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사치품이 되어버린 2023년. 1925년에 설립된 이 서점의 역사에 승선할 준비 되었나요? Pausing by POPOPO MAGAZ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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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1주년 기념이 되어버린 지난 레터
보내주신 따수운 응원 감사했어요. 컨텐츠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팔리는 콘텐츠'에 대해 신경쓰게 됩니다. 아무도 관심 없을 쿰쿰한 책 이야기, 어느 출판업자의 개인적인 단상은 불필요 하거나 단조롭지 않을까. 동시에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보고 경험하고, 묻고 들었던 그 모든 시공간을 전할 순 없지만 무엇을 선별해 전하면 좋을까. 요새 인스타그램 운영하려면 릴스도 매일 올려야 한다던데. 해야 할 것과 제한된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들 사이를 저울질하다 묵직한 이야기들을 꺼내면서도 과연 이게 맞나 갸우뚱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건 부러지기 쉽습니다. 잔잔한 물결과 거센 파도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 결국 내가 경험한 현실의 목격자로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앞으로의 방향키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사적이지만 종이잡지에서 온라인 뉴스레터 사이를 오가는 제 경험을 풀어보려 합니다. 쇠락한 과거와 무거운 오늘과 무서운 내일로 규정짓기 보다 그저 매일 내딛는 한 걸음으로 바라보면서요. 여러가지 큰 결정을 앞두고 있어 다소 두서 없어보일 수 있습니다만, 이 레터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만큼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라면서 꽉찬 일년에서 한 걸음 내딛는 스물 다섯번째 레터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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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1925년에 시작한 Argosy Bookstore에서 찾은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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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 나누고 싶은 이야기
- Argosy Bookstore
-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 4년이나 걸렸네요."
▶️SIDE B :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
[방구석 프랑스 통신] '존중'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거미 키우기'
[김작가의 프로젝트 B] '대문자 J형 엄마'
[기록하는 비꽃]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News] 포텐 여러분 함께해요!
- 이번 주말. 언리미티드 에디션, 책읽는 서울광장에서 만나요!
- [바라다드림] 투룸매거진 김주원 에디터와 함께하는 <글쓰기 101> '이방인의 글쓰기'
- 창고살롱 시즌6 절찬 모집 중!
- 파인드마이키즈 '한 달 체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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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Argosy Bookstore
센트럴 파크가 없었다면 뉴욕은 그보다 더 큰 정신병원을 지어야 했을 것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어디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빡빡하다. 울창하게 늘어선 빌딩 숲 만큼이나 주머니 사정도, 일상도 팍팍하긴 매한가지. Upper west와 east, Midtown west와 east. 동서를 가르는 경계일 정도로 맨해튼에서 센트럴 파크가 가진 지분은 상당하다. 그래서일까. 센트럴파크 만남의 광장으로 가장 흔하게 호명되는 곳이 애플 스토어라는 건 웬지 어색하다. (불편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 뉴욕의 지하철에 애플 페이가 도입된 것도 충격적이지만!)
문제의 애플 스토어를 끼고 돌면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북러버들을 위한 9와 4/3 정거장(해리포터의 머글과 마법사의 세계를 연결하던) 같은 'Argosy Bookstore'가 등장한다. 단돈 십달라!가 적힌 책꽂이를 지나면 두개의 문 중 '여기가 입구'라는 사인을 눈여겨 봐야 한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카운터의 티셔츠와 구디백에 그려진 커다란 상선이 바로 Argosy. "오래된 세계로의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누군가 속삭이는 것만 같다. 여러 개의 책상(그것도 꽤 널찍한) 사이를 통로처럼 누비는 구조가 이 서점의 역사에 승선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고나 할까.
