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재의 생각노트

2026년 10월 (3호)

안녕하세요, 구글에서 지난 9년 동안 유튜브 제품 스페셜리스트로 시작해서 Head of Performance, MD&A (Measurement, Data and Analytics)로 Google Ads 제품의 전 영역을 거쳤고, 10년 차를 맞이하며 세일즈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이균재입니다. 

부쩍 쌀쌀해진 공기에 깊어가는 가을이 실감 나는 10월입니다. 모두 건강하고 평안한 한 달 보내고 계신지요.


이 노트는 그동안 저와 명함을 나누며 소중한 인연을 맺은 분들께, 짧은 안부 인사를 대신해 한 달에 한 번씩 띄우는 편지입니다. 오랜 시간 광고 프로덕트를 다루고 또 세일즈 현장에서 마케터분들과 부딪히며 나눈 고민,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AI 환경 속에서 곱씹어 본 생각들을 이번 달에도 가볍게 나누어 보려 합니다.

브랜드의 시대가 다시 온다


AI 혁명의 기점이 된 논문의 제목은 ‘Attention Is All You Need’입니다. 논문에서는 데이터 속 중요한 맥락에 집중하는 기술적 원리를 뜻하지만, 요즘 저는 이 문장을 비즈니스의 시선으로 다시 읽게 됩니다. 소비자의 ‘주목(Attention)’이야말로 가장 희소한 자원인데, 제미나이(Gemini)를 비롯한 수많은 AI 에이전트들이 소비자 의사결정의 길목에서 이 주목과 선택을 가로채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온라인에서 쓰는 시간은 크게 ‘취향을 즐기는 시간(Entertainment)’과 ‘할 일을 해치우는 시간(Task)’, 두 갈래로 나뉠 것입니다. 다 떨어진 생수나 세제를 다시 주문하는 것처럼 ‘해치워야 할 일’은 에이전트가 우리 대신 가장 빠르고 합리적으로 처리해 줄 것입니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구경하고 취향을 발견하는 영역에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직접 움직입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Brand)’와 ‘아무거나 사도 상관없는 공산품(Commodity)’으로 극명하게 갈라질 것입니다. 자기만의 색깔이 모호한 미투(Me-too) 제품들은 에이전트의 냉정한 스펙·가격 비교 속에서 결국 대체 가능한 공산품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TV의 등장이 브랜드 빌딩의 시대를 열었듯, 역설적이게도 AI 에이전트의 시대는 다시 ‘브랜드의 시대’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에이전트에게 “알아서 적당한 걸로 골라줘”라고 맡기는 대신, 처음부터 “그 브랜드로 사줘”라고 이름을 콕 집어 부르게 만드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억에 남는 브랜드 자산을 쌓는 일, 그 중심에서 유튜브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조금 더 깊이 다루어 보겠습니다.

AI는 새로운 컨수머

그렇다면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기존 검색 최적화(SEO)를 넘어, 최근에는 AI의 답변에 우리 브랜드가 추천되게 만드는 새로운 최적화 방법론(AEO, GEO 등)이 앞다투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알고리즘을 일일이 쫓는 것은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는 일과 같습니다. 자잘한 전술(Tactic)보다 필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 즉 ‘AI 에이전트를 새로운 컨수머(소비자)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가 마케터라면 다음 네 가지를 먼저 점검해 볼 것 같습니다.


  •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의 ‘공식 정답지’: 소비자가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해 우리만의 명확한 답이 웹사이트 한곳에 잘 정리되어 있는가? AI가 엉뚱한 소문이나 환각(Hallucination)에 흔들리지 않도록, 브랜드, 제품의 강점, 근거, 고객 질문에 대한 답이 정리된 ‘정확한 원천 정보’를 갖추고 있는가?

  • AI가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친절한 구조 (데이터 스키마): 사람 눈에는 화려해 보이는 통짜 이미지 상세페이지지만, 정작 AI는 글자를 읽지 못해 그냥 지나치는 웹사이트는 아닌가? 겉으로는 사람에게 매력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뒷단의 데이터는 AI라는 소비자가 정확히 읽고 이해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는가?

  • 임계점을 돌파하는 실행: 아무리 정교한 정보와 구조를 갖추었더라도 시장에서 회자되지 않으면 AI에게도 신뢰받기 어렵다. 브랜드에 대한 시장 내 언급량과 소비자 반응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임계점’을 넘도록 마케팅 실행(Execution)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가?

  • 새로운 측정 원리에 대한 이해: 앞으로는 AI에게 우리 카테고리를 물어봤을 때 우리 브랜드가 얼마나 자주, 어떤 맥락과 호감도로 언급, 인용되는지를 측정하는 분석 툴들이 쏟아질 것이다. 이때 툴이 보여주는 숫자만 맹신하기보다, 직급을 막론하고 그 ‘작동 원리’를 과거 소비자 리서치 살피듯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Graph인가?

오픈AI 공동창업자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가 스탠퍼드 강연에서 던진 “Graph만 남기고 다 버려라(Delete Everything, Keep Graph/ Attention)”라는 화두가 인상 깊었습니다. (‘AI를 쓰는 사람과 부리는 사람의 차이’라는 영상으로도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Graph(그래프)란 우리가 흔히 차트에서 그리는 막대그래프가 아닙니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프롬프트(점)나 단일 작업(선)을 넘어, 그동안 쌓인 데이터와 맥락, 의사결정의 흐름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지식과 업무의 그물망’을 뜻합니다. 똑똑한 AI가 엉뚱한 곳으로 튀지 않고 제대로 일하게 잡아주는 시스템의 핵심은, 결국 이 그물망(Graph)을 얼마나 촘촘하고 단단하게 짜두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문득 이 이야기를 인간인 저 자신에게 비추어 보게 됩니다. 내가 쓰는 AI의 지식 그물망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 못지않게, 정작 내 안의 지식과 경험, 생각들이 연결된 ‘나라는 사람의 Graph’는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결국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과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는 영향력 역시, 내 안에 쌓인 이 연결망의 모양을 닮아갈 테니까요.

마치며


에이전트에게 대체되지 않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 AI라는 새로운 컨수머가 길을 잃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점을 설계하는 일,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Graph를 키워가는 일은 모두 서로 어느정도 맞닿아 있지 않나요?


깊어가는 가을, 일교차에 건강 유의하시고 이번 생각노트가 여러분의 비즈니스와 일상에 작은 영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2026년 10월 이균재 드림.


(본 글은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 회사의 공식 입장이나 정책을 대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