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포스코 창업자가 실전 협상에서 사용한 2가지 전략 홍자병법 No. 81 '철강왕' 박태준이 일본과의 협상에서 사용한 두 가지 병법(兵法)의 전략. 1973년 12월 23일, 당시 포항제철 사장이었던 박태준과 외국계약담당부장 노중열은 일본 도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하루 전에 결정된 갑작스러운 출장이었는데요. 딱히 누구를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10시간을 날아 경유지인 독일 함부르크에 내린 박태준은 프랑크푸르트 대신 이곳에서 내리자고 말합니다. “호텔 예약도 안 돼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부하 직원의 말에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면 돼 있소?”라고 반문하면서 말하죠. 그만큼 아무런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떠난 여정이었습니다. 함께한 부하 직원도 대체 이번 출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죠. 공항을 나와 호텔에 숙소를 잡은 박태준은 먼저 한숨 푹 잔 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있는 대형 제철설비업체의 임원들에게 지금 당장 만나자는 전화를 겁니다. 당시 포항제철은 연간 철강 생산량 103만 톤 규모 1기 공장의 준공을 마친 뒤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동시에 더 큰 규모의 2기 공장 착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기 공사 이후엔 3, 4기 증설 공사도 계획돼 있었던 만큼 설비업체에게 포항제철은 떠오르는 큰손이었죠. 크리스마스 휴가 중이었지만 전화를 받은 설비업체의 중역들은 자동차와 기차로 달려와 단 몇 시간 만에 호텔 객실로 모두 모여들었는데요. 그들의 손에 들린 가방에는 고로와 코크스, 소결 설비 등 회사가 판매하는 각종 제철설비에 대해 소개하는 팸플릿들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포철은 1기 설비의 대부분을 일본 업체에서 구매했지만, 2기부터는 유럽의 여러분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2기 공사에 들어갈 설비 예정금액은 3억 5000만 달러입니다.” “나는 원활한 입찰을 진행하기 위해서 새해 1월 5일까지 여러분이 직접 포철로 오시길 희망합니다. 우리 회사 2기 설비구매의 문호는 틀림없이 여러분에게도 활짝 열려있습니다.” 모두가 모인 걸 확인한 박태준 회장은 설비업체 임원들에게 입찰에 참여하고 싶다면 약 2주 뒤까지 포항 영일만으로 와달라고 요구합니다. 설비업체 임원들 모두 연말, 연초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휴가 계획이 잡혀있었지만 포항제철 납품이라는 대어(大漁)를 낚을 기회 앞에서 휴가는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새해를 기념하는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극동의 바다가 궁금합니다.”라는 미소 띤 대답과 함께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죠. 1970년 4월 경북 포항 영일만 허허벌판에서 첫 삽을 뜬 포항제철(포스코)은 1992년 9월 25일 전남 광양만에 광양제철소 4기를 준공하며 연간 2100만 톤의 철강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3위의 철강업체로 거듭나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포항제철이 이처럼 단기간에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동안 회사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순간마다 어떤 전략으로 협상에 임했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코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든 1인 기업이든 기업의 모든 비즈니스는 협상의 연속이며, 크고 작은 협상의 결과들이 쌓이고 쌓여 기업의 성패를 결정짓게 되니까요. 특히 이번 글에선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인 박태준 회장이 동양의 병법(兵法)에서 유래된 여러 전략들을 협상 과정에 어떻게 적용했는지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박태준 회장이 젊은 시절의 경험을 통해 ‘준비된 철강왕’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과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한 내용은 앞서 기고했던 아래 글에서 따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박태준 회장이 앞에서 보여드렸던 것처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독일 출장을 떠났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973년 완공된 포항제철 1기 공장 설비의 대부분은 일본 제철설비업체에서 구입한 제품들로 채워졌는데요. 설비뿐 아니라 기술력도 일본 엔지니어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도전하는 대규모 종합제철소 건설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처음엔 이렇게 해외업체들의 설비와 기술력,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일본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죠. 이런 사정은 1기 공장에서 처음 쇳물이 쏟아져 나온 지 몇 달 뒤인 1973년 말, 2기 공장 착공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철소를 짓고, 운영해가면서 조금씩 포항제철 엔지니어들의 경험과 기술력이 쌓여가고는 있었지만 기술력 축적이 2, 3년 만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철강업계가 포항제철에 대한 설비 판매와 기술 이전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1973년 8월 말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의 여파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협력이 전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자국에 머물던 망명 정치인 김대중을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시켜 납치해간 한국 정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항의 표시였는데요. 일본 정부의 조치에 따라 한일 양국 간에 이뤄지던 경제협력 전부가 한순간에 중단됐고 포항제철 역시 언제쯤 일본산 제철설비를 들여올 수 있을지 예상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공장을 증설해 연간 생산 규모를 260만 톤까지 늘리겠다는 포항제철의 계획이 무기한 연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도쿄에 머물며 한일각료회의의 진행 상황을 노심초사하며 살펴보던 박태준은 이대로 정부에게 모든 걸 맡기고 가만히 기다려봤자 문제가 단시간 안에 해결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포항제철만의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죠. “일본에 머물면서 상황 진척을 위해 애쓰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무조건 유럽으로 날아가자. 1기 건설에 성공했으니 우리는 환영받을 것이다. 정치인이 아닌 내가 왜 정치적 방법에 매달리고 있는가? 사업의 난관은 사업가의 방식으로 돌파해야 옳지 않은가?” 그리고 이렇게 마음먹은 즉시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노중열 외국계약담당부장을 시켜 독일행 비행기를 예약시키죠. 