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처럼 임신 후기에 임신중지를 하는 이들이 많아?
💬흔치는 않아. 복지부가 2021년 15~49살 여성 8500명을 대상으로 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평균 임신중지 수술 시기는 6.74주야. 임신 초기가 월경 시작일부터 13주까지니까, 대부분 초기에 임신중지를 한단 뜻이지. 임신 주수가 늘어날수록 임신중지나 출산으로 인한 위험이 커져서 위험하기도 하고.
🎙️️그럼 어떨 때 후기 임신중지를 할까?
💬의료 접근성이 떨어질 때야. 미국에 ‘구트마허 연구소’라는 비영리 연구단체가 있거든? 여기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어. 임신 24주 이후 임신중지 수술을 받은 28명을 심층 면접했더니 ①비싼 수술비 ②임신중지가 가능한 전문의·의료기관 부재 ③의사의 수술 거부가 문제였어.
🎙️️한국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가, 낙태죄가 효력을 잃은 2021년 1월 이후 임신 3주~9주에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 6명을 인터뷰했거든. 임신중지 상담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 일부터 쉽지가 않았대. 집 근처 임신중지 수술을 하는 병원이 없어 멀리 떨어진 병원에 다녔고. 임신중지 관련 의료 행위가 비급여이다 보니 병원에 내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라고 하더라고.
🎙️️낙태죄가 폐지됐는데 왜 의사들은 수술을 꺼리는 거야?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의사 126명 중에 40.5%만 임신중지 수술을 제공한다고 답했어. 조사 당시와 그 전 수술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개인적 신념, 종교 및 심리적 이유’ 때문이라는 응답률이 가장 높게 나왔고. 생명 존중 입장에서 임신중지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거지. 물론 다른 이유도 있어.
🎙️️뭔데?
💬임신중지 수술을 하는 의사에 대한 보호책이 없다는 거야. 임신중지 수술이 가능한 범위나, 수술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정부 가이드라인(지침)이 없거든. 의사가 수술 여부 판단은 물론 수술 과정에서 과다출혈이나 패혈증 같은 합병증이 생길 때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있는 거지.
🎙️️낙태죄가 폐지된 지 3년이 넘었잖아. 법이 왜 아직도 없는 거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후 21대 국회에서는 형법개정안 6건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7건이 발의됐는데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어.
🎙️️어떤 내용이 담겼는데?
💬형법개정안은 크게 ‘낙태죄’ 처벌 규정을 없애는 법안(3개)과 유지하는 법안(3개)으로 나뉘어. 7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법안과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기관을 설치’하는 법안, ‘임신중지에 보험급여를 적용하거나 의료비를 지원’하는 법안 등이 있었지.
🎙️️13개 법안 중 통과된 게 하나도 없어?
💬응.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만 하고 심사를 제대로 안 했거든. 당시 정부·여당은 형법 개정을 먼저 하고, 그 뒤에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를 하자고 했어. 야당 쪽은 모자보건법 개정 심사를 먼저 하자고 했지.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법 개정은 무산됐어.
🎙️️발의된 법 개정안 중 의미 있는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모자보건법을 ‘임신·출산 등과 양육에 관한 권리보장 및 지원법’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어. 무슨 차이가 있냐고? 모자보건법명에 ‘모자’가 왜 들어갔을까. 임신을 위해선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가 만나야 하잖아. 그 과정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건강도 중요하고. 근데 왜 법명엔 어머니, 아들만 있는 걸까?
🎙️️정말 그렇네. 아버지, 딸은 왜 없어?
💬모자보건법이 1973년에 제정됐거든. 임신과 출산 관리는 여성만의 몫이라는 인식, 남아선호사상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 이은주 의원 발의 법안은 기존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법의 목적도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임신·출산 등과 양육 전 과정에서 권리를 보장받는다’로 바꿨어.
🎙️️어떤 제도부터 만들어야 해?
💬한두 개가 아니야. 임신중지 관련 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병원 정보를 제공해야 해. 임신중지약도 도입해야 하고. 임신중지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 안전한 임신중지 수술을 받을 권리, 임신중지 전후에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모두 ‘재생산권’에 포함되거든. 지금은 이를 보장할 정부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거지.
🎙️️다른 국가는 어때?
💬‘낙태죄 비범죄화’는 세계적인 추세야. ‘구트마허 연구소’에서 낸 ‘2017 세계의 임신중지’ 보고서를 보면, 2000년 이후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스위스, 호주, 룩셈부르크, 네팔, 우루과이는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했고 에티오피아, 케냐, 태국 등은 임신중지 허용 한계를 완화했어.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1973년 이래로 모자보건법상의 임신중지 허용한계 조항은 달라진 적이 없지. 낙태죄가 폐지된 뒤에도.
🎙️️허용한계 조항?
💬임신중지가 가능한 예외 사유를 규정한 조항으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해 또는 혈족 간에 임신된 경우 등 5가지야. 근데 낙태죄가 폐지되면서 유명무실화되긴 했어.
🎙️️우린 뭘 해야 할까?
💬‘36주 임신중지’ 사건이 살인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ㄱ씨가 왜, 어떤 이유로 임신 후기에 이르기까지 임신중지를 하지 못했는가’는 고려 대상이 아냐. 이를 살피고 지원 공백이 있었다면 그걸 메우는 건 정부와 국회 역할이거든. 둘 다 역할을 하지 않고 있지. 국회와 정부를 움직이게 하려면 우리가 계속 임신중지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여성만 조심하고 관심가져야 한다니, 여성은 참 억울해.
💬여성은 스스로 임신할 수가 없어. 임신하려면 남성 파트너가 필요해.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갑작스러운 임신, 그로 인한 임신중지, 늦어진 임신중지와 같은 일을 여성 잘못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잖아. 문제라고 생각해. “임신중지는 개인의 권리로서 국가 허락을 받을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본권”이란 김선혜 이화여대 교수(여성학) 말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