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신촌에서 생활고를 이유로 두 명의 여성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른바 '신촌 모녀'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빈곤한 여성 가구가 사망한 최초의 사건은 아닙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부터 장성군 모녀, 성북구 네 모녀, 창원 모녀, 수원 세 모녀 등 '모녀' 앞의 지역명만 바뀌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죠. 이에 대해 정부는 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수집 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위기가구의 조사를 담당해야 할 공무원의 충원 대책은 제외된 상태입니다. 이에 많은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형식적 대책만을 내놓았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죠.

   빈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청년여성들 사이에서도 큰 화두입니다. 이이지마 유코의 『여성파산』을 함께 읽은 들불의 한 모임에서 여성들은 비정규직 증가, 고용시장 악화, 물가 상승, 저임금, 복지 사각지대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분명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정신 차려보니 낭떠러지 끝에 내몰려있다'며 암울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가난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지기 때문에 당장의 작은 소비에 연연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에 대한 부정이 우울증으로 이어져 악순환을 만들어냈다는 한 참여자의 고백에 모두가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의 두려움은 지금도 가난한 자신의 처지가 지속될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앞선 세대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의 빈곤율은 65.1%로 같은 세대 남성 빈곤율(30.7%)의 두 배 이상입니다. 또, 2021년 기준 만 65세 이상 인구 대비 국민연금 수급자 비율은 남성이 83.4%, 여성이 35.2%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요. 이는 상당수 여성이 경력 단절 등을 이유로 국민연금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으로, 여성은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에서마저도 제외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수치가 보여주듯, 이제 빈곤은 '여성화' 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빈곤의 양상은 지금 당장 저임금 노동을 이어가며 생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실존적 고통으로, '일할 수 있는 몸'을 가진 현재에는 변변치 않더라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지만 '일할 수 없는 몸'이 된다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하나 걱정인 여성들에게는 예견적 고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많은 여성들에게 빈곤은 생애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일자리를 잃은 여성의 수가 증가하면서 빈곤 문제는 우리에게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로 재조명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빈곤 문제 해결의 시급성에도 '가난'은 누군가에겐 포착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문제로 여겨지곤 합니다. 슬럼화된 도시는 어느덧 자본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고, 손 안의 세계 속 화려한 소비 생활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묘사되니까요. 그래서 통계와 수치로 증명되는 존재들은 어떤 이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가난은 길에서 마주치는 '폐지 줍는 노인'의 모습으로 겨우 실감될 뿐입니다. 그러한 가난의 모습 역시도 그들에겐 결코 도래하지 않을 미래처럼 느껴질 뿐이고요. 

   오늘은 시급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 온 저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해보고자 해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있음을 깨닫고 사회구조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감각하는 한편 우리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다시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느 수급자들보다 더 빈곤한 삶을 사느라 우울증이 심해 늘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읊어대는 노파의 소갈머리. 콱 죽어버리기는커녕 살겠다고 공짜 점심을 먹으러 뙤약볕 아래서 땀과 진을 짜내고 뒤틀며 다라마역 근처 노인복지관을 다녀오는 노파의 생활. 부양의무제니 전세보증금 몇천만원 이하 등을 따지며 현금 없는 노인을 극구 기초수급에서 밀어내는 복지 제도. 세상의 갖은 족쇄도 부족해 이젠 내던져도 될 자신이 만든 족쇄까지 끝끝내 부둥키고 웅크린 채, 죽고 싶다는 소리로 삶을 버텨내며, 그래봤자 죽음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할망구." - 『황 노인 실종사건』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약 30명의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생활관리사 '김미경'은 어느 날, '끈내두한댈거업서요인저미안해오'라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진 '황문자'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미경은 '황문자'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황 노인과 관계가 있거나 자신의 관리 대상이었던 노인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여러 노인들의 고난을 서술하고 가난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합니다. 또, 예순 둘의 나이에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 빈곤한 현장에 설렘을 느끼면서 가난한 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 역시 조사합니다. 그러니까 미경에게 황 노인을 추적하는 일은 그의 행적을 되짚어가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과 노인들을 포섭하고 있는 시대적, 사회적 풍경에 대한 조사이자 개인의 생애를 갈무리하는 작업이기도 한 셈입니다.

