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물가로 가본다. 텐트가 뚫어질 듯 세차게 내린 비 때문에 혹시 배가 잠겼거나, 떠내려 갔을까 봐. 다행히 배는 바위에 매어둔 그대로 잘 정박해 있다. 백패킹용 테이블을 펼치고 우드 트레이 위에 사과와 스콘을 꺼내 세팅했다. 커피를 내리며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단풍으로 물든 춘천호가 스위스의 인터라켄 호수처럼 느껴진다. 형형색색의 단풍 숲 산간에 걸쳐진 산 구름. 로스팅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피 가루가 이스트를 넣은 것처럼 잔뜩 부풀어올랐다. 비에 젖은 풀 냄새를 맞으며 커피를 마신다. 오지 캠핑을 하면 좋은 점은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점. 다시 폭우가 쏟아지자 우린 만두까지 옹골차게 구워 먹은 뒤 텐트 속에서 또 낮잠에 빠졌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 배낭을 싣고 바위에 묶어 둔 줄을 푸는 순간 A가 또 다시 비명을 지른다. 한 다리는 육지에, 한 다리는 뱃전에 걸친 채 또 혹사 당하고 있는 그녀의 허벅지다. “언니~!” 그녀의 새된 소리에도 어찌해줄 수가 없는 나는 ‘바위를 잡아!’라는 말 밖에 할 게 없었고, 카누와 육지 사이는 나얼의 노래처럼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순간, A는 헬스장에서 하던 ‘힙 어브덕션’ 파워를 모아 간신히 허벅지를 모은다. “얍!” 그간 받은 PT가 빛을 발한 순간이다.
안정을 찾은 우린 또 다시 노를 젓는다. 그리고 카누를 타면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절벽 포인트, 단풍 나무가 컬러풀하게 우거진 건너편 뭍까지 가본다. 뱃전에 잠시 노를 걸쳐뒀더니 배가 멀리 밀려가 있다. 뭐 어떤가. 노는 다시 저으면 된다. 가끔은 파도나 조류를 타는 것마냥 이리저리 흔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마주치는 낯선 풍경에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게 인생이니까.
‘사장님! 저희 무사히 나와서 카누 매두고 가요!’ 쾌활한 우리의 문자에 사장님은 또 한 글자 답장을 보내왔다. ‘ㅎ넵’. 챗봇 같은 ‘ㅎ’ 안에 이제 보니 모든 염려와 인사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가끔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이런 정도의 마이크로 모험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허벅지 근육을 희생하며 ‘카누 캠핑’이라는 작은 도전에 성공한 우리는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어쨌든 살아남았다. 우리는 오늘도 ‘일’과 ‘회사’로 상징되는 세계에 한 다리를 걸친 채 감정의 사선을 넘는다. 그러니 새로운 모험에 마음을 열었다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잽싸게 올라탈 것. 그리고 ‘도전’이라는 노를 격하게 저을 것. 춘천호 무인도 카누 캠핑은 그런 교훈을 던져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