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주형 기자입니다.
박주영 판사의 책 <법정의 얼굴들>에는 보이스피싱 수금원 일을 하다 재판에 넘겨진 K의 사례가 나옵니다. 사건 당시 70대 중반이었던 K는 평범한 구인 공고를 보고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됐습니다.
“20년째 그랬듯 그날도 K는 별생각 없이 <교차로> 구인란을 보고 있었다. 평소 못 보던 구인광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수금원 구함. 전국 출장 가능한 자. 월 300 보장. 매일 일당 지급.” K는 호기심에 문자를 보냈다. 답이 왔다. 열심히만 하면 고액 임금이 보장되고 나이도 상관없다고 했다. 속는 셈치고 직접 전화를 걸었다.”
사업 실패로 특별한 직업 없이 지냈던 K는 이 일을 시작하고 “20년 만에 가장 노릇을 하게 돼서 말할 수 없이 기뻤”고, “손주들에게도 이제 할애비 노릇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K가 한 일은 텔레그램 메시지에 따라 약속 장소로 가 돈을 받고 계좌로 송금하는 일이었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K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일화를 읽으며 지난 달 창원지방법원에서 본 한 증인이 떠올랐습니다.
A는 마약을 운반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날 A는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공범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A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OOO의 제안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A는 4년 전 OOO으로부터 마약을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변호인: OOO의 텔레그램 계정이 마약을 거래하는 계정인가요?
A: 네 맞습니다.
변호인: 증인은 OOO과 마약을 거래하는 관계였는데 어떻게 같이 일을 하게 됐나요?
A: 거래는 예전에 한 번 했습니다. 이후에 제가 텔레그램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마약을 떠나서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OOO이 “그러면 이렇게 해서 돈 벌어볼 생각 없느냐”고 제안을 해서.
변호인: 이렇게 돈을 번다는 게 어떤 겁니까?
A: 시키는 일을 하면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인지는 정확히 몰랐습니다. 제가 물어보지도 않아서…
변호인: OOO이 시키는 일이면 당연히 마약에 관한 일 아닌가요?
A: 확실히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A는 이후 인천, 서울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서류 가방을 받고 모텔 숙소로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이날 법정에서 A는 자신이 옮기는 가방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처음엔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첫 번째 가방은 열어보지 않아서 내용물을 몰랐고, 두 번째 가방을 받았을 때는 “가방 안에 든 것이 필로폰이다. 몇 그램인지 확인해보라”는 OOO의 지시를 받아 마약임을 인지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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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경우 본인이 마약을 구입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앞선 K의 이야기와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점이 같았습니다.
의구심이 들 만한 정황이 있었는데도 그 일이 범죄인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도 같습니다.
법정에 선 K는 그 일이 보이스피싱인지 “정말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박주영 판사는 책에서 “나는 그 말이 '꿈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로 들렸다”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