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이,

오리너구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오리너구리하면 포켓몬스터 고라파덕부터 떠오릅니다. 입에는 오리처럼 부리가 달려 있지만 볼록한 배와 넓적한 꼬리가 너구리를 닮았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오히려 수달에 부합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오리너구리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오리가 있을까요, 너구리가 있을까요? 그는 대체 어디서부터 파생되어 온 걸까요. 지구가 시작되던 밤, 오리와 너구리의 뜨거운 사랑이 탄생시킨 거라면, 오리와 너구리 모두 대등한 조상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아무래도 오리너구리의 조상은 오리겠지. 포유류한테 갑자기 부리가 생기는 건 이상해. 너구리는 애초에 물로 들어가지도 않잖아. 조류과 동물이 물과 육지를 오가다가, 육지에 유리하게 진화했겠지.

- 그런데 오리너구리라는 단어를 생각해봐. 합성어잖아. 근데 보통 본질적인 말이 끝에 오거든. 예를들면, 원숭이 중에 긴팔 원숭이’, ‘다람쥐 원숭이가 있잖아. 모두 결국에는 원숭이야. 끝에 붙는 말이 근본적인 소속이자, 정체성을 나타내는 거지.

-  . 그러네?

우리는 합정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그렇게 오리너구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합성어 이론에 확신하며 백과사전에 오리너구리를 검색했습니다.

- 뭐야, 말도안돼.
- ? 뭐라고 나왔는데?
- 오리너구리말야. 조상도 오리너구리였어.
- 그게 무슨말이야?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오리너구리의 조상은 오리도 너구리도 아닌, 오리너구리였습니다. 오리너구리는 개과너구리과오리과두더지과고양이과도 아닌, ‘오리너구리과소속이었습니다. 다른 뿌리로부터 파생되지 않은 독립된 뿌리. 동물계의 소수민족인거였죠. 

- 내가 오리너구리면, 억울할 것 같아. 왜 다른 동물 이름을 가져다가 이름을 지었을까.
- 그러게 전혀 몰랐네.
- 처음 발견됐을 때는 신비동물학에 속했대. 학자들도 오리너구리가 조작된 사진이라고 생각했나봐.

그들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학자들은 누군가 장난쳐 놨다고 믿고 오리너구리의 부리를 몸통에서 분리하려고 했다고 해요. 사실, 오리너구리의 부리는 새의 부리처럼 딱딱하지 않대요. 얼굴의 일부여서 말랑말랑하다고 합니다. 애초부터 그에게 부리는 없었고 오리라고 불릴 이유도 없었던 거에요.

그날 밤 집으로 가는 길에, 왠지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오리너구리로 보였습니다. 학생, 직장인, 아줌마, 아저씨. 누군가에 의해 쉽게 정의내려지는 사람들. 사실 우리들은 모두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웠습니다. 12시가 넘은 새벽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어요. 겁이 나서 외시경으로 밖으로 보니, 오리너구리가 서있었습니다.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직립을 하고 있어서 황당했어요. 싸우면 제가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문을 활짝 열어줬습니다.

오리너구리는 제 손을 잡고 저를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부드러운 털 끝에 달린 물갈퀴에서 정말 신비로운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정신 없이 걷다 보니 어느 개울가가 나왔어요. 그 곳에는 수십 마리의 오리너구리들이 원을 그리며 모여있었고 가운데에는 돌로 만든 테이블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오리너구리라는 합성어가 온몸을 베베 꼬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어요.
대체 언제부터 그 자리에 묶여 있던 건지 추측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새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자, 저를 데려온 오리너구리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가운데로 나섰습니다. 그는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리고는 보란듯이 석상에 다가가 합성어의 허리를 단숨에 꺾었습니다. 그 순간 페트병이 찌그러지는 듯한 소리가 난 걸로 기억합니다. 예상외로 아무 비명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호기심이 낯선 길에 들어도, 항상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친구들과 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오늘 사진은 경의선 숲길에서 찍었습니다. 혼자 산책을 하는데 둘둘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주 상투적인 안정감을 주더라구요. 

요즘 저는 스우파에 과몰입 상태입니다. 허니제이와 모니카를 보면서, 역시 하고 싶은대로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글은 좀 더 쓰고 싶은대로 썼습니다. 모두 오리너구리처럼 독립적인 날들을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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