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은 동학의 두 가지 핵심 가르침으로 거론됩니다. 한울(하늘)을 모시는 것이 도리라면, 한울을 품은 사람 역시 모심을 받는 존재여야 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울을 품은 것은 단지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天地萬物莫非侍天主也)고 했습니다. 하늘은 인간이 만든 추상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생명사상의 선구자로 꼽히는 장일순(1928~1994)은 스스로를 부르던 이름을 60년대까지 ‘청강’(靑江)으로 쓰다가, 70년대에는 ‘무위당’(無爲堂)으로, 80년대에는 ‘일속자’(一粟子·나락 한 알)로 바꾸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 살다가 불교와 노장사상 등 동양사상, 특히 동학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고 이를 자기 안에서 하나로 벼려낸 과정이 그의 별호들에 녹아 있습니다. ‘무위당’은 애써 공들이지 않아도 모든 피조물은 모두 우주의 조화에 참여하고 있다(無爲而化)는 것을, ‘일속자’는 나락 한 알처럼 작은 피조물일지라도 우주의 조화를 온전히 품은 귀한 것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두 별호를 하나로 합치면, 결국 동학의 주문인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에 이르는 듯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진리가 서로가 서로를 모셔야 한다는 도리로 이끕니다. “모신다”는 말 대신 “먹여 살린다”, “동고동락” 같은 말을 써도 괜찮겠습니다. 장일순 선생은 생전에 “상대방이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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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음악가이자 공연제작자였던 김민기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것’이 아니라 ‘뒷것’을 자처하며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예술인들을 길러낸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든든한 뒷배였고 삶의 기준점 같은 사람이었지요. 그런 김민기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무위당 장일순(1928~1994)입니다. ‘뒷것 중의 뒷것’을 자처한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장일순 평전>이 최근 나왔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김민기 선생의 삶에 먹먹한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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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소중하게 대하고 낮은 곳으로의 삶을 지향했던 김민기의 삶과 “사람이 곧 하늘”이고 “한순간이라도 하심(下心)을 놓치면 안 돼”라고 강조한 장일순의 삶은 겹쳐지는 대목이 많기 때문입니다. 책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현재 ‘가톨릭일꾼’ 편집장인 한상봉씨가 집필했습니다. 출판사가 의뢰한 지 10년 만에 원고가 완성됐다고 하네요. 저자는 서문에서 “장일순 선생님의 그릇이 너무 크고 가늠하기 어려워서 아주 오래 물러나 앉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는 22일로 장일순 서거 30주기를 맞습니다. 책 한 권도 남기지 않은 그이지만, 그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고 그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면서 그가 뜻한 바를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합니다. 선각자이자 교육자였고, 사회개혁가이자 서예가였고, 또 사상가였던 그를 책을 통해 꼭 만나보세요. ‘참어른’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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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활동하는 원재길 소설가가 쓴 장편 소설 <장 선생, 1983년 9월 원주역>은 장일순을 주인공으로 한 첫 소설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이 다루는 것은 장일순의 생애가 아니라 그가 평생 머릿속에 담고 지내며 행동으로 옮긴 그의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5년전, 한용운·신채호·송건호 등 한국 근현대사의 큰 인물들의 삶을 기록해온 김삼웅 선생이 <장일순 평전>을 펴낸바 있습니다. 이번 평전을 쓴 한상봉씨도 김삼웅 선생의 작업이 있었기에 작업이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장일순을 따르는 이들의 모임인 ‘무위당 사람들’로부터 ‘공인’을 받은 전기입니다.
🐟많은 이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장일순 선생의 남겨진 글과 인터뷰, 강연 등을 모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책도 있습니다. <녹색평론> 김종철 전 발행인이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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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소녀’는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 에세이입니다. 지은이 임영희(68)씨는 2011년에 급성뇌졸중으로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고, 2020년부터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진도 출신 소녀가 중학교 때 광주로 유학을 오고, 문학소녀로 성장해서는 5·18 학살과 항쟁의 한복판에 휩쓸려 들어가고, 사태가 가라앉은 뒤에도 사회운동을 꾸준히 벌이던 중 장애를 얻고 시골로 내려가 사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알록달록한 그림들로 풀려 나왔습니다.