4년 전에도 이곳에 작정하고 왔었다. 그 사이 즐비하던 백화점들은 사라지거나 곧 폐업 예정이지만 Argosy만큼은 맨하튼의 심장부에 그 위용을 드러내는 중. 뉴욕공립 도서관의 연구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책으로 빼곡한 책상. 대를 이어 서점을 운영 중인 백발의 세자매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흘깃거리며 서가를 유랑했다. 대학 때 사모해 마지 않던 할머니 교수님의 수업은 셰익스피어와 영국 고어 같은 언어와 역사 사이의 과목(예를 들어 영미 문학과 시나리오 같은)이 주 장르였다. 뭘 배웠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알고시에서 책을 넘기다 보면 이제 사어(죽은 언어)가 되어 버린 고대 영어가 이따금 눈에 걸린다. 라틴어, 불어, 스페인어 등 '추정컨대'를 붙여야 할 꼬부랑 글씨를 한참 들여 본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교감 신경이 부활해 도파민이 치솟는다. 만약 전생이 있다면, 주인집 서가에 몰래 들어가 책을 훔쳐 보는 노비 1이나 전각에서 책을 필사하는 궁녀 2쯤으로 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유독 이런 캐릭터에 과몰입하는 걸 보면 비록 똥촉이라 해도 묘한 기시감이 든다. '까막눈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런 MSG도 얹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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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헌터 모드로 야외의 서가도 둘러보면 더 재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오래된 초판본을 발견할지 누가 알아? 기대감을 안고 보물찾기 시작. |
분리된 양장본 커버, 책의 삽지를 모은 코너. 한 때 책의 구성 요소에서 해체된 조각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오브제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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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뉴욕의 가을> 속 낭만을 기대했건만 개뿔. 뉴욕에 오자마자 얼어죽지 않으려고 패딩과 한파에도 잘 안 입는 두꺼운 니트류를 잔뜩 샀다. Argosy를 들어온 순간부터 날씨만큼 성난 가을날의 뉴욕이 제법 안온한 공기로 바뀌는 기분이다. 소풍 날 보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신나고 설레는 마음이 심장 펌프질을 가속화하는 중이었으니까.
희귀본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의 특성상 50수 흰 면 장갑을 꺼내 들고 책을 꺼내야 할 것 같다만, 마음의 의식만 표하고 종종 걸음을 보채 서가 구석구석을 기웃거렸다. 윤동주 시집은 호기심의 버튼을 눌렀을 뿐. 어쩌다 한글판 시집이 여기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나 궁금해 질문 보따리를 쏟아냈다. 아마도 관광객이나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선물이었으리라. 한국에 이렇게 자랑스러운 시인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걸까. 뇌를 필터링하지 않고 말이 먼저 튀어 나갔다. "제가 다음에 번역본 가져다 드릴게요. 이 시는 꼭 읽어 봐야 해요!"
순례길 하면 보통 산티아고처럼 드넓은 대지를 생각하지만 내 경우엔 뉴욕이 그랬다. 기꺼이 시간과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언니와 친구들이 있는 은신처. 티켓 한 장만 끊어 무작정 떠나는 도피처. 머리의 퓨즈가 다 타들어갈 때쯤이면 뉴욕으로 도망갔다. 종일 걷고 또 걷다 자기 전에 레드불 엑스트라 스트롱을 들이키면 일과 끝. 고카페인을 뚫고 단잠에 빠져 꿈 속에서도 어딘가를 헤맸다. 화려한 도시의 마천루에 여기저기 카메라를 켜는 관광객 모드에서 42번가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무표정하게 스쳐가는 현지인의 얼굴로. 나 또한 그 무리에 섞여 집으로 향하는 잰걸음을 재촉했다. 지독한 길치지만 끝끝내 찾아내고야 마는 곳은 대게 서점이었다. 4년 전만 해도 지도와 종이 가이드북을 들고 다녔는데 하루의 시작과 끝, 대부분의 시간을 구글 맵에 의지해 돌아다닐 줄이야. 보조배터리를 두개는 들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폰이 꺼지는 순간 미아 확정!이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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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여행, 그림, 미스테리, Old & Rare. 각양각색의 컨셉을 가진 서점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나의 중간 보호소가 되어주었다. 얼음장같은 손발 보다 시리고 일그러진 차가운 마음을 잠시 녹이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할 힘을 충전했다. 멀쩡히 타고 있다가도 노선이 바뀌는 뉴욕 지하철에서 길치라는 재능은 더욱 빛을 발해 목적지까지의 예상 시간이 배로 늘어나는 건 예삿일. 건물도, 사람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한시간 정도는 거뜬히 걸을 만큼 뚜벅이를 자처했다. 24시간 내내 온통 머리를 헤짚는 무수한 강박을 떨치고 싶어 도망쳤건만 결국 택한 도피처가 서점이라니. '역설적이게도'라는 부사 만큼 인생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단어가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한가득 책이나 문구류를 이고 지고 나올 때면 다 읽지도, 쓰지도 못할 걸. 