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3일 언뮤 뉴스레터 제7호by 음악학 허물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벼슬자리가 없음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벼슬자리에 설 능력을 근심할 일이고, 자기가 알려지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알려질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되기를 바랄 일이다. —공자, 『논어』 중에서 ‘한중일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99명의 참가자가 꿈을 향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 함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주 방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K그룹 1위로 평가 받았지만 데뷔가 가능한 탑9에는 들지 못 한 참가자가 ‘마스터’(멘토)의 칭찬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C그룹과 J그룹 1위는 모두 탑9에 포함되었는데 자기 혼자 들지 못 해 자존심도 상하고 K그룹 동료들에게도 미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무대 중간 점검 시간에 “왜 K그룹 1등인지 알겠다”는 평가에 이어 “어차피 알아서 탑9까지 올라갈 것 같아 일부러 뽑지 않았다”는 ‘마스터’의 칭찬에 눈물을 왈칵 쏟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만 울컥...은 거짓말이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 “자기가 알려지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알려질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되기를 바랄 일”(차주환 옮김, 『한역 논어』, 교문사, 2005)이라는 공자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말이 쉽지 참 어렵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본인 능력 이상의 기회를 잡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도 보이는 반면, 돋보이는 파트는 아니더라도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참가자도 보입니다. 나 혼자 살아남기도 벅찬데 조용히 주변 친구들을 살피는 참가자도 있습니다. ‘관찰’ 예능이 아니더라도 아마 다 보일 겁니다. 그래서 저도 〈걸스플래닛〉을 보며 조급하게 굴지 말고 내 할 일 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 뉴스레터도 이를테면 그런 다짐이자 원동력 같은 것입니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와이즈베리, 2020)를 읽고 나면 ‘공정함’이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지만 ‘벼슬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면 능력을 펼칠 기회는 있다고 믿습니다. 〈걸스플래닛〉 참가자 모두 후회 없이 본인 실력 마음껏 뽐내는 시간이 되길 응원합니다. 오늘은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處暑). 달갑지 않은 태풍 소식이 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늦었지만 뉴스레터 언뮤와 함께 평안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1. 조스캥 데 프레 서거 500주년 2021년은 조스캥 데 프레 서거 500주년. 정확히 이번 주 금요일 500주기를 맞습니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서양음악사 시간에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조스캥 데 프레의 음악을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167번째 방송에서 만나 보세요. 바로크 이전 르네상스, 중세 음악은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자주 연주되지 않아 들을 기회가 별로 없는데 듣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자주 연주되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음반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지만 마니아가 아닌 이상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음악 전공자도 마찬가지. 서양음악사 시간에 기껏해야 한두 시간 다루고 넘어가는 음악가지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 앞서 ‘천재’ 타이틀을 얻은 조스캥의 음악은 생각보다 들을 만합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세요 2. 클래식 음악의 ‘위기’? 클래식 음악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서양 고전 음악, 정확히 말하면 서양 고전 음악의 정전(正典)은 전례 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긴 얘기 짧게 하면 ‘정치적 올바름’을 바탕으로 ‘위대한 서양 고전’이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 물론 여기에는 음악도 포함됩니다. 소위 ‘위대한’ 작곡가와 작품들은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프레임’된 엘리트주의의 소산이라는 것인데 논증 과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정교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으로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음악 이론과 분석을 전공한 음악학자 입장에서 음악만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문적 도구들도 부정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이러한 이론과 분석 도구들은 ‘백인 남성’들이 정해 놓은 ‘위대함’의 조건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백인 남성’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니 이 도구가 밝히려는 ‘위대함’ 자체가 부정된다면 도구 또한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음악에 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국내 음악학자들 간의 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을 수입하는 데에는 열정적인 반면 이런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불만입니다. 어쩌면 올해 안으로 (정확히 이 주제는 아니지만 무관하지 않은) 대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다시 전하겠지만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음 두 편(정확히 세 편)의 글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신동진 박사의 논문은 2019년 미국서양음악이론학회에서 진행된 필립 유얼의 발표를 발단으로 불붙은 ‘백인종 프레임’ 논란과 후폭풍을 상세히 다룹니다. 북미 음악(이론)학계 내의 갈등을 전하는 이 논문과 달리 두 파트로 나뉘어 발표된 헤더 맥 도널드 맨해튼 연구소 연구원의 글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일고 있는 ‘캔슬 걸처’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편향적이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최근 발행된 글이라는 점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하루 1시간 글쓰기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프로젝트 44일차. 아웃라인을 바탕으로 그동안 작성한 글을 재구성하고 나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략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관련 문헌 읽고 보충할 차례. 쓰다 막히면(혹은 지치면) 읽고, 어느 정도 읽고 나면 다시 쓰는 과정의 반복이지만 글쓰기가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전체 과정 녹화해 편집 없이 업로드합니다. 4. 머레이 쉐이퍼 타계 ‘음향생태학의 아버지’ 머레이 쉐이퍼가 알츠하이머 합병증으로 지난 8월 14일(캐나다 현지 시간)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8세. ‘소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듣기’의 대상과 방식을 확장한 음악가로 기억됩니다. 그의 저서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그물코, 2008)은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을 대중화한 인물로 유명하지만 그는 사실 첫째도 둘째도 ‘작곡가’였습니다. (적어도 본인 스스로 그렇게 기억되길 희망했습니다.) 아래 부고에 그의 음성과 음악 링크되어 있으니 한 번 들어 보세요. 좋아할 겁니다. 언뮤 뉴스레터를 주변에도 알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