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수급자들보다 더 빈곤한 삶을 사느라 우울증이 심해 늘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읊어대는 노파의 소갈머리. 콱 죽어버리기는커녕 살겠다고 공짜 점심을 먹으러 뙤약볕 아래서 땀과 진을 짜내고 뒤틀며 다라마역 근처 노인복지관을 다녀오는 노파의 생활. 부양의무제니 전세보증금 몇천만원 이하 등을 따지며 현금 없는 노인을 극구 기초수급에서 밀어내는 복지 제도. 세상의 갖은 족쇄도 부족해 이젠 내던져도 될 자신이 만든 족쇄까지 끝끝내 부둥키고 웅크린 채, 죽고 싶다는 소리로 삶을 버텨내며, 그래봤자 죽음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할망구." - 『황 노인 실종사건』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약 30명의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생활관리사 '김미경'은 어느 날, '끈내두한댈거업서요인저미안해오'라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진 '황문자'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미경은 '황문자'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황 노인과 관계가 있거나 자신의 관리 대상이었던 노인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여러 노인들의 고난을 서술하고 가난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합니다. 또, 예순 둘의 나이에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 빈곤한 현장에 설렘을 느끼면서 가난한 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 역시 조사합니다. 그러니까 미경에게 황 노인을 추적하는 일은 그의 행적을 되짚어가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과 노인들을 포섭하고 있는 시대적, 사회적 풍경에 대한 조사이자 개인의 생애를 갈무리하는 작업이기도 한 셈입니다.
"가난한 노인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미경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께름칙한 판단과 느낌을 눌러 의심하며 두고두고 되씹는 것이다.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무작정 튕겨 올라오는 불쾌함과 기피의 순간이 있다. 대부분은 입장과 처지의 차이에서 오는 이물감이다. 일단 감정을 숨겨 기피부터 한 후 되짚어 역지사지를 가늠하면서, 자기 안의 불쾌감을 두고두고 뒤적이며 노려본다. 좀 나아졌나 싶으면 비슷하거나 새삼스러운 혐오가 파드득 걸려 올라온다. 살아 있는 한 계속될 거다. 빈곤한 현장에 미경이 붙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제 꼬락서니를 자기 자신에게 들키는 맛 때문이다." - 『황 노인 실종사건』
사실 제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여성 노인의 빈곤, 고립, 죽음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실종'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장르적 문법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죠. 제목에 '실종'이 들어간다는 것은 추리소설의 문법대로 그것을 추적하고 탐문하는 이가 존재한다는 뜻이고, 저는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제가 품고 있던 기대감은 상당 부분 충족되었습니다. 장르적 문법에 꽤 충실한 책이었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의 서술은 장르적 특징만으로 설명하기엔 아쉽습니다. 바로 이 책에서 느껴지는 핍진성 때문입니다.
핍진성은 '문학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는, 즉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로, 현실감, 박진감 등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강한 핍진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선 이 책의 저자가 오랜 세월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생활관리사로 근무해 온 최현숙이기 때문입니다. 황문자를 추적하는 미경의 서술 사이사이 삽입된 생애사 인터뷰 원고 내용은 꼭 저자 본인이 실제 노인을 대상으로 한 구술생애사 작업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 본인이 생활관리사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미경의 일을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묘사해낸다는 점에서 '있음직한 이야기'를 넘어 '지금도 저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죠. 이러한 측면에서 출판사가 도서 소개에서 언급했듯 독자는 이 책이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저자는 여지 없이 장르적 서술을 이어가며 이것이 '문학'임을, 다만 그것의 총체가 강렬한 핍진성에 기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한편, 책에서 서술되는 가난, 죽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노인과 미경의 생각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예컨대 "고립사와 자살에 대한 언론과 사회의 관심은 자살의 방식과 송장의 모습에 머물며 비참과 불쌍 타령이나 하곤 곧 잊어버린다."는 미경의 말이나 "없는 노인들을 아주 대놓고 죄인 취급을 하드만. 그러니 천날만날 방에 혼자 들어앉아 그런 거 보는 노인들이 자살들을 해쌓는 거야. 그러면 또 노인 자살이 문제래면서 개지랄들을 하고."는 황 노인의 말에서 우리가 노인의 죽음을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또, "경로당을 나오거나 동네를 다니던 노인의 몸이 어느 날 갑자기 안 좋아지면, 자식들에게 연락이 가고 입원'시킨'다. (...) 동네 친구들로서는 어느 날 노인 하나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가 이후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무소식이면 죽었으려니 하는 거다."는 미경의 서술에서 '죽음 이후의 결정권을 자식들에게만 주는 것으로 인해 노인의 말년이 삭제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죠.
이처럼 『황 노인 실종사건』은 실종된 노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들과 그에 대한 미경의 서술을 통해 독자에게 해당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고, 더 나아가 독자가 해당 문제에 느끼는 거리감을 상기시키며 '왜 어떤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남겨두는가'에 대해 오래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또, 가난한 노인의 삶을 관찰하며 느끼는 설렘을 인정하고, 목격자로서 자신의 존재 의의와 책임을 실감하는 구술생애사 작가 김미경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은 과연 사회적 관계망에서 어디 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좌표를 찍어보게 됩니다. 책임과 욕망, 관망과 동정, 혐오와 연민 등 다양한 지표를 토대로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물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애사 인터뷰' 원고를 수록하며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따라가는 방식은, '죽음'이라는 문제를 작품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게 만드는 한편, 죽음을 애도하는 저자만의 고유한 방식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타인의 죽음을 마주할 때, 그 죽음이 억울하고 안타까울수록 그것을 정확하게 애도하는 방법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기억의 방편으로서 '기록'만큼 중요한 작업은 없으니까, 어쩌면 생애사 기록이라는 작업이 긴 애도의 표현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빈곤한 이들의 죽음을 기록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작가는 김미경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직 살아 있으니 닥친 김에 의심의 진도를 더 나가보는 거"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결론을 낼 수도,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이 김미경의 질문들을 이제 독자가 받을 차례가 되었다." - 「해설 : 이 결말을 축하해주세요(오은교,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