왜 또 새로운 미련 덩어리를 짊어지고 왔나 한탄스러우면서도 묘하게 발걸음에 리듬이 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넘어갔는데. 서점을 가거나 인터뷰를 하는데 꼬박 열흘을 보냈다. 요즘 핫하다는 어디, 새로 생겼다는 어디를 찾아 볼 에너지는 제로. 꼭 가야지 마음 먹었던 장소와 사람들 몇 개만 표지석 삼아 움직였다. 비어내야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던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공수래공수거를 생각하며 갔는데 캐리어와 머리의 수래는 이번에도 용량 초과. 무언가를 사고 채울 에너지도 시간도 없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그 시간과 마음과 무언가를 채워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했다. 내가 인생을 헛 살진 않았나봐. 지금까지 쓸데없는 발길질만 한 건 아닐까. 무너지는 억장을 붙들고 갔는데 이렇게 단단하게 받쳐 주는 사람들을 내가 보지 못했구나. 습관적 자책과 낯선 안도가 번갈아 찾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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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로 물난리가 났다던 뉴욕은 캘리포니아만큼이나 강렬한 태양으로 환영인사를 대신했다. 짐도 줄일겸 겹겹이 입은 옷을 우버에서 하나씩 벗어재꼈다. 언니가 내려 준 커피 한잔과 뜨끈한 떡국에 정신을 차리고 거쳐가려던 센트럴파크에 발을 묶어버렸다. '날씨가 너무 좋으니까 오늘 안 나오면 진짜 후회할 거야!!'라며 기어코 내일 과제 발표를 앞둔 친구를 불러냈다. 천으로 만든 피크닉 매트를 깔고 마음껏 수다 떠는 게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다며 시간 순서에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비록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에 살짝 젖은 잔디 위에 매트를 깔고 수다떠는 간소한 풍경이었을지라도 우리에겐 호화로운 순간이었다. 원래의 목적지인 브루클린 북페어고 뭐고 모르겠다 즐기자. 이 날씨는, 이 무드는,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같은 90년대 드라마 대사 같은 걸 남발하며 깔깔대는 게 왜 그렇게 행복했을까. 결국 땅거미가 한참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와 발견했다. 서점과 작가 부스가 열리는 북페어 메인 행사는 지나가버린 그 날 오후 한번 뿐이었다는 걸.
거기까지 갔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90%의 이성과 여기까지 와서 또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10%의 비이성이 싸우는 동안 대부분 후자가 이겼다. 10kg이 넘는 백팩을 군장처럼 메고 누비는 날도, 애정하던 서점들이 구글 맵에 '폐업'이라고 떠서 마음이 복잡한 날도 있었지만. 하원하는 조카를 데리고 수영장에 가거나, 이서진의 뉴욕뉴욕을 얘기하며 언니의 오랜 추억이 깃든 브런치를 먹거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며 쫓기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시차가 반대인 덕분에. 전화나 메시지, 메일은 한밤중에야 쏟아졌으니까. 알고시로 향하면서도 두근두근. 약속 없이 향하는 발걸음에 설렘과 망설임이 엉겨붙었다. '나를 기억할까? 이렇게 무작정 가서 그 분을 만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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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천사가 운동화 끈에 올라 타있는 날인가. 머릿 속으로만 수십번 되돌려 보던 그 골목에서 변하지 않은 건 서점 뿐이었다. 야외 북 스탠드를 지나 문을 밀고 들어서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겼다. 나오미였다. 오 마이 갓. 덕질하던 아이돌을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 4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어요." "정말 그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나를 위해서?"
검지로 자신을 연신 가리키며 놀라는 그녀에게 4년 전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저 지나가는 말. 단순한 스몰 토크. 별일 없이 지나가던 보통날의 흘러가는 손님 중 하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별거 아니지만 만나서 직접 주고 싶은 것들을 그동안 모았는데,
이건 하회탈 모양 목걸이고 저건 그 하회탈 모양으로 조각한 비누고~"
잡화상처럼 오밀조밀 꺼내는 물건들에 관한 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반가움과 설렘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섞여 어제 만난 것처럼 이야기가 쏟아졌다. 푸쉬 메세지에 자동으로 켜진 아이폰 화면에 등장한 아이 사진을 발견한 그녀가
"다음엔 아이랑 꼭 같이 올거지? 세상에 이렇게 귀엽다고?"
몇년 전 귀요미 절정 시기라 요 때보다는 덜하긴 하지만 슈퍼 큐티는 여전하다는 본능적 추임새와 이어지는 포포포 이야기.
"둘째라고 생각하면서 키우고 있어요. 우리 지난번에 만났을 때가 1호 발행 직후였는데 벌써 4년이나 지났다니!"
