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안녕, . 11월의 마지막 주 밤쓰편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쓰게 되네. 나는 지금 망고 한 팩을 안주 삼아 간단하게 와인 한 잔을 하고 있어. 이것만 들으면 엄청 호강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오늘 이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일이 안 풀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어. 

시간계산을 잘못해서 하마터면 예약해둔 버스를 놓칠 뻔하고, 15kg 배낭을 매고 땀뻘뻘 흘리며 도착한 숙소는 에어컨도 안되고 세면대는 막히고...화가 날 대로 난 상태에서 찾은 새로운 숙소에서는 까먹고 키를 놓고 나와서 로비에 갇혀 있고(이건 내 잘못)...정말 일 하나만 더 터졌으면 주저 앉아서 울었을 것만 같아. 하려던 시티투어를 하지 못하고 5시간을 넘게 무더운 도로에서 배회하고 있었으니깐 말야.

  그래도 오늘 이런 고난을(?) 사르르 녹인 건 바로 다름 아닌 다시 찾은 숙소의 퀄리티와 뷰 때문!

패밀리 룸을 떨이(?)로 잡아서 아주 넉넉하게 짐 풀고 푹 쉴 수가 있었고 거실 한 켠에서는 쿠알라룸푸르의 트윈타워가 아주 잘 보이더라고. 여기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이 트윈타워가 보이냐 안 보이냐에 따라 방값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숙소를 잡았으니, 기분이 거짓말처럼 좋아지더라. 거기에 프라이빗 수영장까지...!

 어쩌면 원래 계획대로 이전 숙소에서 묵었다면 평생 보지 못할 뷰와 숙소 퀄리티였겠지. 처음엔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정말 여기 오게 돼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정도야.

  그런데 돌아보면 몇몇 그랬던 경험이 있는 것 같아. 그 당시에는 온갖 불행이 나한테만 찾아오는 것 같을 때, 이 때만큼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하필이면 일이란 일은 한 번에 다 터져버리는 것 같을 때. 온갖 원망을 신에게, 세상한테, 나한테 쏟아내고는 했는데 이제와서 보면 그 경험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그 경험들이 나를 먹여살리고 있을 때가 있더라고.

 계획대로만 되는 여행, 편하지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 계획대로 되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선물이 나를 위해 꽁꽁 숨어서 놀래켜주려고 기다리는 것만 같은 그런 여행.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그런 여행이 너무 하고 싶었어.

비행기에서 영화 '싱 스트리트'를 봤어.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번 여행에서 꼭 다시 보고 싶어서 노트북에 담아왔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운 남는 스토리와 멋진 음악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딱 하나의 장면 때문이기도 해.

 주인공 코너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는 라피나는 뮤직 비디오 연출을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척만 하라는 밴드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촬영이 시작되자 실제로 바다에 뛰어들어. 코너는 놀라서 라피나에게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왜 뛰어드냐고 묻지. 그 때 라피나는 이렇게 말해.

"무엇이든 절대 적당히 해서는 안돼! 알겠지?"

 난 이 한 마디에 자꾸 무너지고 말아. 무언가 '적당히' 해왔던 내 지난 모습들이 스쳐지나가거든. 이만하면 되겠지, 이 정도 하면 다들 괜찮다고 할 거야,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척'하려고 진짜를 외면해왔던 모습을 반성하게 돼. 일이든, 쉼이든, 여행이든, 진짜 내가 만족하는 지점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규정해둔 기준의 근사치에 다다르면 '적당히' 라는 말 속에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내려두었던 그런 모습들.

회사에서의 매너리즘이 왔던 것도 어떻게 보면 '적당히' 라는 말 속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내 사명과 방향을 잃고 회사가 규정해둔 일만 수행하는 직원1이 된 거지.

적당히 하지 말라는 말은 무리해서 해내라는 말이 결코 아냐. 내가 세운 목표, 혹은 꿈이 있다면 그것을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잃지 말자는 이야기지.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타이트한 일정 덕분에 벌써 일주일 이상은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사실 난 여행을 떠나와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내가 잊고 있던 비전이 꿈틀꿈틀 살아나고 있음을 느끼거든. 걱정과 불안 속에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었던 내 위험한 도전들, 실패해도 한 발자국 씩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모든 순간들, 이번 여행에서 그 때를 추억하고 또 계획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

이번 여행은 그래서 나한테 소중한 여행이 될 것 같아. 도 이번 여행에 함께 해줘서 고마워. 항상 여행을 다니면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할 친구가 필요했는데 가 잘 들어줘서 정말 고맙네. 항상 고마워 ^^

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다행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라는 경험이 있어? 의 이야기도 궁금하네. 그럼 다음 주에 또 만나자. 다음 한 주도 화이팅이야 ^^

2022.11.25 감성

 지금 감성은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말라카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

차감성💫 

"이성이 판치는(?) 세상, '감성'으로 버틴다"