크레파스와 사인펜으로 그린 그림 80여점으로 지난해 광주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그 그림들에 자신의 내레이션을 입혀 아들 오재형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양림동 소녀>는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고 상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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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양림동 소녀>는 이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림들은 소박하지만 자신의 삶과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내 큰 울림을 줍니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5·18이 있습니다. 해방신학에 경도돼 공부하면서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으로 나아가고, 소설가 홍희담의 집을 드나들며 광주의 여성 단체 송백회 결성에 참여하며, 5·18의 한복판에서 학살과 항쟁을 온몸으로 겪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되는 이와 함께 소설가 황석영의 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녹음했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뇌졸중을 앓으며 얻게 된 장애는 그로 하여금 장애와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눈을 뜨게 합니다. 은퇴한 남편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사는 그는 그림과 글로 지난 삶을 풀어놓으면서 치유와 자유의 느낌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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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희씨는 지난해 자신이 그린 그림들로 개인전을 연 바 있습니다. 당시 한겨레와 했던 인터뷰에서 임씨의 더 상세한 이야기와 여러 작품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된 애니메이션 <양림동 소녀>의 소개도 함께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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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긴 합니다만, 이 작가는 성별로 먼저 소개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여성 대세의 신진 작가 대오에서 드문 ‘남성’입니다. 등단 10년차 이하를 대상 삼는 젊은작가상을 볼까요. 2023년 수상자 7명 전원이 여성이었습니다. 2024년엔 청일점이 끼었습니다. 이상문학상의 근래 흐름도 다르지 않지요. 2024년 대상도 우수작도 모두 여성인 가운데 남성이 딱 한 명 끼었습니다. 신스틸러, 서른일곱 비교적 늦깎이로 2022년 신춘문예 등단한 김기태 작가입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지난 2년여, 김 작가가 스스로 각오한바 “고유한 궤적”을 남긴 단편들로 엮은 자신의 첫 소설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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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의 매력은 뭘까요? 골라보기도 가능하겠지만, 나아가 일정 기간 한 작가의 여러 문제의식이 집약 배치된 소설끼리의 맥락이 형성될 때 아닐까요. 지난주 타계한, 단편소설 작가로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도 단편집 안에서 연작성을 띠는 등 여러 조합의 말걸기를 시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김 작가의 소설집도 단편 9편이 아니라, ‘단편 9편+소설집 1권’이라 할 만합니다. 이런 게 소설집 읽는 묘미라면, 이번 작품집은 세번째 배치된 ‘전조등’으로부터 읽기가 시작되길 제안해봅니다. 나머지 소설들의 상류이기 때문입니다. 하류에 가령 ‘팍스 아토미카’나 ‘로나, 우리의 별’, 그사이 어디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나 ‘보편 교양’ 등이 있습니다. 김 작가의 소설은 작품 내부의 극적 변화나 갈등보다 작품과 작품 사이 진폭과 긴장이 큽니다. 이러한 사태의 모든 징후를 ‘전조등’이 담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한 유일한 작품”이란 작가의 말은 그래서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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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둘러싼 이 우주는 홀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다른 여러 우주들과 함께 존재하는가? 세계 이론물리학계는 ‘단일우주론’과 ‘다중우주론’ 두 진영으로 양분돼 있습니다. ‘양자 경관 다중우주 이론’의 창시자인 알바니아 출신 이론물리학자 로라 머시니 호턴(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은 대세가 다중우주론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2022)은 머시니 호턴 자신의 학문 여정과 20세기 우주론 연구 역사를 교직해 ‘양자 경관 다중우주 이론’이 탄생하기까지를 설명하는 책이자 다중우주론이 왜 단일우주론의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론적 근거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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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우주론은 고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부터 20세기 물리학까지 거의 모든 우주론을 지배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단일우주론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약점을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가 1970년대에 수학 계산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우주가 빅뱅을 통해 탄생해 오늘에 이를 수학적 가능성은 ‘10의 10승의 123승’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펜로즈의 계산대로라면 우리 우주의 탄생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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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건전재정'의 뜻은 간단합니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온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를 '긴축'이라고도 하지요. 모든 나라들은 '나라가 어렵다'며 살기 위해선 긴축해야 한다고 합니다. 복지 재원을 깎고, 공공 서비스를 줄이고, 누진 아닌 역진으로 세금을 걷고… 자원은 '소비자'로부터 '투자자'로 흘러갑니다. 한마디로 자본가가 노동자보다 더욱 유리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긴축에 과연 이렇게 고통을 감내할 정도의 효과는 있을까요? '살림살이 나아지셨냐' 물어도,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긴축은 다수에게 불리한 게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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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젊은 경제학자 클라라 마테이의 <자본 질서>는 이런 긴축이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또 자본주의 체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고든 책입니다. 지은이는 1차대전 직후 영국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는데, 그 이유는 전쟁이 뒤흔들어놓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기술관료와 경제학자들이 발명해낸 것이 바로 긴축이기 때문입니다. 지은이의 분석을 쫓아가 보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느니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느니 하는 긴축의 이른바 '경제적 효과'라는 게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 것인지 알게 됩니다. 긴축의 진정한 목적은 경제로부터 정치를 떼어놓고, 노동자들을 순응시키는 데 있다는 탁월한 분석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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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청년이던 기세를 차마 꺾을 수 없어
작가 고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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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하면 연상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는 '니체'입니다. 그는 석사 학위 논문을 니체에 관해 썼고,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이란 제목의 첫 책을 냈습니다. 그가 니체에 빠져든 데에는 '시대적 배경'이 큰 구실을 했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새로운 공부를 찾아헤매던 과정에 만난 것이 니체, 특히 그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였으니까요.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내자고 했을 때 그냥 절판시켜달라고 했을 정도로 그 첫 책을 다시 들추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당시 기세등등했던 젊은 자신의 기세를 꺾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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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작가가 그밖에 자신의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니체의 <서광>을 해설한 <언더그라운드 니체>(2014),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해설한 <다이너마이트 니체>(2016), 마르크스의 <자본> 읽기 대장정인 <고병권의 자본강의>(2021), 작가가 몸을 담그고 있는 현장 속 사람들에 대한 <사람을 목격한 사람>(2023)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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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전문 출판사가 만든 '마음 읽는 책방'
마음책방 서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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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의 정의를 얘기할 때 웰빙의 상태를 얘기합니다. 그래서 헤세의 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서 자기 삶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이 책방에 모으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나무과 같다고 합니다. 나무의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고, 나무가 잘 자라야 가지마다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되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몸이 튼튼해야 마음을 잘 다스리고, 몸과 마음이 평온할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롭게 살아납니다. 이러한 뜻을 담아 서가는은 세개의 서가로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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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화관제
밤의 장미꽃에서
화약 냄새가 난다.
등화관제가 시작되고
내 일곱 살의 하늘
비행기 소리, 무서운 맷돌 소리
밤
장미꽃
꽃이파리 떨어지는 어둠 속에
새빨간 호루라기 소리 한 가닥
똬리 튼 뱀처럼 눈뜨고 있다.
📖강인한 시집, <장미열차>(포지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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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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