특별할 것 없어 보이 근황만 나눴을 뿐인데 몇 시간이 지났다. 언니 대신 픽업하기로 한 조카 하원 시간은 성큼 다가왔고. 택시로 10분 거리라 해도 뉴욕의 트래픽은 예측불가니까. 아쉬운 마음을 구깃구깃 접어 다음에 올 거라는 약속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고. 택시를 향해 돌진! 애 데리러 가는 시간은 여기가 서울이든 뉴욕이든 중허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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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수동식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
대항해를 떠나는 상선 Argosy의 조종실을 상상케 만드는 옛 지도와 그림들. Old&Rare라는 장르가 된 초판본과 사인본들로 가득한 서고가 한 층씩 등장한다. 호그와트의 도서관에서도 찾지 못할, 전 세계의 희귀본이 모이는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 어떤 사연들이 그 안에 살아 숨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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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Alabaster Books가 홀로 지금도 지키고 있는 4번가 다운타운에서 시작한 Argosy는 지금의 59번가 렉싱턴 애비뉴에 둥지를 마련했다. 수동 엘레베이터를 조작하는 전문가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는 4층 규모의 서가는 매 공간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진귀한 풍경의 연속. 창업주인 아버지 루이스 코헨은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롯해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백악관 도서관의 서가 목록을 결정했다. 미국의 대학과 도서관이 올라가기 전에 장서의 리스트와 구하기 어려운 희귀 도서들도 이곳을 거치면 해결할 수 있었다고. 유명 작가들과 작품의 초판본, 사인본, 지도, 일러스트 등. 서가의 모든 곳에 시간의 흔적이 잔뜩 묻어난다. 전 세계에서 희귀본을 찾는 이들이 모이는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 헤밍웨이의 친필 사인이 담겨있는 초판본을 만져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오래된 종이가 바스라지면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중고차 한 대 값은 물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덜덜 떠는 손길을 잠재우면서도 부산하게 책등을 훑는다.
뉴욕 지하철에서 독서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는 건 와이파이가 먹통이기 때문이라는 데 90% 공감하지만. 우주 삼라만상이 그러하듯 사람도 관성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 생명체일 뿐이다. 조금 무거워도 가지고 다닌다, 시간의 빈틈에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다시 초대한다, 곁에 두고 틈틈이 들여 보다 보면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은 문장이 쌓인다. 우리는 관성대로 살아가는 존재다. 읽고 보는 대상이기 전에 책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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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선다와 답정너가 만연한 패스트트랙 초강국. 한국이 단시간 내에 이룬 놀랍도록 빠르고 눈부신 발전 사이로 뚫려 버린 구멍의 잔해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무자비한 경쟁으로 우리를 내몰지는 않았나. 뮤지컬 좌석을 예매하는 것처럼 뉴욕에서 애써 여유를 사려 노력했던 내가 그러하듯. 버킷리스트 상단 중 하나, 햇살 좋은 노천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여전히 상상으로만 남겨 두고 왔다. 오래된 서가 사이에서 두서없는 발걸음으로 박자도 엉망인 혼자만의 스텝을 밟다 고른 건 '지금 여기'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책들이었다. 빛 바래고 헤져 너덜너덜 하지만 누군가에겐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불릴 해묵은 종이들. 캐리어의 무게를 고민하면서 최대한 가벼운 책으로 고르고 골라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책을 읽는 게 사치가, 행위예술이 된 시대. 언젠가 포포포라는 이름으로 만든 책들도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의 단층을 축적해 온 그 가치를 우리는 빈티지라는 등급으로 매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한 겹 한 겹 고민의 층위가 쌓인다. 페스트리처럼 수겹으로 포개진 그 생각들을 와그작 한 입 베어 물면 사라질 수 있을까. 매번 다음호를 기약하지 않은 채로 반년이라는 주기를 고수해 왔지만, 책 읽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발하는 시대에 계속 만들어도 되는 걸까. 관광 명소 대신 서점을 돌고, 묵묵히 저마다 시간의 페달을 밟으며 업을 이어 온 이들과 만나 일렁이는 마음을 다스렸다.
찡그린 주름으로 보이던 해수면의 파장을 핑계 삼아 그 동력으로 조금씩 가다 보면 마침내 도달할 수 있을까. 어차피 정답이 없다면 조금 더 가보고 싶다는 마음의 갈퀴를 빗어 넘겨 본다.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종이책을, 것도 해묵은 책들을 찾아 다니는 별스러운 작업들을 지속한다는 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와 대척점에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질문을 가장 가까이의 과거에서 찾아가는 일일지도. 물음표가 빠진 의문문으로 일련의 질문들을 이어가다 보면, 그렇게 해서 매번의 레터를, 또 책을 함께 만드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의 엔진룸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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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osy의 꼭대기 서가에서 발견한 찰스 디킨슨의 <The Chimes> 초판본 편지.
