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팀에 있을 때 팀장님이 근현대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하자고 제안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이후 역사와 담을 쌓았던지라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희한한 콘셉트도 더해졌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형식이라니? 더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누가 친구랑 근현대사 이야기를 하겠나. (웃음) 이런 생각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프로그램을 구체화했다. 콘텐츠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했다.

한 번쯤 들어보거나, 이름을 아는 사건과 순간들을 주로 다룬다. 다들 얼추 안다고는 생각하지만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건을 왜곡된 채로 기억할 수도 있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봐도 모두의 시선이 다르다. 꼬꼬무는 사실은 몰랐던 이야기를 한다. 역사적 사건을 누구나 캐주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콘텐츠다.

꼬꼬무는 주관적인 시각에서 출발한다. 실제 역사와 사건에 담겼던 사람의 눈으로 사건의 흐름을 보는 것 자체가 다른 교양 프로그램과 완전히 다른 지점이다. 객관적으로 팩트를 전달하고 사건을 정리하는 콘텐츠는 너무 많다. 한 사람의 시점이나 관점이 들어가는 순간 플랫하게 죽어있던 팩트가 생동감을 얻고 살아난다. 오히려 객관성이 강화되는 느낌도 있고 기존의 사고를 뒤집어서 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주관성이 꼬꼬무 콘텐츠의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단 웹상에 있는 정보는 모조리 다 끌어모아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치고 정보를 선별한다. 그 과정에서 증언자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참고한다. SBS의 다른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후의 분류와 가공 작업이 가장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 중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이야기의 흐름으로 엮을지를 고민한다. 대본 작업만 6주에서 8주가량 소요되고, 한 편을 온전히 온에어하기까지는 3개월 정도 걸린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모아서 흐름이 갖춰진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작가님들 역량이 정말 탁월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말 단위로 한다. 퀼트처럼 멘트를 하나하나 잘라놓고 재조합한다. 큰 전제는 각자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울 수도 있고, 누구는 울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감정선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방송의 임팩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사실 우는 걸 앞세우는 게 좋지만, 편집할 때 그 부분만 강조하지는 않는다. 임팩트에 치중한다기보다는 디테일한 각자의 감정을 묻어놓지 않고 표현하려 한다. 시청자들 역시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각자의 결론과 역사를 꺼내놓는다. 우리는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받아들인다.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테이블 위 간식처럼 올려놓고 싶다.

과거의 사건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활자의 느낌이 강해진다. 이야기와 말로 전달하면 그 과거의 순간이 살아나는 것 같아서 놀라울 때가 많다. 시즌 1 때 연출했던 김신조 사건이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청와대 무장공비 사건이라는 한 줄의 글로만 그 사건을 기억한다. 두 번 정도 직접 김신조를 인터뷰했는데 그분을 제 눈으로 본다는 경험 자체가 생경했다. 인터뷰도 거의 6시간은 한 것 같다. 한 줄로만 인지했던 사건을 직접 들으니까 내가 그 사건을 경험한 것 같았다. 과거에 끝난 사건 같아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많다. 서해훼리호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린다. 그런 연결성과 연속성을 살려보고자 했다. 근현대사는 딱딱하고 끝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르게 보면 지금을 말하는 것 같다.

콘텐츠에는 울림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무리 흥미롭고 자극적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이랄까, 진정성이 살아있지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세상에 양질의 콘텐츠는 너무 많다. 요즘 세상에 왜 사람들이 내 콘텐츠를 봐야 하나 묻는다면 나는 진심이라고 답하려 한다. 콘텐츠 안에 나의 태도, 존중, 배려가 묻어난다면 이용자는 쉽게 그 진정성을 느낀다.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시사교양 PD가 됐다. 어떻게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배웠지만, 꼬꼬무는 내가 추구했던 방향과 가장 잘 맞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재미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우리의 진심이 너무나 소중하다. 꼬꼬무를 좋아해주시는 시청자분들도 모두 그런 감정과 진심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은 일방적이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거나 상호작용하는 느낌이 적을 수밖에 없다. 신기하게 꼬꼬무는 시청자와 계속 소통하고 대화하는 느낌이다. 유기체 같은 프로그램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감정과 진심과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전태일 열사 어머님 이소선 여사의 평전 《노동자의 어머니》를 추천한다. 꼬꼬무 전태일 에피소드에서 나온 이야기도 있지만,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 전태일이라는 사람을 아들로 둔 어머니로서의 인생뿐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고 노동운동의 핵심이 된다. 많은 이야기의 집약체다. 누구나 전태일은 기억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다. 또 스토리 구성과 콘텐츠 구성에 있어서 조연출 시절 도움을 받았던 책은 《스틱》이다. 어떻게 이야기와 콘텐츠를 흥미롭게 구성할 수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착 달라붙는 찰떡같은 이야기의 비밀을 전수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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