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호 vol. 8
‘건강 한달’은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일리치약국의 뉴스레터입니다. 공간은 작지만, 이야기는 넘치는 일리치약국의 ‘우당탕탕’ 성장스토리를 전해드립니다. ‘건강 한달’을 당신의 상비약으로 체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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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치가 맺어준 친구들 |  항암'산'을 넘다 | 친구의 취향 |
일리치약국의 밑줄  |  약국보감  |  월간 드로잉
일리치가 맺어준 친구들
 
  어느 날 한 여성이 약국에 들어왔다. 이 동네에 이사 와서 이반 일리치 책 모임이 있나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일리치약국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왜 일리치에 관심이 있었을까? 나중에 물어보니 20대부터 읽어온 <녹색평론>에서 여러 번 접했고, 농사 공부를 할 때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리치 사상을 통해 환경이나 마을이란 주제로 뭔가 이어질 것 같아서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 당장은 일리치에 관한 세미나가 없었던 터라 양생 세미나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그녀는 우리와 한 학기 동안 ‘마음’에 관한 공부를 했다. 함께 공부하면서 보니 그녀는 우리에게 낯설면서도 좋은 자극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닉네임은 아낫이다. 아낫은 환경과 농사에 큰 관심이 있다.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한다. 종이를 아끼기 위해 가능하면 e북을 보려고 노력하고 발제문도 인쇄하지 않고 태블릿으로 본다. 아낫은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제대로 친환경 농사를 배웠다. 올봄 친구들이 약국 앞 데크에 각종 채소 모종을 심을 때 그녀는 오이 모종 두 그루를 가져와 심었다. 나중에 끈을 척척 몇 번 치니 오이는 알아서 끈을 감고 올라갔다. 어디선가 뜯어온 쑥잎으로 오이 옆 흙을 덮어서 수분의 증발을 막았다. 농사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가 보기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난 내심 오이가 열리길 기대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열악한 데크 화분에서 오이는 열심히 자랐고 주렁주렁은 아니지만 한 개씩 열매를 내주었다. 갓 따서 먹는 오이의 맛은 아주 좋았다. 

  지금 아낫은 양생프로젝트에서 에코프로젝트로 넘어가 ‘퍼머컬쳐(Permaculture)’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다. 저번 시즌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에세이를 들었다. 자신의 신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또 고맙다고 떡을 두 말이나 해서 공동체에 선물했다. 떡을 먹고 있자니 올 초 아낫과 불면증 때문에 상담했던 일이 떠올랐다. 빡빡한 직장 스케줄로 밤늦게 먹게 되는 식사도 문제였지만 낯선 동네에서 1인 가구가 갖는 고립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1인 가구였던 내가 느꼈던 고립감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양생프로젝트 이후 끊긴 공부를 다른 세미나에서라도 이어가길 권했고 그녀는 에코프로젝트에 접속했다. 이제 아낫은 세미나가 없는 요일에도 종종 약국이 있는 파지사유에 온다. 어느덧 우리는 편안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일리치가 맺어준 친구는 그녀만이 아니다. 하루는 약국에 택배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호박, 보리쌀, 고추, 감자와 함께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희경 선생님(문탁샘)의 『일리치 강의』를 읽고 일리치약국과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남 강진에서 ‘일리치 농장’을 가꾸고 있는 초로의 새내기 농부”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세상에! 일리치 농장이라니! 약국 앞에 일리치를 붙여 이름을 지은 우리지만 일리치 농장이라는 이름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보내 준 농작물은 문탁 식구들의 점심 재료가 되었다. 보답으로 우리가 만든 쌍화탕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그만 택배 박스를 버리는 바람에 못 보냈다. 언제고 다시 연결되길 바란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다. 일리치가 살아있다면 일리치약국을 좋아했을까? 일리치 사상을 약국에 잘 녹여내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가끔 이 질문에 답할 자신이 없어진다. 약국이 밥벌이 현장으로 메몰되고 있는 것 같아서. 또 내 입에서 똑같은 소리만 나오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일리치약국이라 일리치의 사상을 의료에 집중해서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의료에 국한되지 않게 ‘일리치’라는 이름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이름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낯선 접속들이 교차하는 약국에서 우리는 어떤 다른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 접속들이 우리를 다르게 만들 거라는 기대를 한다. 그리하여 여러 담론이 촉발되는 약국이 된다면 ‘일리치’란 이름에 누는 되지 않겠지 싶다. 

항암‘산’을 넘다

 

  3기에 걸맞게 나의 암 사이즈는 7.5센티였다.(보통 1,2기는 1,2센티) 게다가 암세포는 왼쪽 림프절까지 많이 침범하였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쇄골조직검사를 하러 갔는데 연세 지긋하신 의사 샘이 초음파를 여러 번 보시더니 조직검사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처음 칭찬을 받았다. 만약 암세포가 쇄골이나 다른 장기까지 옮겨갔으면 4기인데 그것은 끝없는 항암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난 84차까지 항암을 하는 환자를 봤는데 그건 5년 가까이 항암제를 맞았다는 뜻이다. 저절로 감사의 인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검사하는 내내 병원에 있는 의사들에게 내 가슴을 보여줬다. 처음엔 여의사를 찾아 헤매더니 이제 부끄럽다는 생각은 간데없이 아무에게나 즉각즉각 보여줬다. 하루 종일 내가 보시를 하고 다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그게 과연 보시였는지 의심해보라고 했다.

