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95회 (2023.03.15)
  △ 김지승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 

매일 더 봄을 향하고 계신가요? 김지승입니다. 저는 읽고 쓰고 연결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책 속에서 먼저 산 누군가의 반짝이는 뒤통수를 발견하는 기쁨에 빠져 있습니다. 지극히 소중한 걸음과 목소리가 어느 날은 가까이에서, 다른 날은 멀리서 옵니다. 뒤통수와 함께 옵니다. 아는 이의 것일 때도 있지만 대개 모르는 이들이어서 그들의 뼈와 살을 산만하고 모호하게 받아듭니다. 검고 하얀 언어도 나눠 받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우리에게도 광기와 분노의 시학적 계보가 있냐는 질문을 받고 기뻤습니다. 제가 아는 두 시인의 뒤통수가 떠올랐거든요.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뼈와 살, 검고 하얀 언어를 겨울에 바치고 우리는 머뭇머뭇 여의한 봄을 맞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럴 수 있길 바라며 질문에 시로 답을 합니다.

💘김지승 작가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의자였는데 (김언희, 『트렁크)

 

의자였는데
내가앉으니도마였다
베개였는데
내가베니작두였다
사람이었는데내가안으니
내가안으니포장육
손톱발톱이길어나는포장육
막다른데가따로없었다
꽃한송이꽃절벽
사람하나사람절벽
여기이절벽에서저기저
절벽으로내입에서내어놓은
거미줄에매달려간댕
간댕건너간다끊어
질듯끊어질듯

남들은 앉아 쉬는 곳이지만 거기서도 신경을 벼리거나 자르거나 다져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느 나입니다. 눈을 감고 잠들자니 시퍼런 칼날 위에 선 듯하고, 사랑하려니 품에 안긴 건 손발톱만 길어나는 포장육입니다. 꽃을 보면 꽃이,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 절벽이 됩니다. 띄어쓰기 없이 밀밀한 세계는 나의 자리 하나 없이 포화합니다. 생의 밀도와 내압이 가슴을 짓누르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나는 나를 어떻게 살려야 할까요. 거미에게 거미줄이 집이자 생계이자 폭력적 관계의 도구라면 시인의 거미줄은 절박한 언어일 수 있을까요. 입에서 그것을 뽑아 간댕간댕 매달립니다. 너무 일찍 서커스 무대 뒤편을 보고 만 이처럼 심드렁하면서도 아슬아슬 자기가 만든 절벽으로 곡예하듯 넘어갑니다. 분노였는데 내가 쓰니 무구한 자기 환멸이 됩니다. 죽이지 못해 자꾸 죽어버리는 뒤통수가 거기 있습니다. 어쩌면 의자 대신일까요. 시인은 개정판 시인의 말에서 앤 섹스턴을 빌려옵니다. 미치지 않으려고 미친 또하나의 여자.

💙막간 우시사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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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작가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그저 어항 (김민정,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방에서 나와 방문을 잠근다 열쇠는 오도독오도독 소리 나는 소리 안 나게 부수어진 이로 주전부리 삼아버리고 다시 방문을 두드린다 게 아무도 없나요? 내가 오른손으로 문 똑똑 두드렸을 때

게 아무도 없나요? 하며 왼손으로 문 똑똑 두드리는 내가 내 앞에 서 있다 나는 나에게 손 내민다 X자로 교차하여 터치한 배턴을 움켜쥔 채 나와 나는 서로의 나를 향해 전력 질주해 들어간다

눈 떠보니 거울 달린 내 관 속이었다

김민정 시인의 시는 직선에서 곡선을, 취함에서 깸을, 죽음에서 자꾸 피식피식 웃게 되는 생을 발견하게 합니다. 홀린 듯 쓰고 한참 후에 이마를 짚으며 자기 의중에 자기가 곤란해하는 시인데, 작정하고 정직해서 정직한 사람 앞에서는 유독 더 슬퍼지는 그런 나/나가 따로 내달리는 시인데, 함께 분열을 도모해보자 자꾸 초대를 하는 거예요. 그래도 관 속까지 초대할 줄은 몰랐는데요. 개정판에서 놓인 자리가 달라진 시를 처음 보듯 다시 보니 그 초대가 유독 반갑기도 해서요.

분열된 나의 감정적 조응에는 날카로운 유릿조각을 꼭꼭 씹어 삼키는 자학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종종 자학은 선수 친 자기방어이기도 하지요. 나는 방문 밖에 갇히고 거울 앞에서 분열하고 손이라는 신체 부위로 파편화됩니다. 이 역설적인 감금과 거울 이미지는 누런 벽지제인 에어버사 메이슨의 뒤통수를 불러옵니다. “게 아무도 없나요?” 그럴 리가요. 더 많은 뒤통수들이 전력 질주합니다. 배턴을 꼭 쥐고요. 분열된 이들에게 분열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경험됩니다. 광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 너머의 시선만이 분열과 광기 등에 환상성을 부여할 테고요. 저 같은 독자는 이러한 분열을 환상이나 시적 현실로만 인식할 수 없습니다. 조금 억울한 날에는 어항 저편 굴절된 큰 눈으로 똑똑,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당신들의 현실은 이렇지 않냐고. 자주 미치고 분열하고 갇힌 채 이해받지 못하지 않냐고. 이 시를 읽은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실까요?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다음주 시믈리에는 『어쿠스틱 라이프』와 『도토리 문화센터』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난다 작가입니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보편적인 공감대를 정확히 짚어내는 난다 작가님은 어떤 시를 골랐을까요? 다음주에 만나요! 


💛<우시사>의 시믈리에가 되어주실 분 🙋‍♀️💛

<우시사>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아래 링크의 양식을 작성해 제출해주세요.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어 <우시사> 독자분들께 대신 소개해드릴게요.
  
💌지난호 <우시사>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 일상을 살다가 놓치는 감각이나 감수성을 다시 일깨워줘서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한 편 한 편 공들여 고른 시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 조말선 시인의 시를 안미옥 시인의 눈으로 다시 해석해서 읽으니 새롭게 다가와서 너무 좋았습니다.
💬 출근길에 마음의 양식을 충전할 겸 가볍게 읽기 너무 좋네요.

💚의견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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