주만 해도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나 싶었는데 말이에요. 저와는 무관하게 흐르는 시간이 무심하고 고맙습니다. 타는 듯한 더위도, 지겨운 코로나도 언젠가 끝이 나겠지요. 그래도 지난한 시간을 버티어 내려면 잠시 일상을 멈추고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른도 방학이 필요해요. 로마의 휴일 (1953)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어요" 제가 다니던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은 종종 학교 방송실에서 이 영화를 틀어주셨어요. 행사 앞뒤로 자투리 시간이 있을 때를 이용해서요. 항상 뒷 이야기가 궁금할 때 즈음 영화를 중단해 버려서 교실 가득 아이들의 원성 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지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해 주었을 때 다들 어찌나 집중해서 영화를 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눈만 감으면 영화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릴 수 있어요. 앤 공주(오드리 헵번 분)와 신문기자 조(그레고리 펙 분)의 꿈같은 하루를 그린 이 영화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되었습니다.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인증 사진을 남기는 건 로마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었고요. 영화에서 앤 공주가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렸던 스페인 광장은 하도 많은 관광객이 이를 따하는 바람에 이탈리아 정부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아예 다른 곳으로 전부 옮겨 버렸다고 합니다. 이 영화로 이안 맥켈란 헌터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는데요, 진짜 시나리오 작가는 따로 있습니다. 1940년대 후반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활동이 불가능했던 달튼 트럼보가 각본을 썼지요. 이 이야기는 영화 <트럼보 (2016)>로도 만들어졌는데요, 언젠가 금요알람에 소개하려고 아껴두고 있습니다. 감독 : 윌리엄 와일러 러닝타임 : 1시간 58분 Stream on Watcha 리틀 포레스트 (2018) "배고파서 내려왔어. 진짜 배고파서." 혜원(김태리 분)은 고향으로 내려온 이유를 따져 묻는 친구에게 배가 고파 내려왔다고 대답합니다. 시험에 떨어져서 취업에 실패해서도,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도 아니고 배가 고파 내려왔다는 혜원의 말은 신기하게도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공허한 허기를 우리 모두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시골 고향 집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제 손으로 매 끼니를 해 먹는 혜원의 일상을 영화는 잔잔히 담습니다. 땅에서 난 작물로 소박하게 차려낸 밥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돕니다. 무슨 맛인지 아니까 더 맛있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결국 배추전을 구워 먹었습니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일본에서도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을 묶어 두 편의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임순례 감독이 우리나라에 옮겨와 새롭게 연출했는데요, 음식이 모두 달랐을 텐데 어쩜 이렇게 적절히 바꾸었는지 감탄하면서도 원작의 음식도 궁금해집니다. 감독 : 임순례 러닝타임 : 1시간 43분 Stream on Netflix 데몰리션 (2015) "저도 서류가방 들고 출근하는 사람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꼭 도시락 들고 학교 다니던 기분이죠"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분)는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아내를 잃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었는데, 자신은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한데 아내만 세상을 떠났어요. 주변 모든 사람이 그에게 조의를 표하지만 막상 데이비스 본인은 무감해 보입니다. 장례식날 화장실에서 홀로 거울을 보며 억지로 울어도 보지만 눈물도 나지 않아요.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걸까 병원도 가보지만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 주변의 모든 사물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장인 필(크리스 쿠퍼 분)은 아내가 죽었는데 물건 부수기에만 열중하는 사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이크 질렌할과 크리스 쿠퍼는 영화 <옥토퍼 스카이(1999)>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때도 쿠퍼는 질렌할을 참 못 미더워했더랬죠. 이십여 년이 지나 장인과 사위로 만난 두 사람이 여전히 껄끄러운 걸 보며 참 재미있는 인연이라고 생각했어요. 감독 : 장 마크 발레 러닝타임 : 1시간 41분 Stream on Watcha & Netflix 덧붙이는 이야기 영화 데몰리션은 감독의 플레이리스트를 훔쳐오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아름다운 삽입곡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영화 끝부분에 흐르는 샤를 아즈나부르의 노래 <La bohème>을 님과 나누고 싶어요. 가난하지만 젊었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던 몽마르트의 삶을 추억하는 가사가 영화가 잘 어울립니다. 오늘은 님께 전할 소식이 하나 있어요. 금요알람이 8월 한 달 동안 방학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쌓아둔 영화도 보고 공부도 더 해서 곳간 가득 채워 돌아올게요. 반갑게 맞아 주실거죠? 9월에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