 

  유방암은 크게 4종류로 나뉜다. 조직검사에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양성과 HER2 양성이 나왔다. 여성호르몬과 HER2유전자로 인해 내 암이 자란다는 뜻이다. 요즘엔 유방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기에 각 원인에 따른 치료법과 새로운 항암제가 많이 나와 있다. 내가 받아야 하는 표준치료는 3주 간격으로 선항암 6차, 수술, 방사선 19차, 후항암 12차로 총 14개월 동안 진행된다. 게다가 5년 동안 호르몬 억제약도 먹어야 한다. 긴 치료이기에 가깝고 좋은 병원의 선택이 제일 중요하다. 서울 메이저 병원으로 가야 하나 본인이 사는 곳에 있는 병원을 가야하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표준치료는 모든 병원이 다 똑같다! 난 가까이 좋은 병원이 있어서 큰 고민이 없었다. 내 생각엔 초기인 경우는 가까운 병원, 3,4기인 경우는 큰 병원이 좋겠다. 큰 병원은 새로운 항암제에 대한 임상실험이 많고, 부작용에 대한 응급처치가 즉각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암세포가 크면 독한 항암제로 일단 사이즈를 줄이고 수술을 한다. 모든 과정 중에서 항암이 제일 힘들다. 그래서 ‘항암산을 오른다’고 말한다. 집안어른들의 항암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는 나는 그 과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리고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어야 항암제로 손상당한 세포들이 다시 잘 자랄 수 있다. 첫 항암은 4병의 약을 8시간 맞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슬픈 일은 몸무게에 따라 항암제 양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비용이 청구된다는 것이다. (난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더 비쌌게 맞았다 ㅠㅠ) 3주에 한 번씩 항암제를 맞으면 1주일은 거의 죽음이고, 2주째 조금 나아졌다가, 3주째는 몸이 회복된다. 1,2주 때는 정말 먹기가 힘들다. 마치 입덧을 할 때처럼 모든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그나마 친구들이 보내준 물김치와 죽들이 깔깔한 목에 간신히 넘어갔다. 그리고 남편이 매일 만들어 준 쉐이크! 쉐이크는 비싸서 평소에 잘 못 사먹던 고급음료였다. 난 고구마 쉐이크, 딸기 쉐이크, 단호박 쉐이크를 먹으며 버텼다. 쉐이크의 달인이 된 남편은 어느 날 삶은 달걀 쉐이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날 이후 난 쉐이크를 딱 끊었다!

 

  항암제를 맞은 후엔 엄청 많은 종류의 약 꾸러미를 받는다. 부작용 방지약이다. 증상이 오기 전부터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나는 책에 나오는 부작용을 빠짐없이 경험하였다. 구토, 변비, 설사, 구내염, 멈추지 않는 코피, 관절통, 어지러움, 불면증,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 손발 저림! 독한 항암약으로 인해 말초신경들이 손상을 많이 받아 밤새 시리고 저려서 잠을 못 잔다. 여름에도 수면양말을 신었다 벗었다 할 정도이다. 첫 항암부터 며칠 후에 어떤 부작용이 오는지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래야 그 다음 차수 항암에서 주기적으로 오는 통증을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불면증과 우울증! 특히 가족들이 다 잠든 밤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통증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울음이 저절로 나온다. 난 원래 우울증과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조증에 가까운) 그런 나도 투병 중에는 우울해졌다. 끝없는 항암통증은 그냥 모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몸이 나아지는 3주차에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탈모! 첫 번째 항암제 투약 후 2주일 안에 머리가 뭉텅뭉텅 빠졌다. 그래서 환우들은 빠지기 시작할 때 머리를 밀곤 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 ‘골룸’처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남는 것은 누구나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자녀들 ㅠㅠ) 머리는 단번에 빠지지 않기에 조심해야 한다. 머리를 다 민 후에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샤프심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데 따끔따끔 침대와 옷 속에서 찔러댄다. 인모가발은 몇 백만 원이 넘는데 가격에 비해 만족도는 높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부분 가발을 여러 개 사서 쓰는 환우들도 많다. 난 머리를 밀지 않았다! 집에서는 비니도 쓰지 않고, 가발도 사지 않고 그냥 ‘골룸’처럼 살았다. 외출 시에는 모자를 쓰고 군데군데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모자 밖으로 빼어내어 마치 환자가 아닌 듯 꾸미고 다녔다. (그러나 그 시절 사진을 보니 탈모인지 누구나 알았을 듯) 평생 샀던 모자보다 더 많은 모자 선물을 받았다. 간혹 모자를 쓰는 걸 잊고 차에서 내려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던 적도 많았다.

 

  남편은 항암산을 잘 넘고 내려온 나에게 말했다. ‘살집이 있었기에 암에 걸렸고 살집이 있었기에 항암을 잘 이겨냈다’라고. 근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이제 가장 재미있었던 ‘수술이야기!’ 다음 달에 쓸 계획이다.

