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종이 에세이를 읽고서
밑줄일기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

#025.깃털책 읽는 기쁨
    3월이 되고부터 슬프게도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집 앞에 바로 도서관이 있는데 그 도서관이 보수공사로 문을 닫았어요. 책을 빌리려면 저 멀리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해서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집 근처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는 곳을 발견했어요.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에세이가 있더라고요. 두 권을 빌려 집에 돌아왔어요. 아주아주 오랜만에 책을 빌려 가볍게 읽었는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말에 커피 한 잔 타서 책상에 앉은 뒤, 한 장 한장 책을 넘기는 기분. 오랜만에 책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작가님은 맺음말에 이렇게 써두셨습니다. "내 글이 나를 살리고 누군가의 삶에 위로와 응원이 된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데 작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라고 맺음말을 쓰셨더라고요. 작가님께 말씀드리고 싶어졌어요. 작가님 덕에 어제 하루가 참 행복했다고요.

   저는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작고 가볍게 들출 수 있지만, 그 너머에서 전해지는 잔잔한 이야기들이 좋아요. 특히 아무튼 시리즈나, 띵 시리즈처럼 작고 가벼운 판본으로 나온 책을 좋아합니다. 물리적으로 무겁고, 큰 결심을 하고 읽어야 하는 책을 벽돌책이라 하죠. 반대로 잘 읽히는 에세이는 깃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큰 결심 없이도 읽을 수 있지만, 어느덧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 어쩌면 제가 사내 스터디로 벽돌책을 아주 느리게 깨고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완독했다는 기쁨도 느끼나 봅니다.

   에세이는 누구나 쓰는 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에세이가 누구나 쓰는 글이기에 좋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낯설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글이 진솔하면서, 쉽게 읽히게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요.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지, 어떻게 묘사해야 내 감정이 잘 전달될지, 군더더기는 어떻게 빼야 할지. 어떻게 쉽게 읽힐 수 있는지. 아마 작가님들은 그렇게 잘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겁니다.

   예전 글에서 이야기했나요? 대화에서 에너지를 얻었다고. 좋은 에세이를 읽고 나면 깊은 대화를 나눈 느낌입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 주제라도, 에세이에서 읽고 나면 다르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그런 에세이를 읽어서,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쓰는 에세이도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4월 16일,
제 글도 그렇길 바라며,
소얀 드림

PS. 제가 읽은 책은 봉현 작가의 봉현-단정한 반복이 날 살릴거야, 라는 책입니다. 도서관에서 읽고 전체 구절을 밑줄칠 수밖에 없다 싶어서 중간에 냅다 책을 질렀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봉현읽기 뉴스레터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다른 편지로 만들어볼게요.
이번주 밑줄
첫 번째 문장

개나 소나 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평등하다는 것, 그것이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 평생 개나 소로 불리더라도 부지런히 에세이를 쓰고 더 많이 읽을 것이다. 개나 소나 만세다. 에세이 만세다.

-출처: 김신회, 심심과 열심

두 번째 문장

그런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글로 인해 사람이 궁금해지고, 사람이 궁금하기에 그 사람의 글을 계속 읽게 되는 것이다.

-출처: 봉현,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면

세 번째 문장

우리는 에세이의 문장을 읽지 않는다. 에세이 너머의 사람을 읽는다. (...) 사람이기에 사람의 팬이 된다. (...) 언젠가 누군가 알아봐 준다면,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게 느껴져서 좋아요! 팬이에요!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출처: 여름의 솜사탕, 혹시 사람이세요? 팬입니다

독자님이 보낸 편지
새벽 네시에 불현듯 깨어, 아무도 재촉한 적 없는 문서의 완성을 걱정하다가 잠을 설친 저에게... 오늘 레터는 가만한 위로가 되네요. 뭐가 되지 않아도 되는데, 채우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밭고 거친지요. 이게 다아 과정이고, 징검다리일 뿐인데요. 알고도 알지 못하는 매일을 예감하면서도... 고맙습니다.
-> 아마 그만큼 잘 해내고 싶기에 독자님이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침에 출근한 내가 잘 해내리라 생각하고 푹 주무셨길 바라봅니다. 그런데, 저도 생각을 매듭짓지 못 한 기획서와 문서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지네요. 내일은 한 시간만 일찍 자리에 앉아야겠어요.

뉴스레터를 받아 본 지는 몇 주 되지 않았으나 보내주시는 글들이 참 좋아요. 글재주가 없어 거창하게 표현해드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네요.  (...) 그래서 더욱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을 떠오르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소얀님의 문장들이 누군가의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꽤나 멋진 일인 것 같아요.
-> 사실 지난 뉴스레터는 "4600개의 유리병을 바다에 띄우며"라는 글이었는데, 피드백 없다고 징징거리는 기분이 들어 블로그에 포스팅으로 따로 올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까지 잊지 않고 읽어주시고, 피드백을 주셔서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사람이 참 간사해서 이렇게 피드백을 받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오늘 띄우는 제 문장도 누군가의 머릿속에 동동 떠다닐 수 있을까요? 따뜻한 느낌이길 바라봅니다.
못다 한 이야기
-이번주 마감 노래는 박지윤-4월 16일입니다. 편지를 보내는 오늘은 세월호 참사 9주년입니다. 실제로 4월 16일 노래는 왠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오늘의 밑줄일기는 어땠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소감도 좋고, 받고싶은 편지 주제가 있다면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