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연일 공판 광경과 과정을 보도하는 가운데"
현실 법정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던 재판들이 있습니다.
최은희 배우의 연기 모델이었던, 이태영 변호사(1914년~1998년)가 변론을 맡은 이혼 소송이 대표적입니다.
부흥부(산업·경제 부흥 부처) 전 차관이었던 오모 씨가 1959년 64세의 나이로 아내에게 이혼을 청구합니다. 1심 재판부는 '사유가 불충분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혼생활 동안 '축첩'을 이어가는 등 충실하지 않았던 건 오히려 남편이었습니다.
1심에서 진 오 씨는 항소와 동시에 아내를 '간통죄'로도 고소합니다.
54세의 부인과 부인에게 춤을 가르치던 37세 교사. 이태영 변호사는 당시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대단했다"고 말합니다. 혼란스럽던 사회에 '춤바람', '치정' 등 자극적인 말이 모두 등장하고 있었다고요.
"공판이 열리는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는 서로 들어가려고 아우성을 치고, 법원 밖으로는 덕수궁 담을 끼고 긴 줄을 섰으며, 수십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방청객들은 법정에 뛰어들려다 유리창을 깨는가 하면, 법정 안에서는 남편을 비난하는 욕설이 난무해 일대 소란이었다."
재판부는 1959년 7월 아내에게 '간통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태영 변호사는 "무죄가 선고되자 여성 방청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고 썼습니다.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이 재판을 "출세한 '바람둥이' 남편과 억울한 누명을 쓴 아내의 법정 대결"로 규정했다고요.
이태영 변호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데요.
1952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에는 판사에 지원했습니다.
김병로 당시 대법원장이 판사 임용을 직접 건의하기도 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성이기도 하고, 야당 정치인의 아내였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909년 기유각서와 1948년 사법부 독립
김병로 전 대법원장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법원장입니다.
다시 법원의 날로 돌아가면, 이날은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넘겨받아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날인 1948년 9월 13일을 기념합니다.
경술국치(1910년) 이전에 일제는 대한제국의 사법권도 빼앗았습니다.
1909년 7월 이토 히로부미가 '사법과 감옥 제도를 일본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기유각서'를 통해 대한제국의 사법권은 일제로 완전히 넘어갑니다.
법원 등 재판 제도가 개편됐고요. 출신에 따라 판사를 차별하는 조항도 생겼습니다.
한국인 판사는 피고인이 한국인이거나(형사재판), 한국인 사이의 분쟁인 경우(민사재판)에만 사건을 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일본인 판사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재판을 모두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차별 조항은 3·1 운동 이후인 1920년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판사라고 해서 독립운동가 등 한국인 피고인에게 정의로운 판결을 내린 건 아닙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² 명단에는 의병 또는 항일운동 관련 재판에 참여한 판·검사 32명이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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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근대적인 재판 제도가 들어오고 바뀌어온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요. 2024년 현재 법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열심히 살펴보면서 이 '덕질'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연휴네요. 평안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¹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년)
² 2005년 5월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보고서를 내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