Sampa the great - Never forget

  난 최근 힙합에 좀 물려버렸다. 김왈리의 'Better run'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요즘 힙합곡들은 예전 힙합곡들에 비하면 정말 재미없다. 왜 그럴까? 사운드가 변화하면서 생긴 취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서사의 무게다. 차별과 억압의 강도가 셌던 80-90년대의 흑인음악들은 그 서사의 무게가 확실히 다르다. 위험하고 절망적인 빈민가의 삶을 그대로 녹여내거나, 그 영향으로 사회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곡들이었다. 그런 서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과 자랑도 의미있는 것이었다. 불가능해보였던 '랩스타'의 꿈을 실현해냈으니까. 반면 요즘 힙합은 어떤가? 기껏해야 가난을 극복했다는 정도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서사를 디테일하게, 재밌게 풀지 못하면 적당히 가난했던 척하는 양산형 랩스타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설사 정말 가난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잘 풀지 못한다면 그냥 실력이 없는 거지.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 소개할 아티스트는 요즘에는 몇 없는 보석같은 존재다. Sampa the great, 그는 잠비아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미국과 호주에서 유학한 여성래퍼다. 그는 그의 출신과 태생에 대한 자부심을 음악 곳곳에서 드러내는데, 한국에선 작년 '스우파'에서 우승을 차지한 홀리뱅이 Sampa의 'Energy'를 사용하며 유명해졌다. 'Energy'는 그가 여성으로서 가지는 힘과 세상에 맞서는 태도를 당당하고 위엄있게 담아낸 곡이다. 'Energy'가 수록된 앨범 [The return]에서 아프리칸 여성의 서사를 멋지게 풀어내었는데, 얼마전 그가 새 앨범 [As above, so below]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아프로비트와 레게, 소울, 재즈를 넘나들며 아프리카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선율 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랩을 선보인다. 이전 앨범의 히트로 유명세와 자본을 얻은 만큼, 전보다 화려한 피쳐링진들을 구성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프리칸 아티스트들을 기용한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Never forget'은 자신의 태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렇게 멋진 움직임을 만든 게 '우리'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 곡에서 '우리'는 아프리칸이자, 여성이자, Sampa이다. 아프리칸 아티스트로 참여한 Mwanje는 그들의 언어로 울부짖는다.

"Iyo nkanda yako ni nyali
Ndiwe mfumu lelo osaibala"
"그대의 살결이 이 땅을 빛내고 있다. 
오늘의 왕은 그대이니, 절대 잊지 말라."

  내가 생각하는 '힙합의 멋'은 이런 것이다. 자신의 소수자성을 무기로서 사용하며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이성을 사운드로 만들어내는 것. 그 사운드를 통해 전해지는 자신감과 자부심은 덤이다. 여러분도 Sampa의 음악을 들으며 힘과 자신감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By 래퍼 코코펠리(우현)
 <노라의 몸의 일기>를 통해 노라가 겪은 유방암에 대한 글이 연재중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단짠글쓰기클래스에서 읽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아니 에르노가 유방암을 치료하는 동안 쓴 『사진의 용도』가 눈에 들어왔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하고 수술을 하는 과정 동안, 아니 에르노는 새로운 연인과 사랑을 시작하고 그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암은 그의 인생에서 모든 것이 중단되는 단절의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주제가 시작되는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친구 노라도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이번 밑줄은 노라에 대한 팬심으로 골라봤다.

By 겸목 
알레르기약

  요즘 환절기라 알레르기성 비염과 알레르기성 결막염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재채기, 콧물, 코막힘, 눈의 충혈과 가려움증 그리고 눈물이 주 증상이다. 이런 증상이 일상에 큰 불편함을 준다면 알레르기 약을 먹는 것이 좋다. 현재 약국에서 구입하는 알레르기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1세대 약은 액티피드라는 제품이 유명한데 졸린 것이 흠이다. 2세대 약은 세티리진, 펙소페나딘, 로라타딘이라는 세 가지 성분의 다양한 제품이 있다. 2세대 약은 1세대 약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졸음, 변비, 입 마름이 덜하다. 따라서 운전하거나 기계를 조작하는 등 사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약국에서 2세대 약 또는 졸리지 않은 약을 달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부작용의 정도에 차이가 있으므로 직접 복용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뉴스레터 7회에 소개한 한방제제인 ‘소청룡탕’을 환절기에 한해 예방요법으로 꾸준히 복용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참고로 피부 알레르기나 두드러기 치료에도 같은 알레르기약이 쓰인다.

산호산, 76 x 56 cm, 
종이에 색연필과 연필, 2022

 
  열대 우림 지역이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면 산호초 지역은 ‘바다의 허파’라고 할 수 있다. 산호는 열대 우림과 함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다의 정글 산호초', 지성사, 2008)  

  산호산은 현재 작업 중인 산호초 시리즈의 하나로 오- 랜 시간 바다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산호초, 그 상상의 뿌리가 지층 깊이 뻗어나가는 형상을 시각화합니다. 

 By 서양희
일리치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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