   "가난한 노인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미경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께름칙한 판단과 느낌을 눌러 의심하며 두고두고 되씹는 것이다.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무작정 튕겨 올라오는 불쾌함과 기피의 순간이 있다. 대부분은 입장과 처지의 차이에서 오는 이물감이다. 일단 감정을 숨겨 기피부터 한 후 되짚어 역지사지를 가늠하면서, 자기 안의 불쾌감을 두고두고 뒤적이며 노려본다. 좀 나아졌나 싶으면 비슷하거나 새삼스러운 혐오가 파드득 걸려 올라온다. 살아 있는 한 계속될 거다. 빈곤한 현장에 미경이 붙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제 꼬락서니를 자기 자신에게 들키는 맛 때문이다." - 『황 노인 실종사건』

   사실 제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여성 노인의 빈곤, 고립, 죽음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실종'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장르적 문법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죠. 제목에 '실종'이 들어간다는 것은 추리소설의 문법대로 그것을 추적하고 탐문하는 이가 존재한다는 뜻이고, 저는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제가 품고 있던 기대감은 상당 부분 충족되었습니다. 장르적 문법에 꽤 충실한 책이었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의 서술은 장르적 특징만으로 설명하기엔 아쉽습니다. 바로 이 책에서 느껴지는 핍진성 때문입니다.

   핍진성은 '문학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는, 즉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로, 현실감, 박진감 등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강한 핍진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선 이 책의 저자가 오랜 세월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생활관리사로 근무해 온 최현숙이기 때문입니다. 황문자를 추적하는 미경의 서술 사이사이 삽입된 생애사 인터뷰 원고 내용은 꼭 저자 본인이 실제 노인을 대상으로 한 구술생애사 작업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 본인이 생활관리사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미경의 일을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묘사해낸다는 점에서 '있음직한 이야기'를 넘어 '지금도 저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죠. 이러한 측면에서 출판사가 도서 소개에서 언급했듯 독자는 이 책이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저자는 여지 없이 장르적 서술을 이어가며 이것이 '문학'임을, 다만 그것의 총체가 강렬한 핍진성에 기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한편, 책에서 서술되는 가난, 죽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노인과 미경의 생각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예컨대 "고립사와 자살에 대한 언론과 사회의 관심은 자살의 방식과 송장의 모습에 머물며 비참과 불쌍 타령이나 하곤 곧 잊어버린다."는 미경의 말이나 "없는 노인들을 아주 대놓고 죄인 취급을 하드만. 그러니 천날만날 방에 혼자 들어앉아 그런 거 보는 노인들이 자살들을 해쌓는 거야. 그러면 또 노인 자살이 문제래면서 개지랄들을 하고."는 황 노인의 말에서 우리가 노인의 죽음을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또, "경로당을 나오거나 동네를 다니던 노인의 몸이 어느 날 갑자기 안 좋아지면, 자식들에게 연락이 가고 입원'시킨'다. (...) 동네 친구들로서는 어느 날 노인 하나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가 이후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무소식이면 죽었으려니 하는 거다."는 미경의 서술에서 '죽음 이후의 결정권을 자식들에게만 주는 것으로 인해 노인의 말년이 삭제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죠. 

