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영웅 이야기엔 그에 걸맞은 매력적인 빌런이 필요한 법입니다. ‘피터팬’ 이야기는 사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땐 엄청난 유명세에 비해선 살짝 아쉬운 작품이기는 합니다. ‘후크 선장’을 한 번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한쪽 손목에 후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독보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이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뭐 알기야 알겠죠. 피터팬과 앙숙인, 피터팬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피터팬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하루 24시간 내내 어떻게 하면 피터팬을 죽일 수 있을까 궁리만 하고 있는 사악한 인간으로서의 후크 선장을요. 그런데 이건 정말로 아는 게 맞는 걸까요? 이것만으로 한 인물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대체 후크 선장은 왜, 무엇 때문에 피터팬을 그토록 싫어하게 된 것일까요.

얼마 전인 4월 28일, 디즈니 플러스에 <피터팬&웬디>가 공개됐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피터팬’ 이야기의 실사 영화이구요. 정확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1953년에 제작한 버전의 <피터 팬>을 리메이크한 영화라고 합니다. 일단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제목입니다. 제목이 ‘피터팬’ 1인에서, ‘피터팬과 웬디’ 2인으로 바뀌었죠. 사실상 이 부분이 리메이크의 핵심이기는 합니다. 말하자면 <피터팬&웬디>는 기존에 피터팬을 1인 주인공 서사로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의 인식을 ‘리메이크’하려는 의도가 제목부터 드러나 있는 영화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인 데이빗 로워리는 그것만을 위해 리메이크 영화를 만들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리메이크를 하는 와중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크 선장이 피터팬을 죽이고 싶어 하는 그 동기가 비어 있단 말이죠. 그래서 영화에 후크 선장에 관한 특별한 사연을 추가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후크가 해적선의 선장이 되기 전, 피터팬과 베스트 프렌드였다는 것입니다. 둘은 과거 절친인 상태로 함께 네버랜드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었지만, 마음이 커져버린 후크가 이제 ‘아이’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피터와 노선 다툼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의 앙금이 현재까지 지속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지속이 너무나도 길어지고 습관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반사적으로 죽일 듯이 달려들었던 거죠. 이렇게 생각해 보니 후크가 피터를 증오하는 것에 아무 이유가 없어 보였던 것도 나름 일리가 있는 설정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싫어한다’는 감정이 너무 오래돼버리면, 그 시작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까먹고 마는 경우가 있기도 하니까요



저 또한 고등학교 때 싫어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그 아이를 꾸준히(?) 싫어했었죠. 가끔 친구들과 만나 옛날이야기를 하면 저는 항상 그 친구의 흉을 봤었고, 그러면 친구들이 늘 그 이유를 물었었습니다. “대체 걔가 왜 싫은데?” 저는 그 아이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이런저런 작은 에피소드들을 읊어댔었지만, 가끔은 말하면서 스스로도 이걸로는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었습니다. 아니 고작 이런 걸로 내가 걔를 씹었었다고? 이상하다. 내가 걔를 싫어하는 마음은 진짠데. 왜 그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와 같은 질문을 이어갔었지만, 지금까지도 끝내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럴 땐 차라리 데이빗 로워리 감독을 고용한 다음 나의 과거를 리메이크 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제가 피터팬처럼 영원히 늙지 않는 것 정도로 실현 불가능한 일이겠죠.


리메이크된 <피터팬&웬디>를 보고, 웬디라는 캐릭터에 조금 더 집중한 이 리메이크가 잘됐다&별로다를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이 증오에 사로잡힌 후크 선장의 사연을 헤아려보기 위해 노력했을 감독의 마음이 신경 쓰였습니다. 왜냐면 제 사전에 영화란, 한번 만들어지면 그게 끝인 거거든요. 이렇게 그냥 짜잔! 리메이크입니다! 하고 덮어쓰기 해버려도 되는 건가 싶거든요. 많이 양보해서 된다고 쳐봅시다. 그럼 피터와 웬디의 관계만 잘 정비해도 됐었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감독은 왜 굳이 빌런의 이야기까지를, 후크 선장이 왜 피터의 빌런이 되었는지 까지를 리메이크 했던 것일까요. 왜 괜히 그 이야기를 건드려서, 과거 저의 기억나지 않는 증오까지를 들춰보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엔, 저는 아직 어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리메이크를 보자, 그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나의 매력적인 빌런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이제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네가 나에게 준 증오와 시련 덕분에 나도 이만큼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로워리 감독이 이런 의도로 후크 선장의 과거를 리메이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는 저의 과거를 리메이크 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도 영화처럼 한 번 지나면 그게 끝인 게 맞는 것이겠지만요, 저도 <피터팬&웬디>의 세 주인공들처럼 오늘부터 새로운 버전의 철홍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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