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을 처음 건설했을 때, 예상치 못한 난제에 부딪쳤습니다. 기차가 터널에 들어갈 때 발생하는 소음문제였습니다. 일본은 산지(山地)가 많아 곳곳에 터널을 뚫어야 했는데, 소음이 너무 컸습니다. “시속 298㎞의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소음을 줄일 것인가?” 신칸센 연구원은 우연히 참석한 조류학회 세미나에서 “물총새는 소음 없이 고속으로 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신칸센 앞머리를 물총새의 가늘고 긴 부리를 본 떠 만들자 소음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글로벌 마케팅 에이전시인 오길비의 행동과학 총책임자 샘 테이텀이 쓴 <살아남는 생각들의 비밀(더퀘스트 출간, 원제 Evolutionary Ideas)>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획기적인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해법을 관찰·응용함으로써 탄생한다.” 생물이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공적인 해결책을 찾아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하듯이, 인간도 여러 경로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테이텀은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것’을 좇기보다는 ‘기존 해결책과 패턴을 바탕으로 문제를 재정의하는 것’이 혁신을 성공시키는 핵심전략이라고 강조합니다. 구글이 야심차게 내놓았던 ‘구글 글래스’의 실패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줬습니다. 안경 형태의 스마트 모바일기기였던 구글 글래스는 출시 당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주목받았지만, ‘글래스홀(Glasshole)’이란 조롱 섞인 별명을 얻은 채 퇴출됐습니다. 기술 자체는 뛰어났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할지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아 윤리적 문제(화장실에서의 라이브 스트리밍 가능성 등)에 직면한 탓이었습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발상이 필요하다”는 압박 속에서 ‘혁신만이 해답’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혁명적 해결책이라는 ‘한 방’으로 뭔가를 이뤄내려는 시도는 ‘유효슈팅 오류(shots-on-goal fallacy)’와 맞닥뜨리기 십상입니다. ‘반복적으로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난제 해결에 도전해봤자 실패 확률을 높일 뿐이랍니다. “매년 쏟아지는 3만여 개의 신제품 중 95%가 실패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테이텀은 “행동과학과 진화심리학은 세상에 없던 뭔가가 아니라, 어제의 해결책을 빌려와서 (때로는 아주 뜻밖의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일깨웁니다. 영국의 산업디자이너 제임스 다이슨이 발명한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기술은 이미 존재하던 산업용 사이클론 구조를 응용한 덕에 탄생했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조립 생산라인 역시 시카고 도축장의 해체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지 완전히 무(無)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특허 20만 건을 분석한 결과 95%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개선하거나 재활용했다.”
포드와 토머스 에디슨,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등 획기적 신사업을 개척해낸 기업가들 대부분이 ‘발명가’ 못지않게 ‘굉장한 장사꾼’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진화적 사고의 달인들로 꼽힙니다. “진화적 사고는 지금 당신이 고민하는 그 문제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이미 해결한 문제’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제로(0)’에서 시작하지 않고 과거의 혁신에서 해결책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요컨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라고 묻는 대신에 “이전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지?”라는 질문으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성공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선택과 곁길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진화적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삶에 훨씬 크게 기여한답니다. “혁명은 극히 드물다. 맨땅에서 시작하지 말고, 진화적 패턴, 심리적 원리로 문제를 해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