   이처럼 『황 노인 실종사건』은 실종된 노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들과 그에 대한 미경의 서술을 통해 독자에게 해당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고, 더 나아가 독자가 해당 문제에 느끼는 거리감을 상기시키며 '왜 어떤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남겨두는가'에 대해 오래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또, 가난한 노인의 삶을 관찰하며 느끼는 설렘을 인정하고, 목격자로서 자신의 존재 의의와 책임을 실감하는 구술생애사 작가 김미경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은 과연 사회적 관계망에서 어디 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좌표를 찍어보게 됩니다. 책임과 욕망, 관망과 동정, 혐오와 연민 등 다양한 지표를 토대로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물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애사 인터뷰' 원고를 수록하며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따라가는 방식은, '죽음'이라는 문제를 작품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게 만드는 한편, 죽음을 애도하는 저자만의 고유한 방식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타인의 죽음을 마주할 때, 그 죽음이 억울하고 안타까울수록 그것을 정확하게 애도하는 방법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기억의 방편으로서 '기록'만큼 중요한 작업은 없으니까, 어쩌면 생애사 기록이라는 작업이 긴 애도의 표현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빈곤한 이들의 죽음을 기록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작가는 김미경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직 살아 있으니 닥친 김에 의심의 진도를 더 나가보는 거"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결론을 낼 수도,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이 김미경의 질문들을 이제 독자가 받을 차례가 되었다." -  「해설 : 이 결말을 축하해주세요(오은교, 문학평론가)」

『빈곤 과정』, 조문영

   이 책은 인류학자인 저자가 20년 동안 한국과 중국의 여러 현장을 오가며 "빈곤을 새롭게 발견하고 쟁점화하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여 온" 과정에서 쓰여진 책입니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빈곤은 어디에나 있다. (...)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빈곤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며, '빈곤'이 우리가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할 문제가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포함한 시민 대중이 빈곤의 연결망에 '쓸모없는' 생명의 축출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공조자로서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을 통렬한 방식으로 묘사하며 우리가 수많은 얽힘을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아프리카 아동이 후원의 보답으로 보낸 손편지에 감동하면서도, 자녀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엔 신경이 쓰인다." - 『빈곤 과정』, p.6


   그리고 이러한 시민 대중의 외면은 빈곤을 '사라지고 없는 것'으로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창문도 없는 비주택에서 살다 화마로 사망한 국일고시원 거주자, 지병과 빚으로 어려움을 겪다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된 수원 세 모녀, 폭우로 침수된 반지하 주택에서 구조를 요청하다 숨을 거둔 신림동 가족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주검이 되어서야 세인의 관심을 끈다. 학생들은 나를 찾아와서 종종 민망해하며 말한다. "살면서 빈곤을 본 적이 없어요." (...)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남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세심한 노력이 돋보이는 곳도 대학이지만, 그 공간에서 여전히 어떤 학생은 제 가난이 친구들한테 알려지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숱한 제도적, 실천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결핍이란 지워내야 할 불운, 수치, 숙명으로 남았다. 그런 점에서 빈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 『빈곤 과정』, p.6


   이 책에서 주요하게 제기되는 질문은 "오늘날의 빈자란 누구인가"입니다. 저자는 "물질적 결핍이란 조건과 가난함에 대한 인식 및 감각 사이의 불일치에 주목"하면서 '빈곤'을 하나로 수렴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변모하는 경험이자 과정으로 이해하고, "빈자의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그간 빈곤을 쟁점화해 온 방식을 되짚고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어떤 문제들은 특정 이미지로 고착화되어 쉽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특정 이미지는 '불쌍함', '처연함' 같은 감정일 수도 있고, '값비싼 겨울코트'와 대조되는 물질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틀은 우리의 시야를 현저하게 제한하며, 논의의 확장을 가로막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질문인 것 같아요. 이미 고정된 이미지를 부수고 그 자리에 역동의 물결이 지나가도록 만드는 것, 새롭게 트인 물길에서 건져 올린 수많은 논제들을 모두가 의논하고 '함께' 살기 위해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질문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빈곤 과정』은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그 질문이 기존의 질서에 새로운 '긴장'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힘'을 가진 책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읽고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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