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ric Benét
<Georgy Porgy>
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태풍 카눈이 꽤 난리입니다. 비가 꽤 많이 오는 지역도 많다 보니 기억하시는 분들은 공간에 또 비가 새는 건 아닌지 걱정 해주시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장마 때보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누수는 없습니다.  

저는 태풍하면 항상 생각나는 것은 창문에 붙이는 테이프입니다. 어릴 때는 호들갑을 떨며 집에 있는 모든 창문에 테이프와 신문지를 붙이는 별짓을 다 했었는데 커서 보니 수도권 지역은 태풍의 영향이 크지 않아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되는 거더라고요.

깨지지도 않을 유리창에 괜시리 테이프와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여놓고는 마치 그것 때문에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고 기뻐하는 멍청이... 게다가 붙이는 건 기억나고 치우는 건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엄마의 몫이었겠지. 미안해 엄마...

요즘도 피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테이프를 붙이는 것 같습니다. 옛날엔 X자로 붙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ㅁ자로 창들을 고정시키는 것이 유행(?)인 것 같더라고요. 신문지는 유리창을 보호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하고요.

어렸을 땐 그 얇은 유리창이 무시무시한 태풍을 유리보다 얇은 테이프로 붙잡아 주기만해도 버티는 게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문득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엄청난 태풍이 몰아쳐 상처 받고 뒤흔들리다가도 주변에서 조금씩 조금씩 붙잡아 주는 힘이 있어서 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 주변에 테이프나 신문지를 붙여주는 사람을 한명 정도 꼭 곁에 둡시다.

다만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를 혼자 정리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 마음의 여유는 갖고 있자고요.

ps.
사실 태풍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떠올라 에릭 베네의 <Hurricane>을 틀려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에 에릭 베네의 노래를 줄줄 듣다가 Toto의 <Georgy porgy>를 리메이크했다는 걸 발견하고 이 노래를 틉니다. 아무 이유 없다는 뜻이에요. 그냥 노래가 너무 좋아요. 후렴 뒤에 나오는 유명한 세션 부분에서 아주 간결하게 브라스 사운드만 쓴 것이 돋보입니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셔도 좋을 듯. 
<양의 편지 일기>
요즘 정말 정신 없는 일상의 최정점을 찍었다. 아침 9시에 일을 시작해 다음날 아침 6시에 집에 들어가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진 상태. 낮과 밤의 구분이 없고, 날짜 감각도 뒤틀렸다. 가게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밤 9시가 되어 있는 걸 보면 꽤 느낌이 이상하다.

뚝딱뚝딱 하다보니 주방도 이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사가 끝나고 우리도 처음 주방을 써볼 수 있었던 날, 가까이 사는 동네 지인들을 불러다가 간단히 음식을 대접했다. 지인들이 도와준 덕에 동업자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얼기설기 엉망진창 하지만 맛있는 그런 음식을 내놓고 술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업자가 주방장 역할이다 보니 나는 음식하는데 보조역할을 해주었는데, 괜시리 나도 우리 우람한 화구를 써보고 싶었다. 주방장놈이 자리를 비운 틈에 칼로 요 썰고 조 썰고 팬을 잡고 집에서 종종 해먹던 파스타를 만들어 봤다. 매번 만들던 파스타인데 간도 잘 못하고 불이 생각보다 센 탓에 엉망진창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나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는지 지인 하나가 스윽 오더니 위로의 말을 건낸다. 파스타를 망친 걸 위로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만든 파스타를 보고 동공은 지진이 났지만 가게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해줬다.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앞으로 더 고생이겠지만 힘내라고. 

말 몇 마디로 유리창에 테이프가 붙었다. 그리고 다들 파스타를 한입씩 먹고 음...? 유리창에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여줬다. 다만 파스타는 거의 나왔던 그대로인 상태로 싱크대에 들어갔다. 주방장놈은 싱크대를 보더니 음식물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냐며 조롱했지만, 그 마저도 신문지라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은 유리창이 깨질일은 없겠다.

letter.from.yang@gmail.com
+821071646749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