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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4 캠핑이 좋아서 24 | 박찬은

인생도 우물쭈물하면 뒤집어진다(Feat. 카누캠핑)

 
 
 
 
 
 
 
 
 
 
 
 
 
매주 금요일, 박찬은 작가의 '캠핑이 좋아서'를 보내드립니다.

🏕️ 캠핑이 좋아서 24 | 박찬은

인생도 우물쭈물하면 뒤집어진다(Feat. 카누캠핑)

 

“비가 많이 온다는데 괜찮겠어요? 여자 두 분이 배 타고 들어가야 되는데……” 만류하는 캠핑장 사장님의 전화에도 A와 나의 무인도 카누 캠핑에 대한 판타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약일 아침에 창문을 열었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현지 날씨도 심상치 않았다. 하, 가지 말까. 하지만 ‘캠핑 취소하자’라고 먼저 말하는 병약한 동료 캠퍼가 되긴 싫었다. 오전까지 계속된 눈치싸움을 끝낸 것은 A였다. “언니! 호우주의보에 돌풍까지 분대! 배 뒤집히면 안 되잖아. 취소하자!” 안도감을 들키지 않은 채 나는 짐짓 아쉬운 듯이 답을 한다. “그래, 가고 싶지만 안전이 우선이지!”그리고 늦가을의 어느 날, 우린 무인도 카누 캠핑에 재도전하기 위해 춘천호로 차를 몰았다. ‘사장님, 저희 무인도 캠핑 재도전하려고요!’(나) ‘ㅎ넵!’(사장님) 그 ‘ㅎ’ 문자에서 ‘다이내믹해지고 싶어하는 두 도시 여자’의 도전을 달가워 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카누 캠핑은 처음인 우리. 과연 배낭을 배에 잘 실을 수 있을까. 내릴 때 배낭을 빠뜨리진 않을까. 물에 빠질 경우를 대비해 바지도 한 벌씩 챙겨온 겁쟁이 둘이 짐짓 씩씩한 척 노를 집어 들었다. 오늘의 캠핑 포인트는 카누에 배낭을 싣고 30분쯤 노를 저어 가면 나오는 무인도(엄밀히 따지면 삼면이 호수로 둘러싸인 반도다). 우린 ‘서울 마포 조종 면허시험장’이라고 붉은 글씨로 크게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올라탄다. ‘기우뚱~’ 선 채로 내가 주춤거리는 바람에 배가 양쪽으로 크게 출렁인다. “빨리 앉아요!”(사장님) 카누에 탈 때 필요한 것은 ‘얼른 무게중심을 낮추는 것’과 ‘빠른 엉덩이 착지’였다. 한 발만 올린 채 다른 발을 늦게 거두어 들이거나, 선 채로 우물쭈물하며 비틀거리면 뒤집힐 수 있다. “힘센 사람이 선미에 앉아요. 내릴 때, 탈 때 잘해야 되요.”

해프닝 끝에 배낭과 장작, 식량을 실은 모두 카누가 출발한다. 바람도 불지 않는 잔잔한 가을 호수를 가르며 노를 저었지만 내 비루한 전완근은 금방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아무리 열심히 저어도 선미가 받쳐주지 않으면 배는 잘 나아간다. 흡사 미사리의 조정 선수들처럼 결연하게 구령을 붙였건만 카누는 애먹이는 중고차처럼 삐걱대며 나아갔다. 조용한 호수에서 노를 저으며 물멍을 하겠다는 생각은 야무진 계획이었다. 한쪽에만 날이 달린 노를 이쪽 저쪽으로 옮기며 방향을 조절하지 않으면 배는 엉뚱한 곳으로 갔고, 잠시 쉬다 보면 빙빙 돌거나 엉뚱한 뭍으로 가기 일쑤였다. 아, 이래서 헬스장에 로잉 머신(Rowing Machine)이 있는 거구나!

 

그러기를 30분여, 드디어 박지 앞에 도착한다. 면허시험장에서도 한쪽 손으로 핸들을 돌리던 평행 주차 실력을 발휘해 카누의 옆구리를 뭍에 가까이 댔다. 한쪽 다리를 뭍에 내렸지만 다른 쪽 다리를 내려놓기 전에 배와 육지 사이가 멀어진다. “어어어~” 다리가 찢어지며 사선을 넘나들던 A가 먼저 내리고 뒤이어 내가 스쿼트 자세로 일어났다. 그리곤 배 위에서 시체를 바다로 빠뜨리던 영화 속 조폭들을 떠올리며 배낭을 살살 굴려 바위 위에 안착시켰다. 휴우.

