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란 무엇인가. 오늘은 법원을 덕질하며 파고든, 법원의 연극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코트레터] 법원의 날을 맞아, 풀어보는 법원 탐구


오늘은 법원의 날(9월 13일)입니다.


법원의 날은 해방 이후 사법부 독립을 기념하는 날로, 2015년 제정됐습니다.


코트워치에게 '법원'이란 무엇인가. 저희가 자주 대화 나누는 주제인데요. 오늘은 법원을 '덕질'하며 파고든, 법원의 연극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법정에 펼쳐진 하나의 생


코트워치를 꾸리기 이전에 재판의 극적인 특성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실제 재판은 아니었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1958년 작)¹를 통해서였습니다.


영화 속 법정엔 소복을 입은 여성 피고인이 수갑을 차고 나옵니다.


방청객들은 방청석 너머까지 빽빽하게 서 있습니다.


최은희 배우가 변호인으로 등장해 변론을 시작합니다. 이 변론은 제가 실제로 본 변론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호소에 가깝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서울에 온 피고인은 홀로 아기를 낳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던 겨울날, 설상가상으로 아기가 많이 아픕니다. 피고인은 우연히 만난 동창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병원비를 빌리러 갔다가 동창의 남편을 마주칩니다. 그런데 이때 마주친 동창의 남편은 바로, 피고인이 그리워하며 찾고 있던 아기 아빠였습니다. 거친 언쟁 끝에 피고인은 배신감을 참지 못하고 과도로 그를 찌릅니다.


피고인의 삶을 고백하는 변론이 끝나면 방청객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울고 있습니다.


영화는 한 사람의 고유한 생이 법정에서 어떻게 모두의 드라마가 되는지 보여줍니다.

"신문이 연일 공판 광경과 과정을 보도하는 가운데"


현실 법정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던 재판들이 있습니다.


최은희 배우의 연기 모델이었던, 이태영 변호사(1914년~1998년)가 변론을 맡은 이혼 소송이 대표적입니다.


부흥부(산업·경제 부흥 부처) 전 차관이었던 오모 씨가 1959년 64세의 나이로 아내에게 이혼을 청구합니다. 1심 재판부는 '사유가 불충분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혼생활 동안 '축첩'을 이어가는 등 충실하지 않았던 건 오히려 남편이었습니다.


1심에서 진 오 씨는 항소와 동시에 아내를 '간통죄'로도 고소합니다.


54세의 부인과 부인에게 춤을 가르치던 37세 교사. 이태영 변호사는 당시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대단했다"고 말합니다. 혼란스럽던 사회에 '춤바람', '치정' 등 자극적인 말이 모두 등장하고 있었다고요.


"공판이 열리는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는 서로 들어가려고 아우성을 치고, 법원 밖으로는 덕수궁 담을 끼고 긴 줄을 섰으며, 수십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방청객들은 법정에 뛰어들려다 유리창을 깨는가 하면, 법정 안에서는 남편을 비난하는 욕설이 난무해 일대 소란이었다."


재판부는 1959년 7월 아내에게 '간통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태영 변호사는 "무죄가 선고되자 여성 방청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고 썼습니다.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이 재판을 "출세한 '바람둥이' 남편과 억울한 누명을 쓴 아내의 법정 대결"로 규정했다고요.


이태영 변호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데요.


1952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에는 판사에 지원했습니다.


김병로 당시 대법원장이 판사 임용을 직접 건의하기도 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성이기도 하고, 야당 정치인의 아내였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909년 기유각서와 1948년 사법부 독립


김병로 전 대법원장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법원장입니다.


다시 법원의 날로 돌아가면, 이날은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넘겨받아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날인 1948년 9월 13일을 기념합니다.


경술국치(1910년) 이전에 일제는 대한제국의 사법권도 빼앗았습니다.


1909년 7월 이토 히로부미가 '사법과 감옥 제도를 일본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기유각서'를 통해 대한제국의 사법권은 일제로 완전히 넘어갑니다.


법원 등 재판 제도가 개편됐고요. 출신에 따라 판사를 차별하는 조항도 생겼습니다.


한국인 판사는 피고인이 한국인이거나(형사재판), 한국인 사이의 분쟁인 경우(민사재판)에만 사건을 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일본인 판사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재판을 모두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차별 조항은 3·1 운동 이후인 1920년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판사라고 해서 독립운동가 등 한국인 피고인에게 정의로운 판결을 내린 건 아닙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² 명단에는 의병 또는 항일운동 관련 재판에 참여한 판·검사 32명이 포함됐습니다.



* * *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근대적인 재판 제도가 들어오고 바뀌어온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요. 2024년 현재 법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열심히 살펴보면서 이 '덕질'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연휴네요. 평안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¹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년)

² 2005년 5월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보고서를 내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 코트워치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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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재판 과정에서 '경찰의 일차적인 의무는 범죄 예방과 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질서유지 등 안전관리는 일차적 의무가 아니라는 건데요. 질서유지를 경찰의 주요 업무가 아니라고 여겼던 건 김 전 청장만의 인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사 전 '압사 위험' 등을 알린 112신고는 모두 11건이었습니다. 그런데 11건 중 10건은 경찰에 의해 사건 처리 내역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 파출소에서 근무했던 일부 경찰의 근무 태만에서 비롯한 것인지 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희생자들이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희생자마다 구조 당시 상태와 시간도 다릅니다. 다만 취재 결과 확인된 사실은 있습니다. 경찰이 '교통 통제'에 실패했고 이로 인해 구조와 이송이 지연되면서 참사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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