그가 유럽 철강업체 임원들을 포항으로 부른 이유 함부르크에서 있었던 크리스마스 이브 회동으로부터 열흘여가 흐른 1974년 1월 초의 어느 저녁, 포항제철 사원주택단지 안에 있는 귀빈 숙소 영일대는 대낮처럼 환한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호탕한 웃음소리들도 간간히 건물 밖으로 들려왔고요.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찾아온 제철설비업체 중역들을 위한 환영회가 한창이었습니다. 박태준 회장이 귀빈 숙소의 모든 조명을 대낮처럼 환히 밝히라고 지시했던 것도 유럽에서 날아온 제철설비업체 임원들의 모습을 일본인 엔지니어들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박태준의 이 같은 전략은 금세 그 효과를 발휘하는데요. 이로부터 이틀도 지나지 않아 당시 주한 일본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유럽 설비업체들과의 교섭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가벼운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본 대사는 본론으로 치고 들어왔는데요. 이미 그가 전화를 건 이유를 꿰뚫고 있었던 만큼 박태준 역시 분명하게 답변합니다. “포철로서는 예정된 공기를 맞추려면 더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귀국의 업체들과 먼저 교섭하고 싶었지만 귀국 정부의 제재 조치 때문에 어쩔 수가 없군요.” 그리고 이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 일본 대사로부터 다시 한번 전화가 걸려옵니다. 일본 각료회의에서 포항제철 프로젝트만은 김대중 납치 사건과는 무관하게 계속해서 경제협력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뤘으니, 이제라도 일본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아직 입찰이 진행 중이니 일본 업체들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기회는 모든 참여업체들에 균등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고맙다는 일본 대사의 대답을 들으며 전화기를 내려놓는 박태준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갔기 때문이죠. 유럽 업체들을 동원해 일본 업체들을 입찰에 끌어들이고, 여러 회사들의 경쟁을 통해 입찰단가를 낮춘다는 목표를 모두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서쪽을 치고 싶다면 먼저 동쪽을 치는 것처럼 꾸며야 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치며 서쪽을 공격함)는 중국의 병법서 <삼십육계>에 수록된 전략인데요. 박태준은 일본 업체들을 입찰 전에 참여시키기 위해 이 전략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동쪽(일본)을 공략하기 위해 서쪽(유럽)의 힘을 동원했다는 면에서는 성서격동(聲西擊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략이었죠. 일본 대사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2기 공사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 제철설비업체 소속 계약 담당 임직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포항제철을 찾았는데요.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업체들의 임직원들은 한 건이라도 더 많은 계약을 따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쳤고, 이에 따라 설비 가격도 꾸준히 내려갔습니다. 덕분에 포항제철은 ‘최저비용으로 최고품질의 설비를 마련함으로써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를 이뤄낼 수 있었죠. “나무망치 하나 준비해야지. 비싸게 부르면서 튀어 오르는 놈은 무조건 두들겨요. 그러면 자꾸 내려가게 돼 있는데, 그래도 머리는 안 다치도록 적당히 해야지.” 박태준 회장이 보름 전에 영문도 모른 채 자신과 함께 독일로 떠났던 노중열 외국계약담당부장을 불러 웃으며 내린 지시였습니다. 박태준에게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협상의 법칙은 “달리기를 거부하는 말이 있다면 그냥 경마장에 풀어놓으라. 알아서 잘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협상에서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입니다. (다국적 차관단으로부터 포항제철 건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이 좌절된 이후 박태준과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에 대해 배상금으로 한국 정부에 지불한 대일청구권자금을 바탕으로 포항제철 건설비를 마련하려 했는데요. 박태준이 이 방안에 대해 끝까지 반대했던 일본 통상산업성 장관 오히라 마사요시를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전략을 바탕으로 설득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내용은 사진이나 아래 본문읽기 버튼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가 CEO 추천도서 5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가 지난 2월 출간된 이후 네 달 만에 벌써 다섯 차례에 걸쳐 <CEO추천 도서>로 선정됐습니다. 먼저 지난 4월에는 <교보문고 북모닝> 추천 도서로 선정됐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실 수 있듯이 현재 교보문고 주요 지점 북모닝 특별 서가와 북모닝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 분들과 만났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달 10권의 책을 추천도서로 선정하고 있는데요. 빌 게이츠가 20여년만에 내놓은 신작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제프 베이조스의 경영전략을 분석한 <순서 파괴>와 같은 대작들과 함께 선정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둘째, 직장인 대상 직무 교육업체인 휴넷의 <북러닝> 콘텐츠로 선정돼 책 내용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강의를 녹화했습니다. 동영상은 조만간 공개될 예정입니다. 휴넷은 국내의 대표적인 직무 교육업체인데요. 북러닝이란 이름으로 경제경영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업 임직원들 업무에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온라인 강연을 제작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셋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국제경영원과 컨설팅 기업인 한국능률협회의 추천 도서로 선정돼 각각 100권씩, 모두 200권이 기업 CEO분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전경련과 한국능률협회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추천 도서로 선정해주신 뒤 이 책을 각각 100분의 CEO분들에게 따로 전달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넷째, 이달 초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세리(SERI) CEO의 추천 도서로 선정돼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님께서 직접 제 책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동영상 강의와 세리CEO 뉴스레터를 통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 공유하기 홍선표 작가 rickeygo@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