입도 성공을 자축하며 맥주 캔을 딴다. 일단 노 젓느라 텐트 칠 힘이 없다. 하지만 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급하게 텐트를 치고 있는데 보트 엔진 소리와 함께 사장님이 등장한다. “왜 전화를 안 받아요? 비가 많이 오는데 전화는 안 받고 불안해서 와 봤지 뭐, 필요하면 노 저어 나와야 돼. 나 가니까 이제 알아서들 생존하셔!” 마음만은 홍반장인 사장님은 그렇게 춘천호에 우리만 두고 떠나갔다.


피칭을 마친 뒤 시즈닝 해 온 한우 채끝살과 먹을 술로 아이슬란드에서 사온 ‘브레니빈(BRENNIVIN)’을 꺼냈다. 한국의 참이슬 같은, 아이슬란드의 국민주. 37.5도의 증류주를 목으로 털어 넣으며 무인도 같은 곳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자니 불과 얼음의 섬 아이슬란드를 발견한 바이킹이 된 것 같았다. 된장찌개에 어묵탕까지 야무지게 끓여 먹은 우린 올림픽을 끝낸 국대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물가로 가본다. 텐트가 뚫어질 듯 세차게 내린 비 때문에 혹시 배가 잠겼거나, 떠내려 갔을까 봐. 다행히 배는 바위에 매어둔 그대로 잘 정박해 있다. 백패킹용 테이블을 펼치고 우드 트레이 위에 사과와 스콘을 꺼내 세팅했다. 커피를 내리며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단풍으로 물든 춘천호가 스위스의 인터라켄 호수처럼 느껴진다. 형형색색의 단풍 숲 산간에 걸쳐진 산 구름. 로스팅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피 가루가 이스트를 넣은 것처럼 잔뜩 부풀어올랐다. 비에 젖은 풀 냄새를 맞으며 커피를 마신다. 오지 캠핑을 하면 좋은 점은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점. 다시 폭우가 쏟아지자 우린 만두까지 옹골차게 구워 먹은 뒤 텐트 속에서 또 낮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물가로 가본다. 텐트가 뚫어질 듯 세차게 내린 비 때문에 혹시 배가 잠겼거나, 떠내려 갔을까 봐. 다행히 배는 바위에 매어둔 그대로 잘 정박해 있다. 백패킹용 테이블을 펼치고 우드 트레이 위에 사과와 스콘을 꺼내 세팅했다. 커피를 내리며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단풍으로 물든 춘천호가 스위스의 인터라켄 호수처럼 느껴진다. 형형색색의 단풍 숲 산간에 걸쳐진 산 구름. 로스팅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피 가루가 이스트를 넣은 것처럼 잔뜩 부풀어올랐다. 비에 젖은 풀 냄새를 맞으며 커피를 마신다. 오지 캠핑을 하면 좋은 점은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점. 다시 폭우가 쏟아지자 우린 만두까지 옹골차게 구워 먹은 뒤 텐트 속에서 또 낮잠에 빠졌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 배낭을 싣고 바위에 묶어 둔 줄을 푸는 순간 A가 또 다시 비명을 지른다. 한 다리는 육지에, 한 다리는 뱃전에 걸친 채 또 혹사 당하고 있는 그녀의 허벅지다. “언니~!” 그녀의 새된 소리에도 어찌해줄 수가 없는 나는 ‘바위를 잡아!’라는 말 밖에 할 게 없었고, 카누와 육지 사이는 나얼의 노래처럼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순간, A는 헬스장에서 하던 ‘힙 어브덕션’ 파워를 모아 간신히 허벅지를 모은다. “얍!” 그간 받은 PT가 빛을 발한 순간이다.


안정을 찾은 우린 또 다시 노를 젓는다. 그리고 카누를 타면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절벽 포인트, 단풍 나무가 컬러풀하게 우거진 건너편 뭍까지 가본다. 뱃전에 잠시 노를 걸쳐뒀더니 배가 멀리 밀려가 있다. 뭐 어떤가. 노는 다시 저으면 된다. 가끔은 파도나 조류를 타는 것마냥 이리저리 흔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마주치는 낯선 풍경에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게 인생이니까.  

 

‘사장님! 저희 무사히 나와서 카누 매두고 가요!’ 쾌활한 우리의 문자에 사장님은 또 한 글자 답장을 보내왔다. ‘ㅎ넵’. 챗봇 같은 ‘ㅎ’ 안에 이제 보니 모든 염려와 인사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가끔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이런 정도의 마이크로 모험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허벅지 근육을 희생하며 ‘카누 캠핑’이라는 작은 도전에 성공한 우리는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어쨌든 살아남았다. 우리는 오늘도 ‘일’과 ‘회사’로 상징되는 세계에 한 다리를 걸친 채 감정의 사선을 넘는다. 그러니 새로운 모험에 마음을 열었다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잽싸게 올라탈 것. 그리고 ‘도전’이라는 노를 격하게 저을 것. 춘천호 무인도 카누 캠핑은 그런 교훈을 던져줬다.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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