시간이 지나면 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책으로 남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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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4년 전과 후] Argosy에서 데려 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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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야지 다짐했으나 세번밖에 못 들렸다니! 첫 날은 오랜 친구처럼 재회하며 밀린 근황을 나눴고. 둘째 날은 친구와 전층을 둘러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셋째 날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올 거야라는 아쉬운 인사를 하러 들르는 통에 오랫동안 서가를 둘러보지는 못했다. 다만 틈틈이 스캔해 둔 책과 오래된 매거진, 서점의 로고가 박힌 기념품들을 분주히 담아 카운터로 옮겼다. 2019년 Macmillan's Magazine에 이어 심지어 이번에 데려 온 Eugenie Grandet은 심지어 프랑스 책.
이 책의 주인으로 추측되는, 또 1800년대의 매거진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추후에 다뤄보기로. 언젠가 선진국의 기준으로 한국은 재력의 규모를, 서양권에서는 가치와 대의명분을 꼽은 글을 본 적 있다. 오디오북을 즐겨 듣고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구독하고 책을 열어 보는 나도 늘 궁금하다. 종이책이 주는 감각과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번의 이사와 선택의 순간에도 끝끝내 나의, 우리의 서가를 지킨 빛바랜 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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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자라서 유난히 버거운 일이 무어냐고 물었다. 사는 건 원래 버거운 일이다.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식물에게도 사는 게 버거운 순간은 언제나 있다. 버겁다가도 거기서 잠시 즐거움을 찾으며 쉬고, 다시 버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삶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자라서 유난히 버거운 일은 무엇일까. 나는 여자라서 버겁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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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거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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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거실 창 한 폭마다 최소 3마리의 크고 작은 거미를 키우고 있다. 총 4폭의 거실 창을 통틀어 최소 12마리 이상의 거미들이 포진한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살다 살다 거미가 살찐 걸 알게 될 줄이야, 하고 헛웃음을 짓다가도 은근히 이상한 뿌듯함이 깃든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그러다가 이내 가정집 창밖에 거미가 이렇게 많아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 살림 책임자로서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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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김작가의 프로젝트 B안]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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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은 아니지만, 한 때 미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이제는 밉지 않아졌다. 그 사람도, 나도 별달리 한 것은 없다. 만나서 한 행동 때문에 미울때는 한없이 밉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은 탓일까. 적절한 거리두기는 미움마저 퇴색시킨다.
카카오톡의 다정한 기능 중 하나는 사람의 생일을 표기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손쉽게 선물할 수 있게 해주고. 싫지 않아진 그 사람의 생일이라고 알림이 뜨기에 요새 우울함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걸 알고 있어서 생일축하 겸 응원의 선물 하나 보냈다. 받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든 상관없다.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으니 예전처럼 아무 답변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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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한 주 방학도 끝났다. 사진은 월요일부터 5일간 아이들이 해내고 체크한 것들이다.
단 5일이었다. 마음껏 보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토요일마저도 아이들은 “엄마, 오늘은 왜 체크리스트가 없어?” (사실 토요일은 쉬게 하고 싶어서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급하게 메모지에 적어줬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완료하고 지워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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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핀란드 똔뚜가족] '2024 똔뚜가족 달력' 두둥!
(11. 3~5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실물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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똔뚜가족과 함께 보내는 2024년! 일상이 얼매나 사랑스러워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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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텐님들 보고 싶어요!🐰
UE15 언리미티드 에디션(11월 3~5일 북서울시립미술관)
책읽는 서울광장 '아이와 함께 자라는 중입니다'(11월 4일 15:30 서울시청 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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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언리밋에서도 포포포 부스가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아마도 몇 년간은 마지막 참여가 아닐까 하는 심심한 소식도 함께 전합니다. 토요일 3시 30분에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아이와 함께 자라는 중입니다' 북토크 행사로 저는 금요일과 일요일에 부스 지킬 예정이에요~💜
토요일에 광화문 인근에 계시다면 시청 광장으로(우천시 시청 서울도서관으로)
언리밋 오실 계획이 있다면 금요일이나 일요일에 오셔서 "저 포텐이에요"라고 꼭 말씀해주세요!
가진 게 종이 뿐이라 쓸고퀄 종이 선물 흥청망청 안겨드릴게요😘
p.s. 사랑스러움 그 자체 '핀란드 똔뚜 가족의 2024 달력' 실물도 언리밋에서 처음 공개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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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룸매거진 김주원 에디터와 함께하는
<글쓰기 101> '이방인의 글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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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살롱 시즌 6 멤버십 모집(12일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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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만들고 싶은 여성들의 온라인 멤버십 커뮤니티. 기다리고 기다리던 창고살롱 시즌 6 멤버십 신청기간 소식을 쨔쟌!! 전합니다. 11월 6일까지 멤버십 할인도 놓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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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포포 pausing by popopo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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