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ood brand is a good ecosystem.

RAW(날것의, 가공되지 않은)- 인공지능 시대에 브랜드가 끝내 돌아가게 될 자리


안녕하세요. 님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매끄러운(seamless한)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과 연결되고, 인공지능은 취향을 우리보다 먼저 예측하며, 문장과 이미지와 기획안까지 너무 쉽게 만들어 냅니다. 표현은 넘쳐나고, 결과물은 그럴듯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더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망설임의 정체를 저는 오래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보 과잉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다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사람은 너무 잘 만들어진 것 앞에서 오히려 멈춥니다. 완성도가 높을수록 믿기가 어렵고, 정교할수록 어딘가 비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때 브랜드는 욕망을 설계하는 기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통해 더 좋아 보이고 싶어 했고, 더 앞서가고 싶어 했습니다. 브랜드는 소속을 약속했고, 역할을 제안했으며, 허영까지 그럴듯하게 포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오랫동안 효과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제 '그럴듯함'이 너무 쉽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컨셉도 만들 수 있고, 스토리도 만들 수 있고, 감동적인 문장도 만들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그토록 공들여 쌓아온 언어와 이미지와 서사가, 오늘은 프롬프트 몇 줄로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브랜드가 더 빠르게 더 많이 쏟아내는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더 자주 말하고, 더 세련되게 꾸미고, 더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반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남는 것은 더 매끄러워지는 쪽이 아닐 것입니다.

기술이 평균을 무한히 복제할수록, 사람은 평균에서 벗어난 것을 더 강하게 감지합니다. 논리로 설득되기 전에 감각으로 납득합니다.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질감, 너무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믿게 되는 디테일, 실패와 수정의 흔적, 누군가 실제로 시간을 들였다는 감각—이런 것들이 "이건 진짜다"라는 판단을 생각보다 먼저 만들어 냅니다.


인공지능은 표현을 복제할 수 있지만, 살아낸 시간의 밀도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밀도가 쌓인 자리를 저는 RAW라고 부릅니다.

가공되지 않은 본질, 숨기지 않은 태도, 설명보다 먼저 전해지는 감각. 무엇보다 인간이 실제로 살아낸 흔적. 그것은 스타일이 아닙니다. 진정성의 새로운 표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직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왜 브랜드들은 RAW로 가지 못할까요.

두렵기 때문입니다. 덜 완벽해 보이는 것이 두렵고, 실패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고, 경쟁자보다 뒤처져 보이는 것이 두렵습니다. 수십 년간 브랜드는 약점을 숨기고 강점을 부각하도록 훈련받아 왔습니다. 그 관성이 깊습니다. 매끈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 빈틈없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것들이 브랜드를 RAW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반대편에 역설이 있습니다.


빈틈을 감추는 브랜드보다 빈틈을 인정하는 브랜드를 사람들은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척하는 브랜드보다 어디까지 책임지는지를 보여주는 브랜드가 더 오래 남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가가 중요해졌습니다. 무엇을 숨기지 않았는가가 메시지보다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RAW를 선택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RAW는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브랜드든, 어떤 사람이든, 그 안에는 살아낸 시간이 있습니다. 실패한 기억이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결이 있습니다. 그것을 숨기거나 지우거나 덮어온 것이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RAW는 그 결을 다시 꺼내는 일입니다. 감추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의 밀도를 믿기 시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 브랜드 레터는 제안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구독자님의 브랜드 안에 이미 있는 것—다듬어지지 않은 것, 설명하기 불편한 것, 그러나 가장 당신다운 것—을 꺼내도 된다는 초대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강한 브랜드는 가장 화려한 브랜드가 아닐 것입니다. 가장 자기다운 기준을 지닌 브랜드, 가장 진실한 흔적을 축적한 브랜드, 가장 본질에 가까운 태도를 끝까지 지키는 브랜드가 오래 남게 될 것입니다. AI가 복제하는 것은 표현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끝내 찾는 것은 경험의 진실입니다. AI가 만드는 것은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신뢰하는 것은 책임의 일관성입니다.

디지털의 파도가 거세질수록 사람은 닻을 내릴 실체를 찾습니다. 그 실체는 가공되지 않은 진실입니다.

결국 브랜드는 RAW로 갑니다. 그리고 그 RAW는 유행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끝내 돌아가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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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을 RAW의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 브랜드가 화려함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무인양품은 브랜드를 앞세워 소비자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움, 절제, 여백을 통해 사용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채우게 합니다. 이것이 RAW의 핵심입니다. RAW는 거칠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해 가공의 방향을 바꾸는 태도입니다.

