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홉 살쯤 되던 무렵의 여름이었을까요, 엄마가 일주일간 차를 몰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었어요.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의 목적지는 강원도였기에 아마 부산에서 시작해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는 여행이었을 듯합니다. (7번 국도는 동해안을 따라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이어져 있어요.) 엄마는 여행하며 저에게 자주 전화를 했는데,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는 전화 한 통이 있어요. 바람 소리가 잔뜩 담겨있던 전화 속 목소리로 엄마는 저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무도 없는 한낮의 도로, 모든 창문을 열고 빠르게 달리고 있다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를 아마 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날의 엄마는 제가 지금까지 본 엄마의 모습 중 가장 엄마답고 행복해 보였거든요.

그 기억 때문일까요? 그 이후로 운전은 저에게 언제나 자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내 손으로 핸들을 움직이고 내 발로 페달을 밟아 언제 어디든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있는 것. 처음 면허를 따고 운전대를 잡았던 날 무척이나 설렜던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운전하는 장면이 있는 영화 혹은 드라마를 (특히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 누군가가 여성일 때 더더욱) 좋아하기도 해요.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도, <노매드랜드> 에서도, <매드맥스>에서도 넓은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은 언제나 제 가슴을 뻥 뚫리게 했거든요. 오늘 글의 제목이기도 한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대사 “Let’s keep going, Go!” 는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라요. (혹여 위의 세 영화를 아직 보시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보시길 바랄게요. 되도록 큰 화면으로요.)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운전 장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시즌2 엔딩신입니다.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만큼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제 인생에서 그만큼 인상 깊고 또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운전 장면은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처음 그 장면을 보고 저는 엉엉 울기까지 했어요.

 오늘 제가 추천해드리는 곡은 Blue Oyster Cult - (Don't Fear) The Reaper 입니다. 앞서 말한 장면의 BGM이기도 해요. 도대체 어떤 장면인지 궁금하신 분은 꼭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을 정주행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이미 드라마를 보신 분은 노래를 들으며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릴 수 있길 바라봅니다. 그럼 우리 다음 주에 만나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해 본 도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2019년 해외 봉사 단원으로 생활했던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경험이었어요. 막연히 전공인 아프리카학을 살려 국제개발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지도 어느덧 3년, 3학년 1학기 수업을 들으며 이제 졸업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했습니다. 남들 다 한다는 동아리 활동, 대외 활동 한 번 경험해 보지 못한 저는 무작정 접수 마감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대학생 해외 봉사다에 자기소개서를 써 제출해 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한국에서 파견 전 교육을 모두 마치고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 있더라고요. 급하게 자취방을 비우고 출국 준비를 하느라 몸이 지쳐서인지, 앞으로 반 년 동안 우간다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인지 비행기에 타 있는 시간 내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외국인이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에 배정된 저와 저희 팀은 현지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었어요.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던 전기와 깨끗한 물, 밤외출 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됐죠. 초기 우간다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잘 닦여 있는 도로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지하철이나 시내 버스 같은 대중 교통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아서 현지의 교통 수단을 이용해 이동해야 했어요.

 우간다에서 저는 세 가지 정도의 교통 수단을 이용했었어요. 영어로는 택시라고 부르는 (하지만 10인승 봉고인) 마따뚜, 오토바이인 보다보다, 그리고 개인 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었는데요. 오늘은 제가 가장 애정하고 애용했던 보다보다에 얽힌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보다보다 (Boda-boda)라는 이름은 큰 버스나 기차들을 이용한 국가 간 여행법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국경 (Border) 건널 때 주로 이용된 교통수단이 오토바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따뚜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내가 원하는 장소에 빠른 속도로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빠른 속도에 비례해 사고의 가능성이 커지니 되도록이면 이용을 자제하고, 꼭 이용해야 할 시 헬멧을 요구하라는 교육도 받았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보다보다 기사를 포함해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네 명까지도 탑승하는 현지 사람들을 보며 겁을 잔뜩 먹었었어요. 파견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생활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였거든요.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급하게 수도로 나갈 일이 생겨 보다보다를 꼭 타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그칠 줄을 몰랐어요. 이 날씨에 오토바이 탔다가는 무조건 목숨이 날아갈 것 같았죠.

 하지만 이렇게 겁만 지레 먹다가는 반 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해 보고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결국 저는 본부에서 나눠 준 오토바이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마을을 떠돌다 보다보다 쎄보 (ssebo, mr라는 뜻)들의 무리를 만났습니다. 빗길 운전을 꺼리는 쎄보들 사이에서 한 쎄보가 본인이 안전하게 데려다 줄 사진이 있다며 나섰고, 저는 떨리는 다리를 겨우 오토바이 위로 올리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음폴라 음폴라 (mpola mpola, 천천히) 라는 말을 출발 전 열 번은 한 것 같아요.

 출발하기 전까지는 이대로 길에서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두개골이 산산조각나버릴 것 같았는데, 부릉부릉 소리와 함께 직진을 시작한 오토바이는 균형을 곧잘 잡았습니다. 제 뒤에는 이미 보다보다를 몇 번 경험한 팀원이 타고 있고, 제 앞에는 베테랑 보다보다 쎄보가 있으니 이상한 안정감 같은 게 들지 뭐예요. 오토바이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비가 더 세차게 내려 여기서 더 가면 진짜 죽을 것 같아 중간에 멈추기는 했지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혹독한 (?) 첫 경험을 끝내고 나니, 이후에 타는 보다보다는 그냥 달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보다보다 쎄보들과 나누는 대화도 재미있고, 바람을 가르며 속도감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어요. 처음에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오토바이의 뒷부분을 꾹 잡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자유를 한껏 만끽했습니다. 보다보다가 없었다면 저의 우간다 생활은 지루하고 단조로웠을 것 같아요. 아주 더운 날 이동 중 잠깐 멈춰 보다 쎄보와 시원한 탄산음료를 함께 마시고, 기름이 다 떨어져 도로 중간에 오토바이를 함께 뒤집어 흔들었던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중을 나와 준 친구와 함께 공항 철도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향할 때, 편안하고 쾌적한 대중 교통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잘 닦인 도로와 교통 신호를 잘 지키는 운전자들의 모습도 아주 새롭게 다가왔구요.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 년이 훌쩍 넘은 지금, 버스나 지하철에 타기 전 교통카드를 찍을 때 백 원 이백 원 때문에 보다보다 아저씨들과 몇 분이고 실갱이를 했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허리에 고스란히 전해져 오던 비포장 도로의 굴곡과 잔뜩 일어난 흙먼지도요.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기 전에는 처음으로 보다보다를 탔던 날을 돌이켜 보려고요. 비록 그날에는 목적지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고 비를 워낙 많이 맞아 감기까지 걸렸지만, 중요한 건 그 경험이 제가 육 개월 동안 보다보다를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니까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계신 분들, 실패한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 저희 같이 크게 외쳐 봐요.  

*혹시 남긴 피드백이 부녀자들 뉴스레터 답변란에 기재되지 않길 원하시나요?

그럴 땐, 피드백 마지막 줄에 꼭 비밀이라고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