무인양품은 더 많이 꾸미지 않고 더 선명하게 남기는 브랜드입니다. 로고의 과시보다 생활의 질감을, 차별화의 소음보다 삶의 결을 중시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모든 것이 더 매끄럽고 더 자극적으로 설계될수록, 사람은 오히려 덜 주장하고 더 본질적인 것에 끌립니다. 무인양품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줍니다. 브랜드가 앞에 서지 않고 삶이 앞에 서게 하는 것, 그것이 무인양품을 RAW의 관점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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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AW가 트렌드라는 생각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시장에는 뚜렷한 목적 없이 만들어지는 브랜드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제품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아이디어만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익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에서 출발한 제품과는 결이 다릅니다. 분명한 점은 많은 소비자가 이러한 RAW한 가치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RAW는 충분히 트렌드가 될 만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왜 RAW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A. 기술이 발달하면서 제품은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는데도, 정작 가격은 체감상 그만큼 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비자는 계속 변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선택하려는 욕구도 커지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은 곧 자신이 바라는 자화상의 일부가 됩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 자화상과 닮은 제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며, 이로 인해 시장은 더욱 세분화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RAW는 제품이 점점 더 인공적이고 정교해지는 과정에 대한 거부 반응일 수 있습니다. 다소 개인적인 경험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휴대폰이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단계로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기능이 너무 많아졌는데, 정작 그 기능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과연 그렇게 많은 기능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런 피로감이 RAW에 대한 욕구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릅니다.


Q. RAW를 활용한 마케팅은 어떤 이점이 있습니까?

A. 최근 브랜딩의 경향은 범위를 좁히고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향입니다. 물론 넓은 타깃을 보유한 빅 브랜드는 늘 존재하며 여전히 중요합니다. 빅 브랜드는 타깃 범위가 넓기 때문에 시장 점유율의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브랜드 본질에 집중하면 더 작은 타깃 그룹에 훨씬 쉽게 도달할 수 있고, 소비자는 더 큰 충성도를 보입니다. 이것이 지금 브랜드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PEPSI-RAW’ 역시 그 흐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목적은 단순히 성장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잡지 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집니다. 잡지(또는 잡지 브랜드)는 모두에게 말을 걸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Q. 그렇다면 RAW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A. ‘Authentic(진정성 있는)’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Real(있는 그대로의)’과도 비슷한 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늘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벤 앤 제리(Ben & Jerry)가 좋은 예입니다. 그들은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세웠고, 시장의 즉각적인 선호가 무엇이든 자신들이 지키고 싶은 기준을 우선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소비자의 욕구를 미리 조사하지 않았음에도 소비자들은 그들의 진정성에 열광했기 때문입니다.


Q. 어떤 브랜드가 RAW한 브랜드라고 생각하십니까?

A.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을 꼽고 싶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결정은 내가 합니다. 그게 나이기 때문입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갑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피웁니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라면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은 정교한 기술을 추구하기보다, 혼다나 야마하와는 다른 오래된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선이 과거를 향해 있고, 세련되게 다듬어 포장하지 않은 상태가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지점이 할리데이비슨의 RAW함이라고 생각합니다.


Q.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이야기 시장’을 강조하시는데, RAW도 이야기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까요?

A. 물론입니다. 이미 곳곳에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어떤 제품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면,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이야기가 됩니다. RAW를 어떻게 정의하든, 그 안에는 스토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레스토랑에서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곤 합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제작 공정을 견학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이 RAW한 이야기의 전형적인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Q. 제품뿐 아니라 도시도 스토리가 중요한 브랜딩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RAW한 스토리를 가진 도시는 어디라고 보십니까?

A. 스웨덴의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부 스웨덴의 주거 단지인 ‘야크리보르(Jakriborg)’입니다. 이곳의 집들은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저는 이곳이 미래 도시의 한 모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는 현대 건축의 특징인 콘크리트와 유리 중심의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주민들은 예전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독특한 스토리 덕분에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부분의 도시는 계속 현대화되고, 건물은 더 높아지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기 위해 경쟁합니다. 그런데 야크리보르는 그 흐름에 역행합니다. 오히려 그 역행이 사람들에게 RAW함으로 다가갔고,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도시 브랜딩이 된 셈입니다.


Q. 브랜드뿐 아니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RAW한 면이 있다고 보십니까?

A. 현대인은 복잡하고 경쟁적인 구조 속에서 살아갑니다. 휴대폰과 인터넷 같은 인공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삶에서는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나 사용하는 개념의 의미를 비교적 분명히 이해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 이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내부에서 어떤 기계적 작용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TV 화면이 어떻게 평면으로 구현되는지, 픽셀의 원리를 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러한 ‘실제와의 거리감’, 곧 내가 사용하는 단어와 그 단어가 가리키는 실제 사이의 거리감은 복잡함과 막막함을 줍니다. ‘레트로’ 열풍 역시 대상의 의미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과거의 삶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소비자에게 RAW한 브랜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RAW는 디자이너에 의해 과도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공정의 흔적이 남아 있어 제품의 본질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은 기기 본연의 모습으로 보여야지, 과도한 가공을 통해 패션 아이템처럼 보여서는 안 됩니다. 할리데이비슨 역시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많았겠지만 투박한 본질을 수용했고, 소비자는 바로 그 점을 RAW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RAW 브랜드의 핵심은 제품 본연의 가치에 충실한 것입니다.

RAW한 브랜드의 핵심은 제품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엔텔러키 브랜드 - 대안]에서 발췌 및 편집

타스의 브랜드 편지는 시즌 1 [유니타스브랜드], 시즌 2 [엔텔러키 브랜드], [아내가 창업을 한다], [브랜드의 탄생],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운다]를 비롯해 지금까지 발행한 브랜드 관련 서적과 자료,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브랜드를 쉽게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독자님의 브랜드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나 더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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